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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레이아웃이 첫째 … 장타자 티샷 낙하점엔 ‘함정’ 배치

중앙선데이 2011.12.03 20:42 247호 10면 지면보기
코스 설계를 안다는 것은 코스 설계가의 의도를 읽고 골프를 한다는 의미다. 해저드 배치, 그린 상황 등을 미리 알고 코스 공략 전략을 짠다면 스코어는 자연스레 줄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설계가의 의도를 알면 골프를 훨씬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중앙SUNDAY-J골프 공동기획 인문의 숲에서 그린을 본다 <1> 코스 설계의 세계

스코틀랜드 해안에는 ‘링크스(Links)’라고 불리는 낮은 지대가 이어진다. 모래 지형이며 사구(砂丘·모래언덕)가 발달했다. 링크스는 경작지로 쓰기에는 척박한 불모지지만 골프 코스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환경을 자랑한다. 물이 잘 빠지는 모래 토양과 연중 풍부한 강수량, 그리고 영상 5∼23도의 온화한 기온은 골프 잔디인 페스큐(Fescue·다년생 화본과 목초로 유럽이 원산지)를 자연발생시켰다. 링크스 코스는 그렇게 생겨났다.

송호 곤지암CC, 엘리시안강촌CC 등 국내 40여 개 골프코스를 설계했다. 경원대 환경대학원 골프코스디자인 전공 겸임교수 및 한국골프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골프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4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와 전쟁 중인 상황에서 농부들이 골프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고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골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골프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754년에는 ‘골프의 발상지’로 불리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들어섰다. 올드 코스는 본래 22홀이었지만 1764년 18홀로 축소됐다. 이후 조성된 골프장은 자연스럽게 18홀 설계가 일반화됐다.

18세기 중엽 일어난 산업혁명은 바닷가 링크스 코스만이 아닌 내륙에까지 골프장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도시 발달과 골프 인구 증가로 포화 상태에 이른 수요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고 내륙 쪽에 파크랜드(Parkland)라는 새로운 형태의 골프장이 출현했다. 파크랜드 골프장은 나무 숲, 계곡 등을 이용한 코스로 스코틀랜드·미국을 거쳐 아시아로 전파됐다.

누구나 파 또는 보기 할 수 있게 설계
모든 사물의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 골프 클럽과 코스의 변천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샤프트는 호두나무과의 단단한 나무로 만든 히코리 샤프트를 사용했다. 하지만 1922년 스틸 샤프트가 등장하면서 비거리와 스코어 증대에 기여했다. 장비의 발달은 골프 코스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쳐 코스 길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낳았다.
그렇다고 장타자에게만 유리하도록 코스가 설계되고 있는 건 아니다. 골프에는 두 가지 명제가 있으며 코스 설계가들도 이 명제 안에서 코스를 만든다.

첫째, 골프는 ‘멀리(Far), 그리고 정확하게(Sure)’ 공을 치는 운동이다. 둘째, 골프는 14개의 클럽을 활용해 ‘두 번 띄우고, 두 번 굴리는(2 Carry, 2 Run)’ 운동이다. 드라이버부터 우드·아이언·웨지 등 13개의 클럽을 활용해 두 번 띄우고 퍼터로 두 번 굴린다.

코스 설계가들이 첫 번째 원칙으로 삼는 것은 ‘공정한 레이아웃’이다. 장타자는 물론 비거리가 짧은 골퍼들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설계한다.
장타자일수록 정확한 샷을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 IP지점(Intermediate point:티샷을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안전 지대)이 좁아져 정확도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장타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타자일수록 IP 지점에 장해물이 적어져 마음 놓고 클럽을 휘두를 수 있다.

코스 설계가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파 또는 보기를 할 수 있도록 코스를 설계하는 데도 중점을 둔다. 또 홀 공략의 다양성을 위해 한 홀이 어려웠다면 다음 홀은 쉬워지는 방식으로 홀을 배치한다.

