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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막아 눈 밝게 하는 貝類의 왕자 ...탄생일·동지·1월1일엔 생복 올려

중앙선데이 2011.12.03 21:49 247호 32면 지면보기
생복 양식산업이 진행되는 요즘도 여전히 생복은 사치스러운 식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3㎝ 이하 어린 것을 먹을 만한 크기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4~5년이 걸리니까 이래저래 비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식재료 10위 안에 드는 생복은 조선시대에는 맛도 맛이지만 장수식품으로 여겨져 패류의 왕자로 군림했다.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2> 전복

조금의 인기척에도 바위에 꽉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생복이다. 해서 해녀가 물속에 들어가 하나하나 느닷없이 덮쳐야만 생복 따기는 가능했다. 백성에게 부과된 전복 진공(進貢)의 배후에는 갖은 고생을 하며 생복을 따낸 해녀들이 있었다. 세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기건(寄虔)은 재임 2년 동안 해녀들의 고생을 생각하며 한 번도 전복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몇 종류의 말린 것이 있어서 온전히(全) 통째로 말린 건복(乾鰒)을 전복(全鰒)이라 했다. 생복의 내장을 없앤 다음 박고지 만드는 것처럼 작은 칼로 귀 끝까지 끈 형태로 얇게 저며 벗겼다. 이것을 햇볕에 길게 늘려 또 말리는데 길게 늘려 말린 것은 건복장인(乾鰒長引) 혹은 장인복이라 했고, 짧게 늘려 말린 것을 건복단인(乾鰒短引) 혹은 단인복이라 했다. 혹은 이렇게 늘려 말린 것을 통틀어 인복(引鰒) ·추복(追鰒·두들겨 가며 늘려 말린 복)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선 땅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여지도서』(1757)에 의하면 생복은 충청도의 홍주·서산·태안·남포·결성·보령·비인과 전라도의 영암·광양·흥양·장흥·진도·강진·해남·순천·낙안·보성·제주도, 경상도의 통영·경주·진주·동래·연일·장계·기장·고성·진해·남해·울산·김해, 강원도의 울진·강릉에서, 전복은 전라도의 영암·영광·광양·흥양·나주·장흥·진도·강진·해남·순천·낙안·보성·제주도, 경상도의 경주·통영·동래·연일·장계·기장·김해·창원·거제·고성·칠원·진해·웅천·울산·하동·사천에서 진공했다. 웅천에서는 소금을 뿌리지 않고 말린 무염전복도 진공했다.

또 건복장인은 전라도의 영암·영광·광양·흥양·나주·장흥·진도·강진·해남·순천·낙안·보성에서, 건복단인은 경상도의 진주·기장·김해·창원·거제·칠원·웅천·곤양·울산·사천·진해에서, 건숙복(乾熟鰒)은 전라도의 영암·광양·장흥·진도·강진·해남·순천·보성, 경상도의 통영에서 진공했다.
생복은 충청·전라·경상도의 몫이었지만, 말린 전복은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에 나누어 정해졌는데 단인복은 경상도, 장인복은 전라도에 분정(分定)되고 있다. 이렇듯 여러 곳에서 진공함에도 불구하고 『규합총서』(1815)에서는 울산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울산은 생복·전복·인복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탄생일·동지·1월 1일에 올린 생복의 경우 껍데기가 붙어 있는 채로 진공되는 것을 유갑생복(有甲生鰒)이라 했다. 이 유갑생복은 뱃길로 경성과 매우 빠르게 통했던 충청남도 내포지역인 태안·남포·비인에서 올렸다. 이렇듯 축복스러운 날 집중적으로 진상된 것은 맛 외에도 장수식품으로서의 가치 때문이었다.
진상된 껍데기는 두 종류로 쓰였다. 하나는 갑회(甲膾)라 하여 전복껍데기가 그릇이 되어 전복회를 담아 상에 올리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약으로 사용됐다. 껍데기에 구멍이 7개 또는 9개 있는 것이 좋은 품질로 쳐서 이를 천리광(千里光)이라 했다. 싱싱한 껍데기를 밀가루 반죽에 싸서 굽거나 혹은 소금물에 담가 끓여 달인 뒤 겉의 검은 껍데기는 긁어 버리고 밀가루 형태로 곱게 갈아 눈의 청맹(녹내장)과 백내장 치료에 쓰거나 간과 폐의 풍열(風熱·붓고 열이 나는 질병) 치료에 쓰였다.

약효는 육질도 마찬가지여서 성질은 차고(凉) 맛은 함(·짠맛) 하지만, 먹으면 노화를 막아 눈이 밝아진다 했다. 그래서 이 장수 식재료로 만든 찬품(饌品·메뉴)은 가장 고귀한 음식으로 여겨져 경사스러운 날 임금님상에 올랐다. 단인복이든 장인복이든 상에 올려질 때는 절육(折肉)이라 하여 꽃 모양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 술안주용 절육은 궁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복이 많이 생산되는 경상도에서는 허균(1569~1618)의 생존 시절 이미 칼로 잘라 꽃 모양으로 만들어 상에 올려 화복(花鰒)으로 장식했다. 상차림에서 나타나는 풍류의 미학이다.

절육 외에 간혹 노인들에게 드시게 할 경우 전복다식(全鰒茶食)으로 만들어 올렸다. 인복을 잘게 썰어(간혹 전복을 쓰기도 했음) 갈아서 베보자기에 싸고 물을 축여 전복 모양의 다식판에 박아 노인의 밥반찬으로 하는 것이다. 물에 담가 불린 전복과 생복은 추복탕(追鰒湯)·전복숙(全鰒熟)·생복증(生鰒蒸)·생복초(生鰒炒)·전복초·전복볶기(卜只)·갑회(甲膾)·생복화양적(生鰒花陽炙)·생복어음적(生鰒於音炙) 등과 같은 탕·증(찜)·초·볶기·회·적으로 조리되어 궁중에서의 상차림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생복회
전복을 껍데기에서 떼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으로 문질러 씻는다. 굵게 저민다.고추는 1㎝ 길이로 썰어 씨를 없애고. 쪽파의 흰 부분은 2~4등분해 2㎝ 길이로 썬다.생강은 채로 썬다. 깨끗이 씻어 말린 전복 껍데기에 전복과 양념을 올리고 초장을 곁들인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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