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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형 이기고 싶었다, 한·일전 때보다 더”

중앙일보 2011.12.09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오른쪽)이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한 배우 양동근에게 공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87년 5월 16일. 두 개의 태양이 부산 사직구장에 떴다.

87년 영웅의 대결 그린 영화 ‘퍼펙트 게임’ … 선동열, 그 때를 말하다



 한국야구 최고 투수 최동원(롯데 자이언츠)과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이 떠오른 태양이라면 최동원은 아직 지지 않은 태양이었다. 태양이 결코 둘일 수는 없는 법. 둘은 하늘 가장 높은 곳을 놓고 맞붙었다.



 그 1년 전인 86년 둘은 두 번의 선발 맞대결에서 1승1패씩 나눠가졌다. 판가름나지 않은 승부는 이날 세번째 맞대결로 이어졌다. 승부는 처절했다. 9회초 해태의 동점타로 게임은 2-2 균형을 이뤘고 결국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진짜 승부는 그 때부터였다.



 꽤 많은 공을 던졌지만 양 투수는 마운드를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신들린 듯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아찔한 평행선 같던 승부는 15회말 2-2 무승부(4시간 54분)로 끝이 났다.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져 한 경기 최다 투구수를 기록했다.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졌다. 이후 둘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선동열은 더 찬란한 태양으로 떠올랐지만, 전성기를 넘긴 최동원은 마운드에서 점점 멀어져갔기 때문이다. 최동원은 지난 9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떴다.



배우 양동근(왼쪽)이 영화에서 입은 유니폼을 들고 있다. 선 감독은 KIA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그 날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퍼펙트게임’(감독 박희곤·22일 개봉)이다. 선동열 역을 맡은 배우 양동근(32)과 그 날의 주인공 선동열(48·KIA 타이거즈 감독)이 5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만났다.



 #“롤모델 최동원을 넘어서고 싶었다”



 선동열(이하 선): 1981년 캐나다 대륙간컵 대회에서 최동원 선배는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공항입국장에서 기자들이 그에게 몰린 것은 당연했다. 그 때 나는 ‘내게도 저런 날이 올 거라고’ 다짐했다. 최 선배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롤모델인 최선배를 눌러보고 싶었다. 기회는 프로에 입단한 뒤 찾아왔다.



 양동근(이하 양): 공항 입국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나온다. 선 감독이 실제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니 놀랍다. 최동원 역을 맡은 조승우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연기한 건 아니다. 승우는 흥행 배우지만 내 롤모델은 아니다.(웃음)



 #“그 날은 한일전보다 더 이기고 싶었다”



 선: 86년 첫 대결에서 1-0으로 이겼지만 두번째 대결은 0-2로 졌다. 첫 대결은 ‘져도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다. 두번째 대결은 ‘또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인지 쉽게 안풀렸다.



87년 5월 세번째 승부는 자존심 대결이었다. 1-2로 지고 있다가 운 좋게 9회초 동점으로 따라잡았다. 그 때부터가 승부였다. 서로 누가 더 강한가 보여주려 했다. 누구도 마운드에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경기 후 얼음찜질하며 “승부볼 때까지 계속 던져볼까”라는 말도 나눴다. 그 날 최선배를 이기려던 마음은 한일전 때보다 더 강했다.



 양: 승우가 전화로 “같이 영화할래”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영화에서 둘 간의 갈등이 고조되진 않는다. 고(故) 최동원 감독을 생각하며 열심히 찍었다. 승우가 금테안경을 꼈을 때 정말 최동원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선동열 유니폼을 입으니까 사람들이 닮았다고 하더라.(당시 양동근은 연기를 위해 체중을 10㎏이나 불렸다.)



 #“직구에 자존심과 뚝심을 실었다”



 선: 둘다 15회까지 던지면서 어떤 시합보다도 집중했다. 우리 팀은 대타와 대주자 때문에 포수가 바닥났다. 얼떨결에 포수를 맡은 내야수에게 변화구를 던질 순 없었다. 그래서 직구의 제구력으로 승부했다. 그 절박했던 상황이 이후 투수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직구로 승부한 건 최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강속구 투수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 승부는 직구로 잡고 싶어했다. 경기 종료 후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지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양: 촬영하면서 ‘내 생애에서 던질 공은 다 던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운드에서 내려오면서 정말 후련했다. 팔이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먹어가며 던졌다. 선 감독의 투구폼은 독특해서 흉내내느라 고생했다. 영화에서도 그 날은 직구 승부였다. “직구로 가야 한다”는 승우의 대사도 있다.



 #“최동원에게 바치고 싶은 영화다”



 선: 최 선배는 나와 달리 술·담배를 하지 않는 등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나는 술 마신 다음날 등판한 적도 많았다. 내가 최 선배처럼 관리했다면 지금까지 선수로 뛰었을지 모르겠다.(웃음) 태생적으로 몸이 유연한 나와 달리 최 선배는 몸이 딱딱해서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상도 많았다. 나는 아직도 최 선배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최 선배 덕분에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최 선배를 위한 영화다.



 양: 영화에서도 나는 약간 풀어졌지만 천재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새벽 조깅하는 최동원과 밤새 술마신 선동열 사진이 대조적으로 신문 1면에 나오기도 한다. 잠시 선동열로 살며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내 안의 감춰진 면을 끄집어 낸 영화다. 내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흥행할 거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다. 



글=정현목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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