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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니라는 49세 이 남자 …

중앙선데이 2011.12.11 02:18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저서·강연·인터뷰로 분석한 안철수의 세계관

종례를 빠지고 영화관으로 직행한 고3 수험생. 생명을 희생시키는 게 싫어 토끼 수술 실습 때 ‘산다는 게 뭔지’ 고민한 의대생. 새벽 3시까지 컴퓨터 오락을 하다 잠을 청한 뒤 오락 생각에 두 시간 만에 깬 대학원 조교. 급성 간염으로 쓰러지고도 집 안방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했던 워크홀릭. 안철수 서울대 교수(49·사진)가 저서에서 밝힌 그의 과거다.

그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로 주변에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누리는 폭발적 인기에 비하면 너무 상식적이고 추상적이다. 안 교수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방향이 뭔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본인이 언론과의 접촉을 극구 피하고 있어 알아낼 방법도 마땅치 않다.



중앙SUNDAY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추적해봤다.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1995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2001년),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2004년), 안철수 경영의 원칙(2011년) 등 저서ㆍ공저 7권에 나타난 그의 생각을 분석해봤다. 또 청춘콘서트ㆍ관훈포럼 강연 등 지난해 이후 20여 차례 있었던 안 교수의 강연ㆍ인터뷰를 찾아봤다.



안 교수의 말과 글에선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의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두 가지가 모두 혼재해 있었다. 안 교수가 진보 좌파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일 가능성이 크다. 성장환경이나 가족관계로 보면 오히려 우파 쪽에 가깝다.



안 교수의 부친 안영모 범천의원장은 중앙SUNDAY(11월 6일자) 인터뷰에서 “큰애(안 교수)는 좌파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또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 때 다 승인했는데 민주당이 왜 저렇게 반대하느냐”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국민학교 때 ‘부모님이 나를 간섭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한 중학생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고 나는 절대로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고 썼을 정도로 효자다. 안 교수는 또 “제발 한 달 만이라도 다음 달 월급 줄 걱정을 하지 않고 싶었다”(2010년 6월 케이블방송 인터뷰)고 했을 만큼 벤처기업 오너로서의 곤궁한 처지도 경험했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안 교수의 생각은 무엇인지, 안보관과 역사관은 어떤지, 정치적 리더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을 집중 분석했다.



안보관=그의 저서·강연에서 북한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랬다가 지난 9월 4일 순천 청춘콘서트에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체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예 논외로 놔둬야 한다. 이념 논쟁 이전에 워낙 심각한 문제다. 우리 체제를 안 믿는 사람 같으면 완전히 북한 쪽으로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0~30대가 투표를 많이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 체제를 안 믿는 사람들은 논외로 제외하고 나머지 정상적인 사람들 중에서 과연 이게 상식인지 비상식인지 사안별로 판단해 보자.” 그는 이날 “우리가 적화통일 (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고 우리나라 체제를 중심으로 어떻게든 평화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잘 해결해서 통일을 해보자는 게 많은 분들 (생각), 보수적인 생각이다”고 했다. 자신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보다 이틀 전 서울대 청춘콘서트에서 안 교수는 ‘강남 좌파 아니냐’는 질문에 “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니다”고 답했다.



기업관=대기업 비판론ㆍ한계론을 계속 제기해왔다. 대기업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관행은 경쟁력 강화에 독이 된다는 논리다. “대기업만으로 이뤄진 경제구조는 대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튼튼한 대기업과 건전한 중소기업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기업이 신생 업체에 납품을 받으며 다른 곳엔 못 하도록 막는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면 동물원에 갇혀 (작은 기업은) 결국 말라죽어 미라가 된다”(관훈포럼), “대기업을 도우면 혜택이 중소기업으로 간다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은 지금 맞지 않다. 대기업 주식을 외국인이 갖고 있어 돈을 벌면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청춘콘서트)고도 했다.



