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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산사에서

중앙선데이 2011.12.03 20:29 247호 27면 지면보기
길 떠나기 좋은 날, 구르는 낙엽 따라 도착한 곳은 오래된 ㄱ자형 한옥이었다. 족히 15칸은 됨 직한 그야말로 고대광실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방 한 칸일 뿐이다. 마당의 오래된 돌수곽에는 맑고 차가운 물이 그득하다. 장자(莊子)는 ‘뱁새가 깊은 숲에 깃들여도 한 개의 나뭇가지(一枝)를 의지할 뿐이고 두더지가 황하 물을 마신다 해도 그 작은 배를 채우는 데 불과하다’고 했던가. 칩거하려는 두더지처럼 물을 작은 병에 채우고서 일지실(一枝室)에 몸을 뉘었다.

삶과 믿음

이동의 피로감으로 잠을 한숨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니 산줄기를 타고 내달리던 소나무의 군무는 마당의 가장자리에서 일제히 멈춰 섰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몇 겹씩 서로 포개져 자연적인 석문(石門)을 만들었고, 누군가 그 위로 사다리를 걸쳐놓고 정과 망치를 쪼아 자기 이름자를 솜씨 없이 새긴 만용을 부렸다. 그 행위를 통해 영원한 존재감을 확인하고서 씩 웃으며 돌아섰을 것이다.

얼마 동안 방이 비어 있었는지 덧문인 여닫이가 문틀에 끼어 뻑뻑하다. 게다가 안쪽 문인 미닫이는 살짝 휘어서 제대로 열리지를 않는다. 목수를 불러 손을 봤다. 하지만 너무 깎아버린 탓에 바람이 살짝 불어도, 마루를 딛는 발의 울림만으로도 저절로 열린다. 모자라는 것도 문제지만 넘치는 것 역시 문제다.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여름날 습도가 높아지면 헐렁해진 문은 정상적인 위치를 찾을 것이다. 휘어진 문짝은 잘 달래서 살짝 들어 올리면서 열고 닫으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딸려 있는 고방은 청랭한 기운이 가득한 마루방이다. 냉장고가 없어도 어지간한 것은 여기에 둔다면 제대로 보관이 될 것 같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누구든지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타성에 빠지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공간이동 그 자체가 자기구원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때가 되면 부서나 회사를 옮긴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면 휴가여행을 떠나고, 스님네는 주섬주섬 걸망을 챙긴다. 교단 일을 거든답시고 종로 한복판의 원룸에서 강산이 변할 만큼 머물다가 달포 전에 핑곗거리를 만들어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산으로 왔다. 새벽예불 후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서 양반다리를 한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며 경을 소리 내어 읽으니 새삼 도학자의 환희심이 밀려온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오감(五感)으로 맞이하는 게 이 얼마 만이던가.

누구나 세상 속에 살면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릉도원을 희구하며 수시로 길을 떠난다. 지친 마음을 씻어낸다는 세심정(洗心亭) 앞에는 팍팍한 도시살이를 피해 잠시 산행길에 나선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안내판에 새겨진 글을 한 자 한 자 음미하고 있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았는데(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 하였고(人遠道)
산은 세속을 등진 적이 없는데 (山非離俗)
세속이 산을 등지고 있었구나(俗離山)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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