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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를 사랑했을 때

중앙선데이 2011.12.03 22:00 247호 40면 지면보기
『롤리타』(1955)라는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작품으로 롤리타라는 이름의 10대 소녀를 사랑했던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때로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진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은 나보코프의 작품을 불온한 것으로 단죄하려 했다. 딸 같은 소녀를 중년 남자가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근친상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롤리타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아동에 대해 성욕을 느끼는 정신적 질환이라는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1> 스피노자와 감정

그렇지만 남자 주인공의 고백,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라는 소설의 첫 구절은 우리를 울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사랑에 열병을 앓아본 사람만이 주인공의 사랑에 공감할 테지만.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저주를 감당하면서도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했던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분명 처음에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억누르려고 했을 것이다. 롤리타에 대한 사랑이 자신이나 그녀의 삶에 미칠 악영향을 계산하면서. 그렇지만 감정은 용수철과 같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발력을 갖는다. 어느 순간 감정은 자신의 위에 군림하려고 했던 이성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키게 된다.

이것이 비극의 순간일까? 아니다. 사회적 통념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지키겠다는 결단은 주인공을 통념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 만들었다. 사랑을 부정하면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반대로 사랑을 긍정하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마침내 주인공은 알게 된 것이다. 롤리타에 대한 감정 그 자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일까? 이것은 감정의 강력함에 직면했던 인간의 절망스러운 소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응시한 경험이 있다면, 인간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사실 이성이 감정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이 감정을 적대시한다면 언젠가 감정의 참혹한 복수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칸트(Immanuel Kant)의 이성과는 다른 종류의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감정의 쓰나미를 무모하게 막아서려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의 이성 말이다.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스피노자만이 ‘이성의 윤리학’이 아닌, 개개인의 감정에 주목한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했다. 스피노자가 피력했던 감정의 윤리학은 아주 단순한 사실, 즉 타자를 만날 때 우리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들은 정신이 큰 변화를 받아서 때로는 한층 큰 완전성으로, 때로는 한층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정념(passiones)은 우리들에게 기쁨(laetitia)과 슬픔(tristitia)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에티카(Ethica)』중)

그렇다.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우리는 자신이 더 완전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기쁨이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과 헤어지려고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이 쪼그라지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이와 전혀 다른 만남도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이 불완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슬픔의 감정이다. 같이 있을 때 무기력해지고, 그와 헤어지려고 하면 즐거워지는 불행한 감정 상태인 셈이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슬픔과 기쁨이라는 상이한 상태에 직면한다면, 슬픔을 주는 관계를 제거하고 기쁨을 주는 관계를 지키라고. 스피노자가 제안한 ‘감정의 윤리학’이 ‘기쁨의 윤리학’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피노자의 도움으로 마침내 우리는 롤리타를 사랑했던 주인공의 속내, 그 복잡한 감정 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은 롤리타를 만났을 때 기쁨을, 반대로 그녀와 헤어질 때 슬픔을 느꼈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롤리타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이 완전해진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드넓은 대양이 수많은 파도를 품고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너무나 다채로운 감정들이 숨어있다. 문제는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명확히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우리에겐 인문학이라는 등대가 있다. 감정의 본질을 직시하는 철학과 감정 하나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굴곡지게 하는지 보여주는 문학을 통해 깊고 깊은 감정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보자.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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