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 크리스마스의 호출

중앙일보 2011.12.09 00:49 종합 10면 지면보기
이헌재를 DJ 정권으로 이끈 사람은 김용환 전 장관(오른쪽에서 둘째)이다. 2001년 8월 22일 청와대의 ‘국제통화기금(IMF) 조기 졸업’ 축하 만찬에 참석한 전·현직 경제 관료들. 왼쪽부터 이헌재, 김재철 당시 한국무역협회장, 오른쪽은 진념 당시 재경부 장관. DJ는 이 자리에서 “연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가정은 없다. 그게 삶이다. 그런데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 하와이를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1997년 12월 22일. 나는 하와이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다. 미국 유학 중인 딸·아들과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로 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했다. 지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 나라 경제는 엉망이고 수습의 실마리는 찾기 어려울 때였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꾸릴 무렵이었다.

김용환, 급히 연락 “비대위 와서 일 좀 해야겠네”



 지금 돌아보면 피식 웃을 일이다. 이헌재가 뭐길래, 경제 어려운 것과 이헌재가 무슨 상관이길래. 거창한 나라 걱정에 가족 휴가까지 취소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때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관직을 떠난 지 이미 20년. 대기업 임원, 신용평가사 사장, 로펌 고문, 국책 연구소 자문…. 정처없이 살아 온 낭인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때 나는 낙선자인 이회창 캠프의 사람으로 분류돼 있기도 했다.



 사흘 뒤인 성탄절 저녁. 집사람과 골프를 치고 집에 돌아오니 다급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휴대전화가 흔하지 않던 때였다.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의 비서 김형준이었다.



 “위원장님이 급하게 보자고 하십니다.”



 “어딥니까.”



 “내일 아침 8시까지 하얏트 호텔 커피숍으로 오십시오.”



 다음날 아침. 커피숍엔 이미 세 사람이 모여있었다. 정인용 전 부총리와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 그리고 비대위 대변인을 맡고 있던 김민석 의원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셋 다 표정이 심각하다. 나를 발견한 김 위원장이 손짓을 했다. 예나 다름없이 침착한 모습이다. 눈앞에 위기를 둔 사람같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일했던 게 벌써 20년 전이다.



 “비대위 와서 일 좀 해야겠네.” 항상 그렇듯 단호한 어조다.



 “무슨 일 말입니까.”



 “당장 일이 돌아가야 돼. 그런데 중구난방이야. 내가 장관 물러난 지가 20년이 지났어. 그동안 정치만 했고. 자네가 실무를 챙겨야겠어.”



 잠시 심호흡 했다.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그 이름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임시 기구다. 정부 편제에도 없다. 하지만 공직이다. 여느 공직과는 크게 다르다. 지금같이 나라가 어려울 때 정말 제대로 된 일을 해볼 만한 공직이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비대위 실무를 총괄하는 기획단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기획단을 맡겠습니다. 인원은 어떻게 할까요?”



 기다렸다는 듯 김민석 의원이 쪽지를 건넸다. 명단이었다. 한국은행·재경부·상공부…. 경제 부처별로 여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당장 매일매일 외환 움직임을 파악해야 했다. ‘바로 외환 통계에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직원 한 명이 필요하군.’ 재정 기획도 해야 했다. ‘세금을 잘 아는 재경부 세제실 직원 한 명도 필수네.’ 그뿐이랴. 기업 구조조정도 챙겨야 했다. ‘그런 쪽엔 한국신용평가사 출신이 잘하지.’ 서근우와 이성규가 떠올랐다. 내가 한신평 사장 시절 데리고 일하던 인재들이다. 하지만 일단은 김민석의 명단을 활용해야 했다.



 “몇 사람 더 필요합니다. 이름과 급은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비대위 이름으로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음부턴 일사천리였다. 다음날 바로 실무자 명단을 확정했다. 산업자원부 이창양 서기관, 재정경제원 이희수 서기관, 재경원 주우식 과장(주우식 과장은 며칠 뒤 이석준 과장으로 교체된다), 한국금융연구원 서근우 연구원. 내가 직접 고른 사람은 한신평에서 데리고 일했던 서근우 뿐이었다. 그리고 비서 김소연. 한 사람 더 꼽는다면 이성규다. 당시 미국 유학을 위해 비행기를 타려던 이성규를 붙잡았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무슨 유학이냐, 구조조정 일 좀 도와달라”며. 이성규는 훗날 워크아웃과 기업 구조조정을 총괄하게 된다.



 명단이 확정되자마자 직원들을 호출했다. 27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빌딩 15층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김용환 장관의 청을 받은 지 채 이틀이 안 돼 기획단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파견 명령을 받은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 6명이 그로부터 63일간 ‘초미니 정부’로 불리며 해치울 일들을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대담=이정재 경제부장

정리=임미진 기자





등장인물



▶김용환(79)



-1974년 재무부 장관을 지낼 때 금융정책과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자민련 부총재 출신으로 DJ 정권에서 비상경제대책위원장, 한국외채협상단 수석 대표 등으로 활약했다. 내 관료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다.





▶고(故) 정인용



-34년생. 재무부 출신의 관료. 1986년 재무부장관, 1987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DJ 정권에도 자문을 아끼지 않다가 2002년 3월 타계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