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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표는 엔카가 흐르는 햄릿”

중앙선데이 2011.12.03 21:58 247호 38면 지면보기
-셰익스피어를 일본적으로 연출한 작품들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일본 문화의 어떤 점이 세계 연극계에 통했다고 보나.
“영국에서는 리얼리즘과 양식미의 융합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영국에는 양식적인 연기가 없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비약적인 표현을 배우에게 요구하면 잘 못한다. 우리 배우는 양식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으므로 두 가지를 통일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매우 풍부한 신체 표현으로 만들 수 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는 언어의 연극이라 우리의 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셰익스피어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그저 보고 즐기도록 연출하려 하고, 그런 ‘눈의 연극’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첫 내한공연 가진 일본 셰익스피어 연출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


-일본에서는 가부키, 노, 분라쿠 등 전통 예능이 현대 연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 예능의 매력이 뭐고 어떻게 해야 현대적으로 잘 살릴 수 있나.
“우리는 스타니슬랍스키, 브레히트 등 유럽 연극을 철저히 공부한 세대다.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연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내버렸던 전통적인 것을 재점검할 필요를 느꼈고, 다시 고전 예능을 공부했다. 예컨대 가부키라면 의상을 확 벗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거나 뒤에서 막이 떨어지며 곧바로 장면 전환이 되는 초현실적인 양식의 기법이 있다. 그런 고전 예능의 매력을 현대 연극에 적용시키니 리얼리즘만으로 발전해 온 유럽 연극에 일본 문화의 독창적이고 비약적인 초현실주의를 더할 수 있었다. 가부키나 고전 예능 자체는 전혀 재미없고 졸릴 뿐이지만 거기서 매력적인 기법을 발견해 적용하는 것이다.”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선생은 남성 배우가 여자역을 하는 ‘올 메일(all male) 시리즈’도 꾸준히 만들고 있고, 이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주역 아란 케이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남역(여성들만 나오는 극에서 남자 역할을 맡는 배우) 출신이다. 성을 바꿔 연기하는 양식은 일본에서 특히 사랑받는 것 같다. 그런 양식의 매력은 뭔가.
“그리스 비극도, 셰익스피어도 원래는 남성들만 무대에 올랐었다. 일본의 가부키, 노에도 남성이 여성 역할을 하는 전통적인 연기가 확립돼 있다. 비상식적이지만 연극의 양식으로 보면 야릇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예쁜 남자가 여장을 하는 변화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을 교양, 문화의 관점에서만 말하지만 이런 이상야릇한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예능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과 경멸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저런 것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변화를 즐기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인간 속에 있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런 양식의 매력이다.”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반드시 해외공연을 하고 있다. 해외공연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역시 일본 문화를 알리는 일인가?
“먼저 우리나라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 한국에 간다고 섣불리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실례다. 그 나라 문화를 흉내내고 도입할 요소를 찾는 것은 간단한 일도 아니고. 먼저 우리나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외국인에게도 사랑받을 거라 믿는다. 외국 공연을 염두에 두고 고치는 일은 없다. 그러기에 유럽 흉내도 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셰익스피어를 이해시키려고 대사보다는 비주얼에 치중하다 보니 불화(佛畵) 속에 맥베스의 무대를 설정하곤 하는 것이고, 그렇게 완성된 것이 해외에서 초청받는다.”

-공연 시작 전 준비 과정을 관객 앞에 노출하거나 인사를 먼저 하고 시작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일본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연기합니다’라는 선언이다. 그러지 않고 바로 유럽인 흉내를 낸다면 창피하지 않은가.”

3 2009년작 ‘무사시’의 한 장면.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SMAP의 기무라 다쿠야와 아라시의 마쓰모토 준 등 아이돌과 톱스타들이 선생의 무대에 서기 위해 줄을 선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데. “기무라 다쿠야의 첫 무대를 내가 연출했다. 고교 2년 때였는데 역시 SMAP의 나카이 마사히로와 둘을 면접해 기무라를 선택했다. 심하게 지적을 해도 참고 열심히 했는데, 세트 뒤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더라. 요전에 만나서 내가 죽기 전에 또 한번 같이 하기로 했다. 마쓰모토 준이나 젊은 스타들은 모두 지금의 자신보다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자신을 더 단련하고 싶은 의욕에서 무대에 서고, 가장 엄할 것 같은 나를 찾아온다. 어디까지나 훌륭한 배우를 만드는 일이니 소속사에서도 대부분 협조한다. 오구리 슌의 경우도 주로 조역을 맡았지만 무대에 자꾸 서면서 톱스타가 됐다. 연극은 시간을 들여 역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영화처럼 바로바로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업을 몇 개월에 걸쳐 여러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가 발전하게 된다.”

