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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와 패거리 챙기기

중앙선데이 2011.12.03 23:27 247호 31면 지면보기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의 노동계가 지난 1일 24시간 파업을 벌였다. 내년 예산안에 담긴 긴축조치에 항의해서다.
그리스가 이토록 처참한 경제위기에 몰린 이유는 뭘까?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 때문인가? 그리스의 복지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21.3%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이다. 정말 복지 때문이라면 복지 비율이 25%를 넘는 스웨덴·덴마크·독일이 먼저 위기를 맞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놀기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국민성 때문인가? 2008년 기준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을 보면 그리스는 2120시간이었다. OECD 국가 가운데 연간 2256시간 일하는 한국 노동자 다음이다. OECD 국가의 평균인 1764시간에 비하면 게으르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연간 1430시간만 일하는 독일이야말로 경제위기를 맞았어야 한다.
그리스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일까? 지난여름 그리스에 갔을 때 기이하게 느낀 것은 총체적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의 씀씀이는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느 때처럼 사람들은 여름 휴가를 갔고, 식당과 카페는 붐볐으며, 먹고 마시는 품이 여유로웠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리스의 지하경제 규모는 자그마치 24.7%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그리스에서는 심지어 고용주와 피고용자 사이의 임금계약서마저 숫자를 낮춰 세무서에 신고한다. 예를 들어 연봉 1억원을 받을 경우 세무서에는 5000만원으로 신고한다. 양측 모두 탈세를 하기 위해서다. 식당·카페에서도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돈을 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정확한 수입과 지출을 숨기고 싶어 대부분 현금 결제를 한다. 이런 음성 수입이 있기에 나라의 경제 위기에도 개인들의 씀씀이는 그대로다. 도덕적 해이가 온 나라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사회 전반에 퍼진 부패 때문이다. 특히 GDP의 40%가 공공 부문에서 창출돼 부패의 범위와 피해는 더 심각하다. 그리스의 부패지수는 중국·태국과 함께 182개국 가운데 78위를 차지한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은 ‘자기 사람’을 공기업에 취직시켰다. 그 결과 공기업들은 과잉 고용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쓸데없는 인력이 넘치다 보니 일을 억지로 만드는 관료주의가 생기고, 노동생산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류층의 이런 부패에 대해 국민은 다운 계약서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탈세하면서 나름대로 반발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악순환이 이렇게 완성됐다. ‘패거리 챙기기’가 가져온 치명적 폐단이다.

이런 악순환의 배경에는 불과 열 개도 안 되는 정치 가문이 존재하고 있다. 2009년 경제위기를 가져온 코스티 카라만리스 총리는 1974년 군사독재를 종식한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총리의 조카다. 국민투표를 시도하다 물러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3대(代)째 총리직을 차지했다. 이런 정치 명문가의 자손들은 경쟁을 모른 채 특권 의식만 가지고 있기에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장 시급한 일은 ‘패거리 챙기기’를 깨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다른 해결책들은 미봉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의 위기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 걸친 체제의 위기다. 그리스인은 역사적으로 위기에 처하면 평소라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단결력을 과시하며 국난을 극복해 왔다. 멀리 페르시아 전쟁부터 1821년 오스만튀르크를 상대로 벌인 독립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 불굴의 투쟁력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그들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유재원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아테네대학 언어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그리스 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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