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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채권은 따뜻했네

중앙일보 2011.12.06 04:00 Week& 1면 지면보기



글로벌 경제위기로 주식은 못 믿겠고 … ‘안전지대’로 돈 몰린다 

지난달 21일. 한국투자증권이 아홉 가지 종류의 소매채권 1350억원어치를 팔기 시작했다. 선착순이었다. 미처 홍보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판매 창구가 문전성시였다. 내년 3월 만기에 연 4.03%(개인 세전 기준) 수익을 주는 한국수출입금융채 100억원어치가 당일 모두 팔려 나갔다. 10억원을 들고 와서 사간 사람만 네 명이었다.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게 남고 수익률이 높은 신한카드채와 국민은행채 각각 100억원어치도 나흘 만에 판매가 끝났다. 신촌지점 장화숙 대리는 “은행 예금만 하던 50대 손님이 찾아와 채권에 10억원을 투자했다”며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맞아 예금보다 금리가 조금이라도 높은 채권이 인기다”고 말했다.



 시장이 하 수상하다. 유럽 재정위기로 주가가 연일 롤러코스터를 탄다. 글로벌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란 얘기가 들리고, 기업들의 실적도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을 밑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가가 올라도 주식 투자 하기가 갈수록 찜찜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가는 게 채권이다. 경제가 나빠져 금리가 하락(채권값 상승)하면 시세차익까지 생기는데,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수익이 커진다. 특히 노후 대비 자산 분산 차원에서 채권은 필수라는 게 요즘 부자들의 생각이다.



 자산 배분은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다. 1991년 ‘금융분석(Financial Analyst)’에 발표된 논문 결과를 봐도 그렇다. 전 세계 80여 개 연금의 10년간(1977~1987년) 투자수익률을 분석했더니, 성과에 자산 배분이 미친 영향이 91.3%나 됐다. 종목 선정(4.8%)이나 투자 시기(1.8%) 등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위험자산(주식)과 안전자산(채권)의 비중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손쉬운 방법은 ‘100-나이’의 법칙을 활용하는 것이다.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만큼만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방법이다. 나이 50을 넘으면 안전자산이 위험자산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 단순하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좀 더 정교한 방법이 없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자산 배분 전략을 짤 때 활용하는 법칙을 참고할 만하다. ‘Fed 법칙’, 혹은 ‘그린스펀(전 Fed 의장)의 법칙’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과 국채 수익률을 활용한다. PER의 역수(백분율)에서 국채 수익률을 뺀 값을 구한다. 이 값이 위험자산 투자로 기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추가 수익률(미국은 3~4%)을 웃돈다면 주식 투자를 늘려야 할 때다. 반대의 경우엔 채권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거래소 시장 평균 PER(11.43배)과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3.79%)을 이용한다(2일 기준). Fed 법칙으로 구한 값은 4.96%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에 투자하면 예금보다는 최소 5~6%포인트는 수익을 더 얻기를 기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주식말고 채권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라는 의미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했던 2007년 10월 시장 평균 PER은 18.2배였다. 당시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5.5%. Fed 법칙으로 구한 값이 0%였다. 절대 주식에는 투자하면 안 되는 때였던 셈이다.



 국내에서는 전통적으로 만기가 짧은 채권이 인기다. 가계 금융자산 중 실질장기채권(직접+간접투자 합계) 비중이 미국(22%)·일본(33%)과 비교했을 때 국내는 4%에도 못 미친다(2009년, 현대경제연구원).



그런데 최근엔 장기채에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삼성증권이 판매한 만기 10년, 20년짜리 장기채권 금액이 최근 3개월 새 7000억원을 웃돈다.



정범식 리테일채권팀장은 “금융자산 가운데 은행예금을 선호하던 전통적인 자산 운용 방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금리가 더 내려갈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예금보다는 금리가 높으면서 예금 수준으로 안전한 장기 국고채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 1~2%로 승부를 내는 채권투자가 심심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투자자들에게도 ‘하이일드채권’이라는 대안이 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며칠 전 어떤 부자고객은 ‘범양건영2회’ 1만 원짜리 회사채를 8000원에 7억원어치 산 후 이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값이 2500원으로 떨어지자 5억원 더 사 물타기를 했다”며 “회수율이 70%만 나와도 채권으로 두 배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대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 채권에 투자를 하겠다면 부도 위험이 없는 안전한 채권을 골라야 한다. 채권 투자의 가장 큰 위험은 발행회사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신용위험’이다. 신용위험은 신용평가사가 매기는 신용등급으로 확인한다. 그런데 신용등급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회사 상태가 급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영업 현황, 재무 유동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채권 투자는 여유자금으로 해야 한다. 예금은 중도 해약해도 원금이 보장되지만 채권은 금리 변동에 따라 원금 손실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 투자자가 아니라면 채권을 사고팔아 차익을 노리기보다는 만기까지 보유해서 이자를 챙기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게 낫다.



 채권에 직접 투자하기가 부담스럽다면 펀드를 비롯한 간접상품이 대안이다. 동양증권은 종목·만기·신용등급이 다양하게 분산된 채권 포트폴리오 상품인 ‘동양본드폴리오’를 판매한다. 다양한 채권에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일부는 주식이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추구하는 삼성증권의 ‘골든에그어카운트’는 8월 출시 이래 1조원 넘게 팔렸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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