-시니어극단 ‘골드시어터’도 운영하고 있다. 프로들과의 작업만으로도 바쁠 텐데, 어떤 의미인가?
“생활인들과 함께 프로와는 전혀 다른 연극을 해보고 싶었다. 생활인들의 집단과 프로배우들을 양쪽에 쥐고 있으면 세계 전체가 손에 들어온다. 자기 작업을 보통 사람의 눈으로 만들어봄으로써 자기 작품을 비판하고 상대화시켜 양쪽을 자극해 가는 의미다. 노인극단이란 인간이 늙어가는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달리는 집단이다. 대사를 못 외우고, 잘 넘어지고, 오늘은 하지만 내일은 못하고, 남편이 입원을 하면 간병을 해야 하고… 인간이 늙어가는 모습,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골드시어터에 모두 들어 있다. 병에 걸렸던 사람이 연극을 시작하니 건강해지고, 어제까지는 연습장에 오면서 한 번은 쉬어야 했던 사람이 오늘은 단번에 오게 되고… 나이 먹어 목적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삶의 의욕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골드시어터다. 그런 노인 문제를 관객에게 생생히 노출하는 의미기도 하다.”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비주얼을 추구하는 니나가와 미학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더욱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된다. 노인이 자기들의 잃어버린 청춘에 절망하지 않고 더욱 희망을 가꾸어 가려는 대사를 하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다른 정신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거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본다면 아름다움도 뭣도 아닐지 몰라도 인생이란 측면에서 노인은 아름답고, 노인이 젊은 세대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꼭 보러 와달라.”

-대중적인 연극을 하면서도 예술성을 평가받는 대표적인 연출가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일이 현대 연극의 큰 과제인데, 그럴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성격 문제다. 나는 고급 요리보다 여러 가지가 한 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좋아한다. 연극도 인텔리, 귀족, 하층민 모든 계급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객석의 거울과 같은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문제를 포함해서 그런 모든 것이 혼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으니 무대에도 그대로 반영하려는 거다. 설교하는 듯한 작품은 지루할 뿐이다. 감동과 전율을 주어야 한다. 감동을 이루는 요소는 연기, 미술, 음악 전부다. 연극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스태프가 뒤에서 지탱해 줘야 할 수 있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장면전환이 잦은데, 그 표현을 위해 물건이 움직여야 하고 소도구, 의상, 음향, 모든 스태프의 힘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모두가 자기 능력의 최대한을 뽑아내는 순간 관객에게 조용한 감동이 전달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순수연극은 잘 보지 않는다. 연극은 죽어가는 장르라고도 하는데.
“세상이 디지털화돼 갈수록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생생한 체온을 느끼는 신체의 퍼포먼스는 더욱더 중요시될 것이다. 아날로그 세계란 엄마가 아이를 낳는 한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더 발전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내가 아직 할 일이 있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무명의 신인들을 주역으로 세운 햄릿을 무대에 올리는데 71세 엔카 가수가 출연해 햄릿의 한복판에서 엔카를 부른다. 새로운 셰익스피어 또한 계속 발견해 갈 것이다.”


니나가와 유키오
1960년대 좌익사상이 팽배하던 일본에서 소극장 실험극 운동을 주도했던 ‘앙그라(언더그라운드)’ 1세대 연출가다.
70년대 이념논쟁이 퇴색하자 대기업 ‘도호’와 손잡고 대극장에서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리며 상업 연극으로 전환했다. 투쟁적인 실험극을 포기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자 평론가들에게 변절자라 비난받았지만, 프로듀서 시스템을 확립하고 활발한 해외공연을 기획해 일본 연극의 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1983년 그리스 비극 ‘왕녀 메디아’를 가부키 식으로 연출한 로마 공연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이래 꾸준히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을 일본적으로 연출한 무대를 해외에서 선보여 2002년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수여했다. 엄격한 연기지도로 정평이 나 기무라 다쿠야, 마쓰모토 준, 오구리 슌 등 수많은 톱스타와 아이돌이 그의 무대를 거쳤다. 55세 이상 시니어들의 골드시어터, 30세 이하의 넥스트시어터 등을 운영하며 다양한 연극의 실험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 패션 디자이너 잇세이 미야케와 함께 일본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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