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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며 미루다 국민들만 멍들게 생겼다

중앙선데이 2011.12.03 21:06 247호 30면 지면보기
세상만사에 통용된다는 수요공급의 원리를 우리는 곧잘 망각한다. 철저한 통제경제인 북한조차 암시장에선 예외 없이 관철되는 철칙이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는 이가 늘어나 공급물량이 달리면 가격이 오르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종종 까먹는 것이다.

홍승일 칼럼

이에 관한 미국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 리처드 댈러 교수의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그는 ‘어떤 것이 정당한(fair) 비즈니스인가’라는 논문을 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조사 대상자들에게 던졌다. ‘겨울철 한 철물점이 15달러에 제설용 삽을 파는데 어느 날 폭설이 내렸다. 삽을 찾는 손님이 급증하자 당장 값을 20달러로 올려 받았다. 정당하다고 보는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사례에 대해 82%의 압도적 다수가 ‘부당하다(unfair)’고 했다. 같은 질문을 그의 경영대학원(MBA) 교실 학생들에게 했더니 대조적인 결과가 나왔다. ‘부당하다’는 답이 24%에 불과했던 것이다. 왜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왔을까.

댈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MBA 학생들은 경제학 교과서적인 사고에 젖은 까닭에 공급이 부족해지면 가격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수요공급의 원리 이전에 바가지 씌우기나 얌체 상혼을 언뜻 떠올린 것이다. 가게 주인 입장에선 합리적인 행동을 했는지 모르지만 15달러에 팔다가 찾는 사람이 좀 늘었다고 갑자기 5달러를 올리는 건 야박하다고 본 것이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 두 번째 전기요금 인상 조치를 접하고 문득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공공요금은 뜸하게 조금씩 올리는 것이 정석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불과 넉 달 만에 요금을 또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바로 수요공급 원리의 상식을 제대로 설파하지 못한 탓 아닐까. 따져보면 이번 전기요금 추가 인상은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 수출 호조로 산업용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가운데 올겨울 이상 한파마저 예고됐다. 공장과 난방 수요가 동반 급증할 경우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모른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가 현실화하면 그 충격은 천재지변에 버금갈 것이다. 그보다 약한 순환정전만 해도 경제와 국민안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전력 부족에 숨통을 트려면 건설 중인 발전소들이 완공되는 2014년까지 참아야 한다. 생산원가보다 10% 이상 낮은 전기요금 체계가 여러 해 유지되면서 한국전력은 지난해 2조원 가까운 영업적자를 포함해 누적 부채가 3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할 국민적 부담이다. 한전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전제로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주려는 논거다.

하지만 어쩌다 전기요금을 한 해 두 번이나 올리게 됐는가. 8월과 12월 두 번을 합쳐 인상률이 평균 9.6%에 이른다. 이런 일은 오일쇼크 이후 30년 만이다. 실제 정부 이야기로는 과거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란다. 이대로 두면 내년 1월 중순께 예비 전력이 50만㎾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400만㎾만 밑돌아도 ‘위기’라고 하는 판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 수요공급 원리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한몫했다. 요금 현실화 여론이 불거질 때마다 물가안정이다 선거에 불리하다 해서 뒤로 미뤄 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코너에 몰려 요금을 연거푸 올리는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 경제가 받아내게 생겼다. 제조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들이 그동안 값싼 전기요금 혜택을 톡톡히 누려온 걸 부인하기 어렵지만 잇따른 요금 인상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고 부담 역시 클 것이다. 주택과 농업용 전기요금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산업용 요금의 큰 폭 인상은 시차를 두고 공산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도시서민과 농촌의 살림에도 주름살로 작용할 것이다. 시기도 안 좋다. 철도·고속도로 등 주요 공공요금이 잇따라 인상되고 있다. 올해 소비자 물가지수는 억제목표인 4%를 훨씬 웃돌 전망이다.

공공요금은 서비스의 공공성이 강해 수요가 늘면 공급을 신속히 늘려주든지 아니면 공급이 뒤따라줄 때까지 요금을 올려 과도한 수요 증가를 잠재워야 한다. 특히 국가 기간서비스인 전기요금의 경우 경제학 교과서의 수요공급 원리를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일깨워야 한다. 수요가 급증하고 공급이 달리면 철물점 주인처럼 값을 올리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다. 국민들로부터 핀잔을 들을까봐 몸을 사리다 한꺼번에 올리면 국민들만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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