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즈 떠나 새 주인 찾는 세기의 보석들

중앙선데이 2011.12.03 21:32 247호 26면 지면보기
© Christie’s Images Limited 2011, 사진 Douglas Kirkland Corbis
50캐럿 물방울 진주 목걸이, 33캐럿 다이아 반지 "내가 맥주를 소개했더니 그녀는 불가리를 소개했다"
크리스티는 제네바 전시를 위해 레만 호수 주변에 자리 잡은 포시즌 데 베르게 호텔 2층을 통째로 빌렸다. 전시공간 정중앙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애칭 Liz·이하 리즈)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보라색 조명은 전시 공간을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리즈의 가장 상징적인 주얼리 60점이 보석 종류, 스타일 유형 등으로 구분돼 쇼 케이스에 진열돼 있었다. 리즈와 평생을 같이하며 전설의 한 부분을 이뤘던 주얼리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녀의 존재감이 갑자기 확 느껴졌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 앞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얼리 전시회를 가다


리즈는 리처드 버턴과 로마에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으며 사랑에 빠졌고 부부가 됐다. 당시 리처드 버턴은 “내가 그녀에게 맥주를 소개했더니 그녀는 내게 불가리를 소개시켜 줬다”고 했고 “리즈가 유일하게 아는 이탈리아어는 ‘불가리’였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리처드 버턴은 영화를 찍던 1962년부터 67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로마 콘도티가의 불가리 매장을 방문하며 진한 녹색 에메랄드가 세팅된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 등을 구입해 리즈에게 선물했다. 이 주얼리들 모두 전시장에서 볼 수 있었다.

카르티에 루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리즈와 1957년 결혼해 13개월 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리즈의 세 번째 남편이크 토드의 선물이다. 예상가 목걸이 20만~30만 달러,귀걸이 8만~12만 달러.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유명한 진주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 목걸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라 페레그리나는 지름 17.5㎜, 높이 25㎜, 무게 202.28그레인(약 50.6캐럿)의 물방울 형태 천연 진주다. 1500년대 파나마만에서 발견돼 당시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의 부인이었던 영국의 퀸 메리에게 증정됐고 스페인 왕관에 삽입됐다. 그 후 스페인 왕족들의 손을 거쳐 나폴레옹 3세의 아들 소유가 됐다가 영국 귀족 마퀴즈 아베르콘에게 넘어갔다. 1969년 1월 버턴이 경매에서 스페인 로열 패밀리가 부른 가격보다 훨씬 높은 3만7000달러에 이 진주를 구입, 리즈에게 38세 생일 선물로 선사했다. 처음에는 16세기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퀸 메리의 초상화에서 영감을 받아 펜던트로 만들어 착용했고 이후 카르티에에 의뢰해 루비와 다른 천연 진주들을 매치, 현재의 목걸이로 만들었다.

버턴이 68년 5월 16일 선물한 ‘리즈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D컬러 FL 등급의 33.19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중앙의 흑백사진 바로 옆 쇼 케이스에 단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당시 ‘크루프 다이아몬드(Krupp Diamond)’로 알려져 있던 이 다이아몬드를 경매에서 30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고 이 반지는 곧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대명사가 되었다. 리즈는 이 반지를 거의 매일 착용했다. 그녀는 “내 반지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상한 느낌을 줘요. 이 큰 다이아몬드가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빨강, 파랑, 보라, 노랑 등 수많은 색은 마치 그들의 기쁜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속삭임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JAR가 제작한 다이아몬드와 멀티 컬러 사파이어가 박힌 볼 귀걸이.예상가 10만~15만 달러.불가리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목걸이.리처드 버턴의 선물이다.예상가 100만~150만 달러.빈티지 다이아몬드 티아라.마이크 토드는 “당신은 나의 여왕”이라며리즈에게 이 티아라를 선물했다예상가 6만~8만 달러.
20개의 참(charm)이 달린 팔찌.리즈는 10대 소녀 시절부터 참을 수집했다.예상가 2만5000~3만5000달러.타지 마할 다이아몬드 목걸이.리처드 버턴이 리즈의 40세 생일에 선물했다.예상가 30만~50만 달러.
리즈가 40세 생일에 리처드 버턴으로부터 선물 받은 타지 마할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리즈에게 “타지 마할을 선물하고 싶지만 그건 가져오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안 되겠네요”라는 농담을 하며 이 목걸이를 선물했다. 하트 형태의 타지 마할 다이아몬드는 무굴 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통치자가 된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었고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 가장 총애한 부인 뭄타지 마할에게 줬다. 그녀가 죽자 샤자한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무덤 타지 마할을 만들었다. 이 다이아몬드에는 파르시(Parsee) 언어로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써 있다.

리즈의 주얼리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은 다섯 번째 남편이었던 리처드 버턴이 선물한 것들이지만 결혼한 지 1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죽은 리즈의 세 번째 남편 마이크 토드도 그녀에게 최고의 주얼리를 선물했다. 1957년, 마이크 토드가 제작한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작품상을 받았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리즈가 착용했던 1880년대의 티아라는 마이크 토드가 “당신은 나의 여왕”이라고 하며 선물했던 왕관이었다. 같은 해 8월, 리즈는 프랑스 남부 해변도시 생-장 캅 페라(Saint-Jean Cap Ferrat)에 있는 그들의 별장에서 수영하던 중 남편 토드로부터 카르티에 루비 목걸이와 귀걸이, 그리고 팔찌를 선물 받았다. 주변에 거울이 없던 터라 그녀는 수영장 물에 주얼리를 착용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봤고 그녀의 목과 귀, 그리고 팔목에서 반짝이는 주얼리의 화려한 빛을 본 순간 그녀는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토드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아 수영장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리즈의 루비 주얼리 세트는 68년 리처드 버턴에 의해 완성된다. 이들의 신혼시절 버턴은 리즈에게 ‘완벽한 붉은색의 루비 반지’를 선물하겠노라 약속했었다. 4년 후 버턴은 리즈의 크리스마스 양말 가장 아랫부분에 작은 상자를 하나 넣었다. 하도 작아 리즈는 선물을 꺼낼 때 이 상자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의 딸 리자가 이 상자를 찾아 리즈에게 줬고 그녀는 이 작은 상자 안에서 반클리프 아펠이 제작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컬러의 루비 반지를 발견했다. 이 반지 하나가 루비가 7개나 박힌 목걸이보다 5배 이상 더 비싼 가격으로 측정된 것을 보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리즈는 동시대 디자이너 주얼리도 착용했다. 그중에는 파리 방돔 광장 뒤편에 작은 매장을 운영하며 세계의 주요 인물을 상대하는 신비한 베일에 싸여 있는 조엘 아서 로젠탈(Joel Arthur Rosenthal, 일명 JAR)도 속해 있다. 2001년 리즈는 조엘에게 “내 눈 색은 당신의 것처럼 파란색이지만 가끔 녹색이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보라색으로 보기도 하죠”라고 말했고 그 후 조엘은 그녀가 보는 자신의 색과 세상이 보는 그녀의 색을 스트라이프 무늬에 넣어 개성 넘치는 볼 귀걸이를 만들었다.

이 사연 있는 각각의 보석들이 경매가 끝나면 새 주인을 만난다. 라 페레그리나 진주 목걸이는 스페인 왕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타지 마할 다이아몬드는 다시 인도로 갈 수도 있다. 중국의 갑부가, 아랍의 부호가 새 주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그들을 사랑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이들의 진정한 주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잊지 않을 것이다.



김성희씨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 디자이너다. 유럽을 돌며 각종 공연과 전시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더 주얼』을 썼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