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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최빈국 백신 원조에 롤 모델 된 한국

중앙일보 2011.12.09 00:59 경제 12면 지면보기
세스 버클리
세계백신면역연합 최고경영자
지난달 29일 부산에서는 ‘제4차 세계개발원조총회’가 열렸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국가로 전환한 최초이자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다. 그런 만큼 이번 행사의 의미는 남달랐다.



 한국이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바탕에는 1950~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 한 나라의 위상을 바꿔놓은 역군이 된 것이다. 만약 이들이 적절한 원조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굶주림과 병마 속에 방치되었다면 세계 경제 10위권의 한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라나는 어린 세대는 기성 세대가 지켜나가야 할 가장 소중한 대상이며,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야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가난과 굶주림의 세습을 끊을 수 있다. 한국이 보여준 기적, 그것은 우리가 원조의 방향성을 설정해 나가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극빈국 어린이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한 나라가 스스로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립성을 키워주는 것이다.



 필자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하 가비)은 각국 정부와 민간 후원자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세계 최빈국 어린이들에게 백신 접종을 지원하는 글로벌 보건 연합체로, 2000년에 결성됐다. 지난 10년 동안 3억2600만여 명의 어린이에게 백신 접종을 위한 기금을 지원해 왔고, 550만 명 이상의 유아 조기 사망을 막았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소득 1달러가 안 되는 최빈국 케냐의 경우 2008년 어린이들의 예방 접종률이 47%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79%로 높아졌다. 국경을 넘어선 공공 민간 분야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9년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비의 협력사무소가 한국에 설립됐다. 협력사무소가 생긴 지 1년 반 만에 아시아 최초의 가비 공여국이 된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가비의 가치를 공유하고 개도국의 보건 증진과 백신 원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첫째는 개발도상국 국민, 특히 어린이용 전염병 백신을 연구개발하는 국제백신연구소(IVI) 본부가 서울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가비가 최빈국에 주로 제공하는 ‘다섯 가지 혼합백신’의 생산 기업인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가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점이다. 이 백신은 소아들이 걸리기 쉬운 다섯 가지 주요 질병인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B형 간염·뇌수막염을 유발하는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를 한 번에 예방할 수 있어서 어린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백신 공급을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관용”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백신 원조는 한 아이의 미래를, 나아가 한 국가의 미래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것을 전 세계 아이들에게 조건 없이 제공해야 할 기본권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와 가비의 한국협력사무소 설치는 한국이 지속 가능한 국제적 원조와 그 결과물로서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같은 사실에 한국 국민이 좀 더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



세스 버클리 세계백신면역연합 최고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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