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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래디 “미국서도 보수가 헤맨다”

중앙선데이 2011.12.03 21:19 247호 4면 지면보기
데이비드 브래디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부소장은 “한국 보수가 위기라는데 미국은 더 심각하다”며 “보수가 젊은 층과 히스패닉계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인 브래디 부소장은 지난달 29일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해 ‘미국 보수주의의 미래’라는 강연을 했다. 그는 “미국의 보수는 경제적 보수와 종교적 보수로 갈려 있는데 둘 사이의 내분으로 공화당은 길을 잃었다”며 “미국 유권자들 중 무당파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져 공화당과 민주당의 오랜 양당 구도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치 상황에도 해박한 브래드 부소장을 만나 한국과 미국에서 보수가 헤매는 이유를 물었다.

-미국의 보수는 뭐가 문제인가.
“먼저 보수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보수가 뭔지를 모르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고 평가하는 경향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다. 넓게 보면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정부에 협조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가면 보수주의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사상을 이어받은 경제적 보수주의자가 있고, 도덕적이고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종교적 보수주의자가 있다. 문제는 이 두 그룹이 균질한 하나의 집단으로 녹아들지 못한다는 거다.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를 중시하고 시장경제의 자율성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이들에게 동성 결혼이나 낙태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규제할 대상이 못 된다. 그러나 종교적 보수주의자인 원리주의자들은 동성 결혼이나 낙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굳건한 가치다. 따라서 경제적으론 보수지만 종교적으론 보수가 아닌 집합이 나오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보수주의가 여러 파로 내분하고, 나아가 서로 반목한다. 내분이 보수를 좀먹고 있다.”

-공화당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잇따른 말실수, 허먼 케인은 성추문, 다른 후보들도 진화론을 옹호하거나 기후변화는 걱정할 게 없다고 주장해 언론의 공격을 받는데.
“가장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원래 정치를 안 한다(웃음). 하지만 보수주의, 그중에서도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태생적으로 반(反)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종교적 우파인데, 당연히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최고다. 진화론은 믿을 게 못 된다. 아이오와 주의 68%가 창조론을 믿고, 이에 근거해 지구의 역사는 6000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공화당 후보들은 언론에 바보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을 의식해서 자신의 성향을 세탁할 수도 없다. 프라이머리라는 예비선거로 먼저 후보가 돼야 하는 미국의 선거시스템 때문이다. 프라이머리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골수 공화당, 뼛속까지 종교적 우파들이 많다. 그래서 언론이 뭐라고 하건 말건, 진화론을 부정하고 기후변화론을 반박하는 거다.”

-당신의 성향은 뭔가.
“나는 경제적 보수주의자다. 보수에게 미래가 있느냐고들 하는데 적어도 경제적 보수주의자에겐 있다. 그것도 아주 밝은 미래가 있다. 왜냐하면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유권자들이 경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서 제3의 당이 나온다는 것인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경제적 보수주의자이면서 사회적으론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미국인의 다수다. 공화당이 이들을 놓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문제는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제3당을 세우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양당 구도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단, 그러기 위해선 내년 대선 프라이머리까지는 전국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

-내년 미국 대선을 어떻게 보나.
“지금 상황으로만 보자면 민주당이 유리하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으니까. 민주당도 과거엔 내분이 심했지만 지금은 오바마를 중심으로 균질화돼 있다. 오바마에 도전하는 내부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세계 경제가 더 악화되면 오바마도 위태롭다. 난 오바마가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본다.”

-세계 경제위기가 오바마 탓은 아니지 않나.
“위기 원인이 오바마 탓은 아니지만 위기 관리는 그의 몫이다. 실업률이 9%에 가깝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젊은 층과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 인종에겐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지만, 실제로 그가 경제 살리기에 기여한 바가 뭔가. 문제는 경제다.”

-공화당은 뭘 잘못하고 있나.
“사회적 이슈에서 미국은 진보 성향으로 바뀌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공화당엔 위기다. 게다가 공화당은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유권자층인 히스패닉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인 히스패닉은 종교적으론 공화당에 훨씬 더 가깝다. 하지만 공화당의 이민정책은 지금 죽을 쑤고 있다. 멕시코 국경에 담을 더 높게 쌓아야 한다는 둥, 폐쇄적 이민정책을 펴는 당을 소수민족이 지지하겠나.”

-공화당 후보는 누가 될 것 같은가.
“정치에서 1년은 영겁과도 같다. 현재로선 미트 롬니가 22%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지만 그는 오바마의 대항마라기보다는 보초병 정도다. 많은 공화당원들이 오바마를 찍겠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유권자들은 공화당의 현재 후보군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정치는 움직인다.”

-한국도 정당 정치가 위기다. 한국 보수를 어떻게 보나.
“한국 정치인들은 항상 정치가 위기라고 하는데 그냥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바꾸려는 모양인데, 사람은 그대로고 이름만 바꿔서 뭐가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안철수씨가 박근혜 전 대표보다 지지율이 앞섰다는데, 정치엔 다 부침이 있다. 안씨는 훌륭한 기업가이지만 기업 운영과 정치는 다른 영역이다. 젊은이들은 열광하겠지. 성공한 사업가에 나이도 젊고. 따라서 오바마처럼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를 보면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왔던 프레드 톰슨이 떠오른다. 지지율이 32%나 됐었는데 정작 경선에 뛰어든 뒤 지지율이 2%로 곤두박질했다. 정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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