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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농부 박경동의 사과 철학

중앙일보 2011.12.09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영훈
경제부문 기자
경북 포항시 청하면의 바닷가. 거대한 모기장 같은 시설물이 시선을 붙든다. 이 일대에서 소문난 농민인 박경동(51)씨의 사과 농장이다. 박씨는 2.3ha 농장을 모기장처럼 생긴 망으로 감쌌다. 바닷바람을 막고, 새를 차단하는 방풍·방조망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성공했다.



 사과 농장으로는 낙제점인 바닷가 입지를 극복한 박씨의 사과(후지)가 ‘올해의 과일’로 선정됐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달 지역 예선을 거친 사과·배·단감·귤 59점 중에서 뽑았다. 그의 사과, 달았다. 특히 사과를 베어 문 후 입안 가득 퍼지는 향이 일품이었다. 상을 받은 후지는 30년 된 나무에서 열렸다. 사람으로 치면 정년 퇴직할 나이에 우량아를 낳은 셈이다.



 선대부터 과수 농가를 해 “엄마 배 속부터 농민이었다”는 박씨가 요즘 사과 재배만큼 공을 들이는 게 있다. 교육 농장이다. 그는 4년여 전부터 숙박·휴게시설·교육장 등을 만들고 체험 농장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수업과 연계된 교육을 진행했다. 그들이 곧 미래의 고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품목이다. 그러나 그는 드러나지 않은 위기 두 가지를 주목했다. 하나는 사과 소비층의 고령화다. 두 번째는 소비자가 칼로 껍질을 깎아서 먹는 과일을 귀찮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렌지처럼 손으로 벗겨서 먹는 과일보다 번거롭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지만, 이게 미래 소비 패턴을 형성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체험 농장은 그래서 시작했다. 사과를 따고 만져보고 먹어 본 아이들은 달라졌다. 아이가 졸라서 주문을 한다는 부모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과는 껍질에 영양소가 많고, 친환경 재배를 하면 껍질째 먹어도 안전하다는 점도 가르쳤다.



 당장은 남는 게 없는 장사다. 평균적으로 매출의 25%를 재투자한다. 이뿐 아니다. ‘올해의 과일’로 뽑힐 만큼 품질이 좋은 그의 사과를 비싸게 사주겠다는 중간상인이 줄을 섰다. 그러나 그는 농협에 넘기는 물량을 빼고 남는 30% 정도는 직거래를 고집한다. 당장은 덜 벌지만, 단골을 확보해두면 위기 때 힘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농사의 기본이라는 객토와 물 관리에 힘을 쏟는 것도 기후에 따라 들쭉날쭉한 수확량과 품질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미래를 위한 투자와 함께 미리 변동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다음 주 초 기획재정부가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해 발표한다.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나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특히 내년 상반기는 경제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서민 모드’가 유행이니, 주목 받기 힘든 미래 준비보다는 당장 티 나는 서민 지원책을 더 넣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위기 속에 있을 기회를 선점할 수 없다. 한 해 경제 농사를 설계할 경제정책 방향에 포항 농부 박경동의 ‘사과 철학’이 담기길 기대해본다.



김영훈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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