결국 골프는 이와 같은 명제 안에서 샷의 가치(Shot value)를 높이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샷의 가치란 샷의 거리, 목표 지점의 상황, 해저드 등 장해물의 위험 정도, 샷을 할 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샷의 가치 측면에서 보자면 티샷은 두 번째 샷을 잘 치기 위한 최적의 위치에 공을 보내는 작업이다. 무조건 똑바로 멀리 보내는 것만이 최고가 아니다. 두 번째 샷은 그린에서 퍼트를 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으로 볼을 보내기 위한 것이다. 퍼트는 홀에 최대한 가깝게 공을 도달시키는 게 목적이다. 즉 티샷부터 퍼팅까지 샷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타수 줄이려면 ‘전략형 홀’ 집중 공략
15~16세기에 조성된 링크스 골프장은 페어웨이 중간중간에 포트 벙커(Pot bunker:항아리 같이 좁고 깊은 벙커)를 파 변별력을 시험했다. 정확하게 공을 보내지 않으면 재앙을 피할 수 없는 ‘벌칙형(Penal) 설계’가 대세였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17번 홀의 벙커가 대표적이다. 그린 왼쪽에 조성된 이 벙커는 워낙 턱이 높아 공이 한번 빠졌다 하면 프로 골퍼들도 진땀을 빼곤 했다.

골프 코스는 골프 클럽의 발전과 흐름을 같이 한다. 히코리에서 스틸 샤프트로, 퍼시먼(감나무)에서 티타늄 헤드로 바뀌는 등 골프 클럽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최근엔 ‘전략형(Strategic Design)홀’이 보편화됐다.

전략형 홀이란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설계된 홀이다. 한 샷을 실수해도 대안이 있어 실수를 만회할 수 있고 파 세이브를 할 수 있다.
[그림]처럼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은 1시 방향, 페어웨이는 11시 방향으로 설계된 코스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벙커는 페어웨이 왼쪽과 그린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우 티샷을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위치는 ①지점이다. ①지점으로 공을 보낼 경우 벙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두 번째 샷을 ②지점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골퍼들의 경우 ①지점으로 공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공이 똑바로 날아가다 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드로(Draw) 구질의 골퍼라면 유리하겠지만 자칫 벙커에 공을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①지점에서 ②지점으로 샷을 보내려면 공이 똑바로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페이드(Fade) 샷을 구사하면 좋다. 이처럼 전략형 홀에서는 위험(Risk)과 보상(Reward)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샷을 구사해 성공할 경우 유리한 지점에 도달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5타를 줄이려면 전략형 홀에 주목해야 한다. 스코어를 줄이기 위해서는 샷의 거리, 목표 지점의 상황, 해저드 등 장해물 등을 고려해 ‘생각하는 골프’를 해야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경우 ‘티잉 그라운드=드라이버’라는 공식이 있지만 드라이버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무리한 샷을 하기보다는 코스 상황을 고려해 드라이버 대신 우드나 아이언을 선택하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아울러 스루더 그린(Throuhg the green:티잉그라운드, 그린, 해저드를 제외한 코스 내 구역) 곳곳에 배치된 장해물을 피해 안전하게 샷을 보내야 한다. 파 3홀에서는 홀컵이 아니라 그린 중앙을 보고 안전하게 공을 올려야 스코어 관리에 유리하다.

코스 설계가는 18홀의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해 전략형 홀과 벌칙형 홀 외에도 ‘영웅형(Heroic) 홀’을 배치한다. 아일랜드 그린으로 조성된 짧은 파 5홀이 예다. 영웅형 홀은 실패에 따른 위험이 크다. 하지만 모험에 성공했을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라운드 묘미는 더 커진다.

브레이크와 스피드를 파악하라
파72를 기준으로 할 때 퍼트는 서른 여섯 번 사용한다. 그만큼 퍼트는 중요하다.
설계가들은 그린을 설계할 때 나흘 동안 매일 다른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네 개의 컵존(Cup zone:홀컵을 꽂을 수 있는 구역)을 만든다. 퍼트의 성패는 컵존에 공을 얼마만큼 가깝게 도달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컵존 안에 공을 보낸다면 버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컵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공을 떨어뜨린다면 첫 번째 퍼트의 중요성이 커진다.

퍼트를 잘 하려면 브레이크(Break:공이 휘어져 굴러가는 지점)와 스피드(Speed:공이 굴러가는 속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브레이크를 잘 읽고 적당한 스피드로 공을 굴려 보내야 컵존에 공을 가까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와 스피드를 잘 읽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골프 코스 설계가들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린 위에서 골퍼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그린을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퍼트의 성패에 따라 스코어가 크게 달라지게끔 경쟁을 유도하는 그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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