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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수의 희망이야기] 티끌 모아 1조 달러

중앙일보 2011.12.09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손병수
논설위원
“힘들지요. 쉬고 싶지요. 그러나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으면, 누가 중소기업 밥 먹여 줍니까.” 지난 5일 오후 인천시 동구 송현동 부품단지에서 만난 이광호 자코파인테크 대표의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무역규모 1조 달러 돌파를 하루 앞둔 일요일 오후였지요. “1조 달러라! 감개무량합니다.” 도대체 1조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가요. 100달러짜리 지폐로 쌓으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8848m)의 136배 높이이며,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44개 국가의 지난해 GDP를 모두 합친 것(1조493억 달러)과 비슷한 규모랍니다.



 정밀가공 전문업체인 자코파인테크는 지난해 400만 달러 상당의 제품을 전량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 제조용 장비, 선박용 바닷물 정수 필터 등이 주요 품목입니다. 중국산보다 가격이 평균 30% 이상 비싸지만 워낙 기술력이 좋아 주문이 그치질 않습니다. 올해는 연말까지 500만 달러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삼성, 현대 같은 거대기업들의 기여도에 비하면 그야말로 티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찌 단지 ‘티끌’이겠습니까. 티끌이 쌓이지 않으면 난데없이 하늘에서 1조 달러가 떨어지겠습니까.



 충북 영동 시골 마을 출신인 이 대표는 수출이 10억 달러를 넘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71년에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6년 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던 77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며 상경했습니다. 성적은 의대도 가능했지만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공대(금속공학과)를 택했습니다.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 가난 때문에 현역보다 봉급이 많은 방위산업체 대체복무를 택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자동소총 총신을 깎는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며 최고의 기술력을 키웠습니다. 몇 군데 직장을 돌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부천에서 5평짜리 사무실로 시작한 사업은 순탄치 않았지요. 처음엔 주문만 따서 하청 생산을 했는데, 물건에 하자가 나서 변상해주느라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던 고비를 여러 차례 겪었답니다. 첫해 수출은 고작 20만 달러. 3년을 버틴 끝에 공장을 빌려 직접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숨통이 트였습니다. 올해 8월엔 400평 규모의 공장을 마련했고, 그새 직원은 15명으로 늘었습니다. 정밀가공에 관한 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회사 설립 이후로 이 대표는 휴가를 가본 적이 없습니다. 1년 내내 오전 7시 출근, 밤 12시 퇴근입니다. 일 외에 다른 취미도 없고, 운동도 안 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고 편하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다시 ‘티끌’을 말합니다. “재벌에 비하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티끌이지요. 그러나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바닥을 탄탄히 받쳐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에 희망이 있겠습니까.” 까칠한 얼굴, 그러나 유난히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서 희망이 함께 반짝입니다. “힘들지요. 그러나 저처럼 죽기 살기로 일하는 사람들이 이 공단에 수두룩합니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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