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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 치마 입고 서울지하철 탔는데 안 쳐다봐 섭섭”

중앙선데이 2011.12.11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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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트먼 신임 영국대사와 이천 나들이 동행 인터뷰

신임 주한 영국대사 스콧 와이트먼(50·사진)이 양복 상의를 벗고 탁구대 앞에 섰다. 지난 8일 경기도 이천 장애인 체육종합훈련원 내 탁구훈련장에서다. 자못 심각한 얼굴. 상대는 문성혜(32) 베이징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다.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매서운 스매싱 솜씨가 일품인 대표선수다. 대사는 “살살해 주세요”라며 한국말로 살짝 ‘읍소’했다.



드디어 시합 시작. 와이트먼 대사도 만만치 않았다. 문 선수의 공을 6번이나 되받아치며 선전했다. 스코어는 7-3. 대사도 득점에 성공했다. 그는 “문 선수가 날 많이 봐준 것 같다. 내년 런던 올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목에 걸기를 바란다”며 문 선수와 악수를 나눴다. 문 선수는 “대사님도 승부욕이 좀 있으신 것 같다”며 “외국 대사와 경기해 본 것 자체가 제 인생 최초의 기록이다.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와이트먼 식 ‘공공외교’다.



와이트먼 대사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신임장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정한 것은 지난달 25일. 신임 인사 다니려면 하루가 빠듯하지만 이날은 작정하고 시간을 냈다. 훈련원 선수들이 내년 7월 영국 런던 올림픽 직후인 8월에 열릴 패럴림픽에 출전하기로 돼 있어 각별히 마음이 간다고 했다. 미니밴을 타고 이천을 찾은 그를 동행 취재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와이트먼 대사는 중국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ㆍ이탈리아어도 구사하는 베테랑 외교관이다. 에든버러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뒤 바로 외무부에 들어갔다. 한국 부임 직전엔 2008년 9월부터 아시아ㆍ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냈다. 첫 해외 근무지는 중국. 1986~89년 베이징에서 천안문 사태를 목격하며 대(對)아시아 외교의 꿈을 키웠다. 한국 방문은 2004년 출장이 처음이었지만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이번 한국 근무도 스스로 손을 들었다.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가 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 문성혜 선수와 일합을 겨루는 모습 (조용철 기자)




근무는 11월 말에 시작했지만 한국엔 11월 5일에 와서 ‘하숙생’이 됐다. 서울 상암동의 한 가정에서 머물며 한국 음식과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덕분에 간단한 말은 통역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셀카’ 같은 한국어도 자연스레 구사한다. 다음은 미니밴 안에서의 일문일답. 와이트먼 대사는 차창 밖으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나 이천의 시골 풍경이 보일 때마다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도 ‘하숙생 와이트먼’이 화제였다고 들었다. 홈스테이는 본인 의지였나.

“책이 아닌 체험을 통해 한국을 알고 싶었다. 중장년층 부모와 20대 자녀가 있는 가정을 수소문해 (서울) 상암동의 한 가정에 하숙을 하게 됐다. 11월 5일부터 쭉 한국 음식만 먹고 한국 텔레비전만 보려 노력했다. 출근도 370번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안에서 찍은 셀카 사진은 트위터(twitter.com/@UKAmb_Wightman)에도 올렸다. 한번은 내 고향 스코틀랜드 관련 행사가 있어 전통의상인 퀼트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내심 관심을 끌 거라고 기대했는데 다들 자기 스마트폰 모니터만 열심히 쳐다보길래 좀 섭섭했다(웃음). 홈스테이 가족들도 날 진짜 한국인처럼 대해 줬고, 3주간이었지만 3년 정도의 경험을 압축적으로 했다고 자부한다. 워낙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지 한국어는 아직도 어렵다.”



-한국 음식 맵냐고 많이들 물어볼 텐데.

“진짜로 많이 물어본다(웃음). 하지만 지금 영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피시앤드칩스(fish and chips:생선을 튀겨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영국의 대표적 음식)가 아니라 향신료가 강한 인도 카레인 티카 마살라(tikka masala)다. 다채로운 향신료를 많이 쓰기로 유명한 태국 요리도 인기 만점이다. 한국 요리도 어렵지 않게 접근했다. 맵긴 하지만 그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달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소주를 곁들인 삼겹살이다. 하이라이트는 삼겹살 불판에 구워 먹는 김치다. 바삭한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지금도 군침이 고인다(웃음). 그러고 보니 노래방을 아직 못 가 봤다. 아, 며칠 전엔 그 유명한 폭탄주도 마셔 봤다.”



-어땠나.

“폭탄(주)을 맞고도 살아남았으니 여기 있지 않나(웃음).”



-아시아ㆍ태평양국장까지 지냈으면 일반적으로 중국 등으로 가지 않나.

“내 전임 아태국장도 중국대사로 갔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난 아태국장을 하면서 한국, 나아가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국장을 하면서 (한반도 관련)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당시 주영 한국대사였던 천영우(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사나 추규호 현 주영 대사를 찾아갔고, 설명을 들으면서 호기심이 강해지더라.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데다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 굉장히 매력적인 근무지다.”



-평양의 영국대사관과는 어떻게 협력하나. 또 북한에 대한 입장은.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정기적으로 여러 가지 협력을 한다. 개인적으로 평양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주민들 모습에 슬펐다. 이 출장에서 북한 외무성 관리들을 만나 영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달했는데, 그때마다 내정간섭 말라는 답변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지난해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서도 영국은 한국의 우방으로 적극 협조했다. 북한을 다룰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주민과의 관계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건 자명하다.”



-중국 근무는 어땠나.

“86년 근무를 시작해 89년 천안문 사건의 흐름을 똑똑히 지켜본 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해 4월 후야오방(胡耀邦ㆍ1915~89)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죽음을 계기로 시위가 시작된 뒤 광장에 종종 나갔었다. 천안문 광장에서 손에 손잡고 모인 학생들과 그들을 향하던 탱크며 장갑차의 모습이 생생하다. 자오쯔양(趙紫陽ㆍ1919~2005)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학생들 설득을 위해 광장에 나타났던 모습도 기억난다. 역사를 목도한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중국, 나아가 아시아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체험한 순간이었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지금, 대중국 외교에서 유념할 점은.

“중국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영국으로서도 대아프리카 외교를 할 때도 중국을 마주치며, 중국산 제품 없이는 일상생활도 불가능하다. 감히 제언한다면 중국의 영향력을 직시하는 노력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한국 근무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서울ㆍ부산 같은 대도시가 아닌 곳에 온 게 오늘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한국 국민과 일대일 소통을 많이 하고 싶은 소망이다. 내 나름의 공공외교를 하고 싶다. 내년 6월엔 영국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가 있고 7월엔 런던 올림픽, 8월엔 런던 패럴림픽이 있다. 올해 로열웨딩에 한국 국민이 보여 준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



8일 이천 방문에서 조향현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장은 이날 “외국인 주한대사가 별도로 우리 훈련원을 찾은 것은 와이트먼 대사가 최초”라며 “선수들이 굉장히 감동했다. 대사가 감성외교를 보여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와이트먼 대사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천 훈련원 방문 사실을 공개하며 “탁구와 테니스 경기에서 패배의 굴욕을 당했다”고 농담하며 “훌륭한 시설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와이트먼 식 공공외교에 본격 시동을 건 셈이다.



이천=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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