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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성차별?

중앙선데이 2011.12.03 21:05 247호 30면 지면보기
텔레비전이나 신문, 옥외 게시판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광고의 대부분은 여성을 겨냥하고 있다. 맥주 광고 같은 게 예외겠지만 거기에도 여성의 사진만(대부분 세미 누드) 있는 경우가 많다. 광고의 주요 타깃이 여성이라는 점은 누가 소비를 장악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전형적인 남성 축에 드는 편인 나는 백화점에 있는 대부분의 상품에 관심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칼스버그 맥주나 진로에서 나오는 상품에는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를 의식해야 하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여성보다는 남성을 훨씬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는 게 좀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가? 매일경제가 보도한 2010년 10대 기업 임직원 성비(性比)를 보면 LG의 경우 80%가 남성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82.5%(자동차는 여성들도 사는데), 롯데는 72.5%가 남성이었다. 기업들이 여성보다 남성을 서너 배는 더 선호한다는 증거다.

전 세계 소비액 18조4000억 달러 중 12조 달러를 쓰는 건 여성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는 이들의 49%가 여성이다. 내가 롯데 같은 기업 경영자라면 여성 사원 고용률을 당연히 높이고 싶을 거다.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는 마케팅이나 홍보, 사업 개발과 같은 특정 분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업 분야에 적용된다. 여성 사원들이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더 잘 안다는 건 당연하다.

외국 기업들은 이를 깨달은 지 꽤 됐다. 해외 다국적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내게 한국 대기업의 성차별은 자신들에게 득이 된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한국 여성 인력을 고용하는 데 있어서 비교적 경쟁이 덜 치열하니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란 얘기다. 한국 기업이 자초한 손실이 외국 기업에 득이 되는 셈이다. 만약 30대 중반이 넘은 여성이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그녀의 명함엔 외국계 기업 로고가 박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관리자급 이상에 여성을 비교적 많이 고용한 회사들은 투자에 대해 더 높은 수익을 낸다고 한다. 가히 ‘성적 다양성 배당금’이라고 할 만하다. 여성이 가진 다양한 능력과 소비자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빚어낸 결과다.

정부 역시 양성 고용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신입 공무원을 보면 남녀의 비율은 이제 거의 비슷하다.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이 왜 이런 명백한 현실을 못 보고 있는지 이상할 따름이다.

여성 사원은 육아 문제로 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구식 상사들의 탓도 크다. 그런 생각은 틀렸다.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엄마의 74%가 퇴사가 아닌 전직을 택했다. 월급은 좀 적어지더라도 육아 시설을 갖춘 회사로 옮긴 것이다. 여성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자명하다. 양육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현실에서 부부 중 한 사람만 돈을 버는 것은 점점 더 부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모순이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더 갖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 필요로 하게 됐다.

한국의 10대 기업이 보육이나 출산휴가나 고용 양성 평등에 더 신경을 쓴다면 후광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외국 기업들이 그런 것처럼 능력이 가장 뛰어난 여성 중에서 인력을 골라서 쓸 수도 있을 거다. 한국은 여전히 비범할 정도로 다이내믹한 사회이고, 강력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사회를 바꿀 동력이 충분하다.

앞으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 관련 비용을 치러야 한다. 고령 연금에 들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인구가 필수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실상 여성의 고용률이 낮다는 사실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누릴 수 있는 열린 기회다. 한국의 대기업들로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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