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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61) 배신자

중앙일보 2011.12.06 13:40
필자가 대만을 처음 간 것은 단교 1년 여가 지난 1993년 가을이었습니다. 수습을 마치고 첫 부서로 배치받아 활동할 때였지요. 대만 중소기업 사장들을 많이 취재했었습니다. 아직 단교의 충격이 가시지 않을 시기였습니다. 기자를 대하는 대만인들은 겉으로 친절했으나 이내 불편함을 표출하곤 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대만인들은 몇 마디 나누고는 입을 닫았지요. 더 물어보고 싶어도 '얼른 끝내자'라는 눈치에 취재수첩을 접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년 전 우리는 그렇게 중국을 선택했고, 대만을 버렸습니다. 그것도 헌신짝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처럼 내팽겼지요.



2011년 11월, 다시 대만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주요 대기업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대만인들은 친절했습니다. 친구를 대하듯 자연스러웠지요. 상처가 아문 것일까요?



오늘 대만 취재후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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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위해 타이베이의 한 한국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이 사장과 함께 였다. 마침 한국과 대만의 야구 게임이 벌어졌다. 삼성라이온즈와 대만 퉁이의 아시아시리즈 경기였다. 삼성이 이겨가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단 이 사장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진다.



‘차라리 져줬으면 좋겠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대만인들에게 야구는 국가적 스포츠다. 500원(圓)짜리 지폐에 야구단 그림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대만인들은 야구만큼은 한국을 꼭 이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번번히 진다. 그래서 한국이 더 밉다. 한국인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발생한 대만 태권도 선수의 실격이 엉뚱하게도 대만의 반한(反韓)시위로 이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타이베이에서 사업하는 이 사장은 삼성의 승리가 또 다시 그들의 반한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배신자.' 단교 20여년이 지났어도 대만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한국인에 대한 '배신의 앙금'이 깔려있다. 쉽게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다. 그래도 믿을 만한 유일한 혈맹이라고 여기던 한국이 새장가 들겠다고 조강지처를 내치고 갔으니 속이 편할 리 없다. 그래서 더욱 대만은 한국에 지기 싫어한다.



그런데 상황은 영 달리 돌아가고 있다. 이혼하고 가더니 더 잘 나간다. 대만은 한 때 한국보다 잘 살 던 나라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역전이 되더니, 지금은 오히려 한국의 소득 수준이 더 높아졌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는 세계 스마트폰을 휩쓸고, 현대자동차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등 글로벌 기업을 보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꼬투리만 잡히면 한국을 욕하고, 한국을 비난한다. 심지어 정치권도 한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활용하기도 한다.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 싶을 때 한국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지금 대만에서는 한류 붐이 일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은 소녀시대에 열광하고, 2NE1에 환호한다. 한류드라마는 대만 유선TV를 장악한지 오래다. 한류붐을 타고 한국 음식점은 성황이다. 택시 운전사들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말을 걸고 친근감을 표시한다(아래 소녀시대 대만 공연 장면).







나를 버리고 떠난 그가 밉다. 그런데 나와 헤어진 후 더 잘산다. 그들의 문화는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옛 사랑의 추억이 더 간절히 생각난다... 한국을 바로보는 대만인의 심사는 이렇게 복잡하다. 멀어질 수록 더 가까워지고 싶은 애증의 심리가 그들 마음을 채우고 있다.



대만인들은 한국과 친구하고 싶어한다. 옛정을 회복하고 싶다. 같이 한 지붕에서 살지는 못하더라도 오손도손 오가며 친구처럼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실적으로 주변에서 친구할 만한 나라는 없다. 중국은 못잡아 먹어 안달이고, 일본은 이미 너무 앞서가 있고, 동남아시아는 같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한국과 친구로 지내고 싶은 것이다. 젊은이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것은 그런 심리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이 '배신자'는 대만을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에 대만은 아예 없다. 오로지 중국뿐이다. 정치인들은 대만 가기를 꺼린다. 심지어 '대만에 자주 드나들면 중국 눈밖에 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다. 택도 없는 소리다. 중국 공산당과 대만의 집권여당은 지금 서로 왕래하며 미래를 논의하고 있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지난 2011년 10월 10일 건국기념일에 46명이 다녀갔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만은 한국 정치인들도 초청했다. 그러나 고작 한 명 갔을 뿐이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롄잔 대만 국민당 명예 주석을 만나고 있다



기업인들 역시 중국뿐이다. 기업 총수들의 시각에 대만은 없다. 숫한 초청에도 대기업의 주요 간부들은 대만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륙을 드나들며 경영회의를 하면서도 대만은 애써 외면한다. '그 까짓 대만, 중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리의 최대 교역파트너는 중국이다, 그리고 미국 일본이 뒤를 잇는다. 그 다음이 어느 나라인지 아는가? 대만이다. 물론 통계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앞서지만, 이 지역 수출의 대부분은 거쳐갈 뿐 최종 시장은 아니다. 대만은 우리의 제4위 수출시장인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에 있다. 작년 양국 교역량은 약285억 달러에 달했다. 우리가 12억 달러 흑자다. 거의 균형이다. 우리가 대만에 파는 것만큼 또 사오는 것이다. 이 같이 환상적인 교역구조가 어디에 있는가?



품목을 보면 완벽한 하모니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대만에 가장 많이 파는 품목이 반도체다. 가장 많이 사오는 것도 반도체다. 우리가 비(非)메모리 반도체를 팔고, 메모리 반도체를 사오는 식이다. 10대 대 대만 수출입 품목을 보면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 대부분 겹친다. 결국 한국과 대만은 같은 업종에서 서로 주고받기식 교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에서 가장 바람직한 상생 구조가 형성됐다.



혹자는 '중국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말한다. 기우다. 중국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 중국은 정치 군사 외교 이외의 분야에서는 대만의 자율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한다. 그게 일국양제(一國兩制)다. 그걸 깨면 오히려 대만 독립을 부추길 뿐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정치인은 대만을 무시하고, 기업인들은 '중국 바라기'가 되어 있다. 그러니 대만인들로부터 ‘천박한 자본주의자들’이라는 비아냥 소리를 듣는 것이다.



현지 기업인들은 대만이야 말로 우리의 최고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손을 내밀면 금방 보따리를 싸들고 따라올 정도로 한국을 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만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인 ECFA로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어쨌거나 대만에게 우리는 '배신자'다. 배신자가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머리 속의 혈맹 대만을 살려내야 한다. 한중수교 이제 20주년, 그게 그동안 대만에 진 빛을 갚는 길이다. 지금 머뭇거린다면 150억 달러의 수출시장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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