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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바람의 조화로 푹 익은 전통 간장 맛보세요

중앙일보 2011.12.09 02:13 1면
천안시 광덕면 보산원리에 자리한 ‘장인촌’. 80여 개의 항아리가 가득한 앞 마당에 주인장 공영화씨가 빚은 장의 구수한 향기가 흐른다. 언제부턴가 입 소문을 타고 장인촌 장맛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조영회 기자]
천안 광덕산 끝자락 시골마을이 전통 장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직접 재배한 친환경 콩으로 전통 장을 생산하는 장인촌. 언제부턴가 이곳에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길 안내를 하느라 바쁘지만 마을이 활기를 되찾아 즐겁다.


친정어머니 손맛 그대로 … 장인촌 촌장 공영화씨

산골 맑은 물로 농도 맞춰



싸늘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바스락’ 소리가 세상을 깨운다. 공영화(56) 장인촌 촌장은 연신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싼득싼득한 찬바람에도 거르지 않고 장독대를 찾는 그는 지금도 친정어머니 장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된장은 동네에서 맛 좋기로 소문났었다. 손수 농사 지은 콩으로 장을 담근 어머니는 서두름이 없었다. 동짓달에 메주를 끓이고 정월에 간장을 담아 제 맛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 맑은 물로 씻어낸 100% 우리 콩을 참나무 장작으로 가마솥에 삶아 황토방에서 띄웠다.



 어머니는 간장으로 치대면 떫은맛이 나고 손에 진득함이 묻어나 맛이 덜하다며 된장을 치댈 때 물로 농도를 맞췄다. 모든 과정이 어머니 손을 거쳐 자연 그대로 건조돼 항아리 속에서 숙성됐다. 공씨는 어머니 방식으로 장을 담가 그 맛을 지켜 나가고 있다. 장인촌에는 전통청국장, 천일염만 고집한 재래된장, 찹쌀고추장, 재래간장이 있다. 익모초, 구절초, 쑥 등 야생 재료를 사용한 약조청과 효소도 있다.



우리 콩으로 만든 메주



어머니가 만든 장맛의 일등공신은 ‘우리 콩’이다. 공씨 역시 우리 콩만을 고집한다. 그는 매년 풍세 삼태리 9900㎡ 밭에 콩을 재배하는데 올해는 4950㎡밖에 심지 못했다. 비가 많이 온 탓에 심는 대로 썩어버렸다.



 그는 올해 곡물실효, 토양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좋은 재료로 담근 장을 3년 뒤에 선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낙심이 컸다. 천안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인증된 토종 콩을 구입할 수 있게 도와줘 무사히 장을 담글 수 있게 됐다.



 천안시 농업기술센터 박성진 주무관은 “농촌 지역에 맞는 전통 음식문화를 발굴하고 보존하려는 취지로 장인촌을 지원하게 됐다. 워낙 솜씨가 뛰어난 분이라 지난해부터 농촌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장인촌을 소개해 도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앞으로 작업장이나 생산 기자재 등을 지원해 장인촌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요즘 공씨는 메주를 만들기 위해 잡티나 벌레 먹은 콩, 속이 덜 찬 콩을 골라내기 바쁘다.



토종 메주콩은 대체로 알이 작은 것이 특징인데 마당에는 선별에 합격한 튼실한 콩들이 뒹굴고 있었다. 콩을 많이 넣어 장을 담그면 고소한 맛을 더한다.



장인촌 장은 몇 년 묵어도 항아리 속에서 색이 변하지 않는다. 고추씨나 보리쌀을 삶아 넣으면 색이 잘 변하는데 그런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



십 수 년을 지켜온 고향땅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2006년 어느 날 친구들이 공씨 집에 놀러 왔다. 어렸을 때부터 줄기차게 들락거린, 장맛 때문에 우정을 지켜온 친구들이었다.



 한 친구가 “장이 맛있으니 장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평소 주변 사람들과 된장이며 고추장을 나눠 먹는 인심 후한 그였지만 “나이 더 먹으면 하지…”하며 장사 욕심은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조기환(58)씨가 갑자기 “이사 가자”는 말을 했다. 조씨는 “장사 해보라”는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동안 공씨 모르게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



 천안·아산 산자락 구석구석에 조씨의 발걸음이 닿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자 “가진 것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말리기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수 개월 동안 물 좋은 곳을 찾아 발 품을 판 남편 덕분에 지금의 ‘광덕 보산원리’에 자리를 잡았다. 터전이 마련되자 2007년 콩 98㎏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본격적으로 장 담그는 것이 공씨의 일이 됐다.



 조씨는 “아내는 헛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도전해 보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9남매 중 장모님 솜씨를 쏙 빼 닮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과감히 이사 결심했다”고 말했다.



3년은 기다려야 제 맛 내



보산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공씨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지병이 있거나, 등산 중에 입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경찰공무원인 김모씨는 간이 좋지 않아 매번 청국장을 가져갔다.



 그러다 7개월 남짓 소식이 없다가 올 여름 다시 찾아왔다. “청국장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천안 쌍용동 심모씨는 자궁암 진단을 받은 주부인데 암세포를 억제하는데 효과가 뛰어난 된장과 청국장을 꾸준히 찾고 있다. 공씨는 “처음에는 바른 먹을 거리를 나눈다는 일념뿐이었는데 건강이 회복되는 이들을 보며 더욱 사명감을 느꼈다. 이 때문에 3년이 지나지 않은 장은 항아리에서 꺼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일, 고마운 일도 있었다. 작업장 아궁이 동선이 궁금해 전국을 돌아 다녔다. 그러나 비밀이라며 보여 주지 않았다. 몰래 엿보려다 혼쭐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각자의 손맛이기 때문에 비밀스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든 배우겠다면 가르쳐 주고 있다.



 장을 담는 솜씨보다 그의 보물은 항아리다. 80여 개의 항아리를 볼 때면 흐뭇하다. 삼태리에 사는 어르신들로부터 한 둘 얻어 모은 것들이라 더욱 소중하다. “나 죽으면 내버릴 항아리”라며 “가져가라” 할 때 눈물이 났다. 어르신들이 생각 날 때마다 열심히 닦아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다. 크고 작은 항아리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의 가족들은 실험 대상이 됐다. ‘토끼가 뛰어 노는 밥상’ 이라며 가끔은 고기반찬을 원했지만 “질리지 않는 맛”이라며 늘 응원해줬다. 공씨는 “광덕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장이 익어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문의=041-566-8109, 010-9093-6476



글=이경민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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