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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만기 5년’벽 깼다 … 체력 키운 기업들 단기자금 ‘돌려막기’벗어나

중앙일보 2011.12.09 00:27 경제 2면 지면보기
한국 회사 실적이 꾸준히 좋아져 시장의 신뢰가 커졌다. 요즘 대기업이 만기 5년짜리 장기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사진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네온사인. 커다란 삼성 광고가 눈에 띈다.


회사채의 평균 만기가 사상 처음으로 5년을 넘었다. 기업들이 6개월, 1년짜리 단기 자금을 ‘돌려막기’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차입 구조를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우량 기업이 늘었고, 또 기업 스스로도 안팎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져가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신한금융투자가 분기별 회사채 평균 발행 만기를 분석한 결과 올 4분기(11월 말까지 집계) 평균 만기가 5.12년을 기록했다. <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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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평균 발행만기가 5년을 넘은 것은 2000년 채권 시가평가제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발행만기는 2000년 초에는 2년을 채 넘지 못했지만 이후 조금씩 늘어나면서 2007년에는 4년에 가까워졌다.



2009년 미국발 신용위기로 3년 밑으로 뚝 떨어졌다 최근 다시 길어져 올 1분기에 4년5개월에 근접한 데 이어 처음으로 5년을 넘은 것이다.



 이렇게 평균 만기가 크게 늘어난 것은 최근 신용등급 ‘AAA’인 포스코가 10년·7년 만기 채권 3000억원어치를, 동서발전(AAA)이 15년 만기 채권 1100억원어치를 발행하는 등 우량기업들이 잇따라 장기자금 조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KT는 이달 말 공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0년짜리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장기채 발행 증가에 대해 “금리가 바닥 수준이라고 판단한 기업들이 자금을 미리 확보해 두려는 데다 이런 물량을 받아줄 보험사 등의 수요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포스코가 10년·7년물 채권을 발행하자 연기금과 보험사 등이 앞다퉈 사갔다. 최근 장기금리와 단기금리 간 차이가 줄면서 기업들이 장기채 발행에 부담을 덜 느끼는 것도 만기가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의 단기 자금 ‘쏠림’은 우리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단기 자금 위주로 썼는데 2009년처럼 글로벌 신용경색이 덮치면 갑자기 차환이 막히면서 멀쩡한 기업도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평균 회사채 발행만기가 10년을 훌쩍 넘는다. 기업들이 자금을 장기로 조달한다는 것은 재무안정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으로도 연결된다.



자본시장연구원 김 실장은 “장기 자금조달이라는 회사채 본연의 기능을 찾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며 “다만 이런 흐름이 일시적이지는 않은지, 또 신용도 높은 일부 기업에 국한된 일은 아닌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크레디트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예전처럼 유사시에 정부가 나서서 도와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스스로 대비하자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장기채 발행이 정착되면 앞으로 2년 이하 단기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뭔가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채권 시가평가제도=펀드 등이 사들인 채권을 장부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는 제도. 주식과 달리 채권은 가격을 알기가 쉽지 않다. 유통시장이 발달하지 못했고, 같은 회사가 발행한 것이라도 만기와 표면이자에 따라 모두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펀드에 편입된 채권을 매입가격에 날짜 수만큼의 이자를 더한 ‘장부가’로 계산했다. 하지만 2000년 7월부터 채권에도 시가평가제를 도입,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하는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펀드 등에 편입된 채권값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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