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나만의 이론? 카드에 콘텐트 담아 정리하라

중앙선데이 2011.12.03 20:35 247호 25면 지면보기
독일에서 13년 유학했지만, 학문적으로 영혼이 흔들릴 만큼 감동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애당초 그리 순수한 학문적 목적으로 유학을 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내내 운동권 언저리를 맴돌다 아무 생각 없이 졸업하게 됐다. 다들 노동운동을 위해 부천·인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난 정말 노동운동 체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빨리 결정하라며 나를 압박해왔다.

⑦ 노트와 카드의 차이

피해 다녔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대기업에 취직할 수는 없었다. 매판자본으로 싸잡아 욕하며 투쟁했는데 어찌 취직할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결국 유학 가기로 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갈 수도 없었다. 대학 시절 내내 미제국주의를 비판했으니 말이다. 아, 그때 우리의 삶이 다 이런 식이었다. 결국 독일로 갔다. 일종의 도피 유학이었다.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독일은 천국이었다. 일단 등록금을 받지 않았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분히 벌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았다. 아무 두려움 없이 마르크스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독일 생활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불과 몇 년 후 고르바초프의 소비에트도 아주 망신스럽게 무너졌고 동유럽 사회주의 전체가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역사의 가장 앞에 서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역사의 가장 뒤꽁무니로 처졌다는 느낌이었다.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결정된 ‘선험적’ 공부의 방향이 상실되자 주체적 학습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사회(Gesellschaft)’와 ‘문화(Kultur)’의 개념적 차이에 관한 논의에 특히 관심이 갔다. 결국 ‘문화심리학’으로 내 공부의 방향을 결정했다.

한국 학생은 노트, 독일 학생은 카드
“Was ist deine Theorie(네 이론이 뭔가)?” 면담 신청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 겨우 만난 지도교수는 대뜸 내게 물었다. ‘내 이론이라니?’ 난 그때까지 한 번도 내 이론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내 이론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겨우 학부를 마쳤을 뿐이었다. 그것도 매일같이 데모, 수업 거부, 시험 거부로 이어진 대학 생활이었다. 개뿔, 이론은 무슨. 이론은 미국과 유럽의 대가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분명히 이제 막 독일에 정착한 내게, 내 이론이 뭔가를 묻고 있었다. 없다고 했다. 당신의 이론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나가라고 한다. 석사,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이 어찌 자기 이론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자기 이론의 방향이라도 생각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학문적 문제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 주체적 관점이 분명해야 남의 이론을 베끼고 흉내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서구의 대가라면 기죽기부터 하는 ‘주변부 열등감’부터 버려야 했다. 아니, 아주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대가의 이론을 그저 외우는 것만으로는 ‘내 이론’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독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양을 자세히 살펴봤다. 특별한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작은 카드에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학교 앞, 노점상들도 다양한 크기의 카드를 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드를 정리하는 알파벳이 순서대로 적혀 있는 다양한 모양의 상자도 팔고 있었다. 나무·가죽·플라스틱 등 종류도 다양했다.

독일인들은 정리에 대한 집단 강박이 있다. 정리가 안 돼 있으면 불안해한다. 거의 공포 수준이다. 사람이 다치면 냅다 달려가 ‘Alles in Ordnung?’이라고 물어본다. 의역하면 ‘괜찮습니까’란 뜻이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모든 것이 다 잘 정리되어 있습니까’가 된다. ‘괜찮은 상태’란 ‘정리가 제대로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사람들은 죽어라 정리만 한다. 공장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가정에서도 정리는 의무다. 정리가 ‘정상’과 ‘또라이’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 학생들은 책상 위에 공부하며 요약한 카드와 그 카드를 정리하는 카드 박스를 꼭 두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여전히 노트를 썼다. 노트와 카드.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편집 가능성’이다. 카드는 다양한 편집이 가능한 반면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은 바로 이 ‘편집 가능성’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을 카드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한다. 가장 위에는 키워드를 적고 그 밑에는 연관된 개념(오늘날 인터넷의 연관 검색어에 해당), 출처, 날짜 등을 차례로 적는다. 그리고 카드 한 장의 앞·뒷장에 그 내용을 요약한다. 피아제, 비고츠키, 융과 같은 심리학자의 책을 읽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해 나간다. 모인 카드는 알파벳 순으로 정리한다. 여기까지는 노트 정리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번잡스럽다. 정리하고 외우는 양을 따지면 독일 학생들의 학습량은 한국 학생들에게 상대도 안 된다. 독일 역사, 유럽 문화 전반에 관해서도 한국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부터 차이가 난다.