정부관=안 교수는 공정한 시장 조성과 고용 창출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고 했다. 또 성장보다는 고용이 국정 최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대기업엔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등 정책 목표를 고용 창출에 두면 스스로 생산성 쪽으로 가는 기업과 합쳐져 굉장히 바람직스러운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데 100% 동의한다.”(관훈포럼) 직접세 확대론도 펴고 있다. “세금은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아온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통해 못 사는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게 조세 정의다. 조세 정의라면 직접세가 높아야 맞지만 지금 우리는 간접세 비중이 더 높다.”(청춘콘서트)



세계화 인식=진보 쪽과 가장 생각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대 시절)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문득 ‘내 경쟁 상대는 세계 각국 실험실에서 일하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다. 내가 잘 때 미국의 경쟁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숨이 막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내 일자리를 뺏을 수 있는 경쟁자가 됐다. (벤처기업에서) 세계화의 위기는 반대로 해석하면 국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면 세계로 나가기가 그만큼 쉬워진다는 것이다.”(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세계화의 최대 경쟁자로 본 상대는 중국이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는데 우리보다 더 심한 추격자인 중국이 쫓아오고 있다. 그대로 있다간 중국 때문에 추락할 형편이다.”(청춘콘서트) 저서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선 중국발 위기론이 다섯 차례나 등장한다.



정의관=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진보ㆍ보수의 가치를 모두 담은 것이다. 그는 기회는 평등하게 주고, 배분은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가 연봉제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다. “이익의 배분은 평등하게가 아니라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평등과 공정은 다르다. 민주주의도 그러하지만 연봉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평등하나, 결과는 평등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상은 평등할 수 없다. 기회를 평등하게 주되 결과 평가에선 만인이 동의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이런 관점에서 그는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초과이익공유제가 선후가 바뀌었다고 비판한다. “초과이익공유제는 과정에 상관없이 결과적인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다. 순서가 틀렸다. 과정이 공정한지를 감시해야 한다.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다.”(청춘콘서트) 교육에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미국 대학에서 10%를 성적이 나쁜 흑인을 뽑으니 수십 년 후 이들이 대법관이 되고 인종 간 화합에 크게 공헌했다. 사회가 잘 되려면 기회가 없는 이들도 같은 출발선에 서게 해야 한다.”(청춘콘서트)



정치 리더십=상향식 리더십이다. “예전에 나를 따르라면 사람이 다 따라갔다. 그러나 이제 리더십은 대중이 선물로 주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흐름을 모르면 시대착오적이다.”(청춘콘서트) 그러나 안 교수는 냉정한 관리자의 면모도 있다.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관리자가) 지적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도록 방조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장수의 ‘다섯 가지 위험한 유형’ 중 ‘백성을 사랑하는 장수’는 마음 약한 인사 관리자로 해석할 수 있다. 직원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게 직원의 성장을 돕는 기회인데 마음 약한 관리자는 그냥 넘어간다.”



역사 인식=보수의 애국심과 진보의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33세 때 쓴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엔 “세종대왕이 백성의 뜻을 굽어살펴 한글을 창제했듯이 지금도 그런 애국애족적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시장이 외국산에 잠식당하면 우리의 정신마저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41세 때 쓴 공저 나의 선택에선 1997년 미국 백신업체인 맥아피에 회사를 넘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 그 어떤 조건도 매력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역사상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강하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백성들은 가진 자, 힘 있는 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신당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조는 백성을 버려두고 피란길에 올랐고, 6ㆍ25전쟁에서도 대통령이 빠져나간 다음 서울 시민을 버려둔 채 한강 다리를 폭파하지 않았나.”(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방식=그의 말과 글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원칙’이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엔 ‘원칙’이라는 단어가 각각 32차례, 49차례 나온다. ‘삶의 원칙’ ‘리더십의 원칙’부터 ‘글을 쓸 때의 원칙’까지 다양하다. 또 “남에게 화를 내기보다 내게 화를 낸다”며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불편하다. 원하시는 대로 사인ㆍ악수를 해드리지만 기회를 봐서 도망친다. 아직도 내성적”(케이블방송 인터뷰)이라고 할 정도로 내면 지향적이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을 상대하고, 원칙보다 더 높은 차원의 통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도 많다. 안 교수가 정치판에 뛰어들 경우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관심거리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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