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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진단법 활용해 암 조기 발견, 맞춤형 치료

중앙선데이 2011.12.10 21:57 248호 11면 지면보기
암 조직 1cm³ 안에는 1억 개 이상의 암세포가 있다. 암이 몸의 다른 조직이나 기관으로 전이됐는지 진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암세포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영상기술이 개발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더 나아가 암 환자의 작은 세포만으로 모든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암 사망자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35> 암과의 싸움

유엔미래포럼 제롬 글렌 회장은 “일반의 상상을 넘어서야 미래의학”이라며 “예컨대 꽃의 유전형질을 사람에게 주입해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향기를 내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암의 진단·치료 분야에선 무슨 일이 발생할까.

10년 후 가장 많아질 암은 유방암과 대장암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양대병원 암센터 권성준 소장은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에 두 가지 암 환자는 크게 늘겠지만 꼼꼼해지는 건강 관리 덕에 폐암·간암 환자 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체적으론 암 환자 수가 늘면서 암 치료율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바로 유전자 진단 기술 덕택이다.

암은 최근에서야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으로 밝혀졌다. 후성(後成) 유전학(Epigenetics) 연구에 따르면 환경에 따라 유전자 구조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똑같은 종류의 암에 똑같은 치료제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다. 가령 두 사람의 몸에서 똑같은 암이 발견됐다고 가정해 보자. 10년 전만 해도 같은 위치·종류의 암이라면 진단·치료 과정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기술이 보급되면서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치료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유전적 차이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분야는 유방암 진단을 할 때다. 유전자를 이용해 유방암 발병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는 종양표지자 수는 이미 수십 개가 넘는다. 국내에서도 서울대암병원 노동영 교수팀에서 개발한 유방암 진단키트가 신기술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유방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a2-HS 당단백질’이라는 종양표지자를 혈액 안에서 검출해 내는 원리다.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면 X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보지 않고도 미리 암을 예방할 수 있다. 노동영 원장은 “전체 유방암의 5%를 차지하는 유전성 유방암은 물론 현재 치료하기 어려운 삼중음성암(유방암 중 전이가 되거나 재발하고 나서 치료가 어려운 암종)에 대한 치료법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혈액 1㏄로 10시간 안에 간암 여부 진단
회복이 불가능할 때까지 아무 증상을 보이지 않아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肝) 분야에서도 유전자 연구가 활발하다. 중국 상하이 푸단대 연구팀은 혈액 1㏄만 수집하면 10시간 안에 정확하게 간암을 예보할 수 있게 됐다고 올 11월 미국 임상종양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유전자 종양표지자를 통해 2㎝ 이하의 작은 간암을 조기 진단하는 방법을 이용했는데, 정확도가 이미 90%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사실 간암은 원인도 다양하고 예후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간암은 크기가 10㎝ 이상이지만 큰 문제가 없고, 어떤 간암은 2㎝에 불과하지만 치료 후 다시 발병한다. 간암은 바이러스성 간염과 같은 만성 간질환을 동반하기 때문에 처음 발생한 간암 조직을 제거하더라도 새로운 암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간암 치료 후 재발 여부를 예측하는 유전자 검사법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개발된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신의료 기술로 인정받아 실제로 간암 환자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 간암센터 황신(외과) 소장은 “간암의 예후는 종양 자체가 가지는 유전자 변이같이 생물학적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며 “지금까지 검사 방법이 따로 없었지만 점차 개척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기기를 이용한 스캔 기술의 발전도 눈부시다. 최근 8초 만에 유방암을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스캔 기술이 개발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팀은 ‘마리아’라고 불리는 이 유방암 진단장치를 지뢰탐지기 원리를 응용해 만들었다. 지뢰탐지기처럼 전파로 종양의 혈액이나 체액이 뭉쳐 있는 것을 포착한다.

