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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의 야수’ 격추설… 미·이란 ‘보이지 않는 전쟁’

중앙일보 2011.12.06 01:01 종합 18면 지면보기
일요일인 4일 중동 지역에서 국제전문가가 주목하는 두 사건이 발생했다. 바레인에 있는 영국 대사관 밖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와 이란이 주장한 미국 무인기 RQ-170 격추다. 두 사건은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 등 서방 간 보이지 않는 물밑 전쟁이 불거진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미국이 이란에 RQ-170을 투입했다면 이란으로선 미군의 위협 강도가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사마 빈 라덴 은거지를 급습하기 전 감시하는 데 쓰였던 정찰기가 바로 RQ-170이기 때문이다. 이 정찰기는 ‘칸다하르의 야수(Beast of Kandhar)’라 불리며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세력 거점 파악에 한몫해 왔다.



 물론 이번 사건은 기체 고장이나 원격 조종자의 착오에 의한 영공 침범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안보지원군(ISAF)은 이날 “이란 측이 언급한 무인항공기(UAV)가 지난 주말 아프간 서부 상공에서 임무 수행을 하던 미군의 무인 정찰기일 수도 있다”며 “문제의 UAV는 (원격) 조종자가 통제력을 상실해 현재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이란이 RQ-170을 격추했다는 이란 동부지역과 미군 정찰기가 비행한 아프간 서부지역 사이엔 국경선이 지난다.



워싱턴의 미국 관리는 “이란에 추락한 무인기가 격추된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비행 불능 상태에 빠져 추락한 것일 뿐 격추된 건 아니란 뜻이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은 이란군이 무인기 동체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 무인기를 격추했다는 이란 측 주장은 지난 1월과 7월에도 나왔다. 문제는 이번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무기 개발 보고서가 나온 뒤 이란·서방 간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의 대이란 금융거래 중단, 이란 핵시설 부근 이스파한에서 발생한 강력 폭발 사고, 이란 시위대의 이란 주재 영국대사관 습격 사건이 있었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외무장관은 4일 대사관 습격 사건에 대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긴장은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내셔널 저널은 4일 미국이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이란의 핵시설 파괴 및 핵 과학자 암살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반격 흔적도 보인다. 미국은 지난 10월에 발생한 미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암살 사건에 이란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4일 발생한 바레인 주재 영국 대사관 인근 지역 폭발 사건도 이란이 일으켰을 것으로 미국은 추정한다.



허귀식 기자





◆RQ-170=록히드마틴사가 제작한 ‘스텔스’ 무인기(드론)다. 관측이 잘 안 되는 곳에 대한 정보수집·감시 및 정찰을 수행한다. 미국이 치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2009년부터 아프간에 배치돼 있다. 미 공군도 2010년 이를 공식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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