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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가난을 헤아림

중앙일보 2011.12.09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지난 일요일 MBC PD수첩에서 을지로 4가역 장애인 화장실에서 사망한 서른여덟 살 홍씨의 사연을 보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러 부분에서 혁명에 가까운 리모델링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을 수 있는 진통기에 있는데 그 중심에 복지정책이 있다. 옛 선조들은 약자들을 지원할 때 지원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폈다.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에 “한 그릇 밥과 한 사발 국을 얻으면 살고 못 얻으면 죽는다 할지라도, 호통치면서 주면 길 가던 사람도 받지 않고 발로 차서 주면 거지도 더럽다고 여긴다(一簞食 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 爾而與之 行道之人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꾸짖으면서 발로 차면서 돕는다는 뜻의 호축(蹴)이란 말이 나왔다.

 조선 후기 가난했던 학자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굶어 죽을지라도 호축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명종 3년(1548)조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다. 흉년이 들자 나라에서 동서(東西)에 진제장(賑濟場)을 설치하고, 상평창(常平倉)을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쑤어 먹였다. 그런데 “사족(士族) 과부들은 직접 나서서 구걸할 수 없을 것이니 관에서 직접 쌀을 갖다 주라”고 명한 것이다. 사대부가 과부로서 남과 다투어가면서 진제장에 가서 죽을 얻어먹기는 힘들다는 속마음을 헤아려 쌀을 배달해준 것이다.

 세종은 재위 26년(1444) 3월 굶주린 백성들을 동서(東西) 활인원(活人院)과 진제장에 나누어 거처하게 하면서 병자는 다른 사람과 섞이지 못하게 따로 구호했다. 아무리 굶주린 사람이라도 병자가 뒤섞이면 전염될까 꺼리는 속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진정(賑政)에 대해 단성 현감(丹城縣監) 이후(李侯)에게 답합니다’라는 글에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나누어줄 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앉게 하고 나이든 사람과 젊은이도 따로 앉히고 사대부와 일반 백성들도 따로 앉혀서 서로 다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아무리 굶주린 사람이라도 사람의 염치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이 글에서 “사람의 정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가난과 굶주림만 한 것이 없다(常情所羞, 莫如貧餓)”고 말하고 있다.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개인 못지않게 사회나 제도의 책임도 크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속마음까지 헤아리는 복지정책을 펼칠 때가 되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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