독일 학생들은 모인 카드를 자신의 개념에 따라 재정리한다. 예를 들어, ‘발달’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프로이트, 피아제, 비고츠키, 융의 이론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시 정리한다. 그저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는 게 아니다.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카드를 재정리한다. 새로운 카드 정리의 내적 일관성이 바로 자신의 이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노트를 보며 달달 외울 때, 그들은 자신의 카드 목록을 재구성하며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카드 편집을 통해 새로운 이론 구성이 가능하려면 편집해 낼 카드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의 재료가 많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작해야 카드 몇 장으로 아무리 뒤섞어봐야 거기서 거기다. 제한된 카드로 잔머리 굴리며, 자꾸 뒤섞어 내놓는 행위를 전문용어로 ‘순 구라’라고 한다. 남의 이론을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편집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실력이 있다는 것은 섞어낼 카드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실력’의 기준도 이제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많이 외우고 있어야 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잘 찾아내는 것(know-where)’이 실력이다. 드디어 ‘검색’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카페’에서 ‘지식인’으로 이동

노래방이 나온 후 우리는 더 이상 노래 가사를 외울 필요가 없다. 휴대전화가 나온 후 우리는 더 이상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단축번호만 외우면 된다. 이제 지식도 마찬가지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그래서 내 친구 최창원은 인간을 아예 두 종류로 나눈다. ‘네이버(NAVER)’를 휴대한 인간과 그저 전화기만 휴대한 인간. 지식을 검색할 수 있는 인간과 그저 기억력에만 의존하는 인간은 아예 종(種)이 다르다는 거다.

컴퓨터 통신이 처음 시작했을 때다. 젊은이들은 나우누리, 천리안에 들어가 밤새 컴퓨터 통신을 했다. 사실 매번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컴퓨터 통신은 전화에 비해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컴퓨터 통신에 열광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익명성도 중요한 요인이다. 내 느낌을 아무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의 아주 큰 미덕이다. (그러나 익명성은 집단 테러의 수단이 되기도 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순간 검색 1등’을 해본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집단 몰매를 맞다 보면 인터넷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더구나 기껏해야 ‘중딩’ ‘고딩’으로 보이는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한번 당해보라. 정말 환장한다. 언젠가 TV토론에서 아이돌 스타에 대해 말 한번 잘못했다가 된통 당한 내 서글픈 경험담이다. 아직도 내 이름을 검색하면 그 흔적이 나온다. ‘김정운 개XX’.)

익명성보다 더 결정적 이유가 있다. ‘떼’로 모여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자신들이 어디서 모여서 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전화는 1:1 커뮤니케이션이다. 전화통화를 하는 당사자들의 위치는 분명하다. 전화는 이 둘 사이를 연결해줄 뿐이다. 그러나 컴퓨터 통신의 ‘장소성’은 전혀 생소한 문화적 경험이다.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모여 놀기는 하는데, 도무지 어디에 있는가를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떼’로 모여 논다.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는 즉 ‘알 수 없다’는 뜻의 ‘가상 공간’이 된다.

구체적 장소성이 부재하는 공간적 경험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다음(DAUM)’이라는 포털 사이트가 나타난다. 떼로 모여 놀 수 있는 정당성을 마련해준 것이다. ‘카페’다. 다음은 카페를 만들며 사이버스페이스를 단번에 평정해 버린다. 이전의 컴퓨터 통신은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을 준비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느닷없이, 내키면 모이는 ‘번개’가 유행했다. 미리미리 전화하고 장소를 정해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그런데 다음의 ‘카페’가 생기자 사이버스페이스상의 만남의 존재론적 의의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준비과정이 아니다. ‘온라인’ 자체만으로도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의미가 생긴 것이다. 자신의 관심에 따라 언제든 떼로 모여 놀 수 있고, 놀아도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주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모여 카페를 꾸미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과 떼로 모여 놀기 시작했다. 학연·지연·혈연을 떠난 ‘재미 공동체’의 시작이다.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시대는 거기까지였다. 다음은 도대체 왜 사람들이 떼로 모여 놀려고 하는지, 그 집단 심리학적 동기에 대해 무지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 성찰의 부족이다.

물론 다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다. 오프라인과의 연관성이 있을 때만 강하다. ‘촛불집회’와 같은 오프라인상의 존재 의의가 있을 때만 다음은 화려해진다. 온라인 자체만으로 그 존재 의의를 찾기 어렵다. 컴퓨터 통신을 단번에 제압했던 ‘온라인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그 사이를 비집고 ‘네이버’가 나타난다. 네이버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막연히 원하는 것을 구체화했다. 왜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고 모이려 하는지, 그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지식 검색’이다. ‘지식인’으로 시작된 네이버의 승승장구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계속하겠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