유방암 진단법 중 하나인 X선 진단방법을 경험해 본 여성들은 다시는 검사를 받기 싫다고 말한다. 플라스틱 판 위에 유방을 올려 두고 위아래에서 유방을 납작하게 압박하면서 검사가 이뤄진다. 고통이 상당하다. X선을 이용하다 보니 방사선 노출 위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진단법은 피검자가 엎드린 상태에서 컵처럼 생긴 장치에 유방을 넣기만 하면 된다. 소요시간도 8초에 불과하다. 60개의 안테나를 통해 컴퓨터에서 3차원 영상이 나타나고 종양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몸속 조직과 근육이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 색깔로 구별할 수 있는 ‘자기공명탄성법(MRE)’ 기술도 등장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을 받은 이 제품은 몸속 조직 중 딱딱해진 부위를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저주파 음파를 15초 동안 기존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에서 가동해 조직의 탄성을 초음파로 측정하는 원리다. 흑백으로 진단 부위 상태만을 보여 주던 기존 영상과는 달리 몸속의 장기가 정상적인지,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딱딱해져 있는지 각기 다른 색깔로 보여 준다.

앞으로 바늘을 이용하는 ‘생체검사’는 사라질 전망이다. 과거에는 폐나 간이 딱딱하게 굳어 가면 50㎝가 넘는 바늘로 조직의 어느 부분이 딱딱해졌는지를 검사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모니터를 보는 것만으로 문제 부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북부심장클리닉 장 루이스 샤브레이롤즈 원장은 “이 제품을 사용한 뒤 간 환자 1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90% 이상에서 섬유증 증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암세포에 영양 공급 끊는 新물질 활용도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 8월 영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암세포의 에너지원을 고갈시키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고 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신장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정상 조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점에 착안해 암세포의 에너지원인 당(糖)을 고갈시키는 형태로 암세포 증식을 차단했다. 연구진은 같은 대학 바이오사이언스센터의 도움을 받아 6만4000여 종의 화학물질을 신장암과 조합해 효과를 시험했다.

100세가 넘은 노인의 세포에서 노화의 흔적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도 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연구팀은 지난달 생명과학 학술지 ‘유전자&발전’에 기고한 논문에서 100세 노인에게서 채취한 세포를 회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실 실험에 불과했지만 세포를 역분화해 인간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줬다는 것이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미분화세포이기 때문에 신경이나 심장·피부·간세포 등 모든 성체세포로 분화될 수 있다. 특히 노화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세포를 태어나기 전 아기의 세포처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암 치료 등에 쓰일 의료용 로봇 시대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4개 장치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이용한 수술 건수는 1000건을 넘었다. 내시경을 대신하는 캡슐형 로봇이나 혈관 속을 움직이며 활동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이 적용될 시점도 멀지 않았다. 올해 2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가지처럼 뻗은 트랙 위를 움직이는 분자로봇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로봇이 개발되면 DNA 구조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한의료로봇학회 김영수(한양대병원 신경외과) 회장은 “아직 로봇 치료가 상용화되기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다빈치만 하더라도 로봇 팔을 이용할 때 실제 촉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10년 후면 의사가 직접 환부를 만지는 기분을 로봇을 통해 느끼면서 수술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맥길대 건강센터에서는 로봇이 수술과 마취를 모두 담당한 세계 최초의 수술을 시도했다. ‘맥슬립’이라고 불리는 마취 로봇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초당 10억 개에 이르는 원자핵 알갱이를 몸속으로 보내 암세포에 도달했을 때 방사선 폭탄을 터뜨리는 꿈의 암 치료기 ‘중입자 치료기’도 기대를 걸 만한 분야다. 암세포의 살상력은 X선보다 세 배 이상 높지만 암세포 제거 후 방사선이 바로 소멸되므로 부작용도 없다. 치료시간도 준비 과정을 포함해 30분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방사선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중입자 치료기를 이용하면 폐암 치료율은 40%에서 95%로, 간암은 50%에서 90%까지 올라간다. 다만 암이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이거나 위나 대장처럼 움직이는 장기에 있는 암의 경우엔 치료가 어렵다는 한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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