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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영화 속 미디어 총수 실제 모델 … 요트여행 중 의문사

중앙선데이 2011.12.03 20:24 247호 28면 지면보기
언론은 현대 사회의 주요한 권력체 중 하나다. 지적 호기심이 많고 논리적이며 창의적 사고를 가진 유대인들은 19세기 말부터 언론을 그들의 중추적 권력기반으로 발전시켜왔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물론 3대 방송사인 ABC·CBS·NBC 모두 유대인이 세웠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 요세파트(후에 폴 로이터로 개명)란 본명의 독일 태생 유대인이 설립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디어 그룹인 뉴스 코퍼레이션을 소유한 호주 태생의 미국인 루퍼트 머독에 대해선 유대인이란 설과 비유대인이란 설이 공존한다. 그런데 한때 머독 다음가는 방대한 규모의 미디어그룹을 소유했던 인물이 있었다. 로버트 맥스웰(사진)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베일에 싸인 미디어 왕 로버트 맥스웰

베를린 주둔 영국군 신문 검열반 출신
맥스웰은 1923년 당시 체코의 조그만 마을인 슬라틴스케 돌리(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얀 루드비크 호크라는 이름의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맥스웰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예감하고 17세 되던 해인 40년 영국으로 단신 이주했다.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도 로버트 맥스웰로 바꾼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병으로 영국군에 자원 입대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종전 무렵엔 장교로 특진했다. 눈치가 빠르고 언어에 재주가 있던 맥스웰은 전후 베를린 주둔 영국군 사령부 신문 검열반에서 일했다. 이때부터 그는 출판과 언론에 관심을 가졌다.

51년 맥스웰은 페르가몬이란 조그만 교과서 출판사를 인수해 불과 몇 해 만에 대형 출판사로 키웠다. 이후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64년 노동당 하원의원에 당선돼 6년간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굴곡진 성장과 입신 과정 때문에 콤플렉스가 많았던 맥스웰은 이를 감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거만하고 권위적으로 사람을 대해 주변에서 인기가 없었다. 정치인으로 한계를 느낀 그는 출판업에 복귀했지만 이 업계에서도 무자비한 그의 사업 방식은 항상 비난의 표적이 됐다. 신문 등 언론매체를 소유하면 정치적 영향력을 누릴 수 있음을 알아챈 맥스웰은 신문 인수전에 뛰어든다. 우선 69년 타블로이드판 황색지인 ‘뉴스 오브 더 월드’ 인수에 전력투구했으나 강적인 머독에게 패했다.

70년 맥스웰은 유럽의 조세 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공국에 ‘맥스웰 재단’이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는 이 재단 명의로 미디어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한동안 큰 재미를 보았다. 친노동당 성향의 데일리 미러와 데일리 레코드·선데이 메일 등 활자 매체, 미국 맥밀런 출판사의 영국 자회사, 음반 제작사 님버스, 베를리츠 어학원, MTV 유럽 지분, 축구팀, 경마장 지분도 속속 매입해 종합 미디어·오락 그룹을 만들었다. 그가 소유한 매체는 냉전시대 소련과 공산권 정보에 특히 정통했다. 이는 동유럽 출신 맥스웰이 공산권 지도층 인사와 개인적 친분이 돈독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서방세계 정보기관에 동유럽권 정보를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맥스웰이 짧은 기간에 수많은 기업을 인수했다는 것은 세간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선 경이적인 사세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엄청난 자금 출처가 의문의 핵심이었다. 맥스웰은 순환 출자와 부채로 기업을 인수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설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불투명하고 도의에 벗어난 맥스웰의 기업경영 방식은 항상 경쟁 업체의 불만을 야기했다. 그의 비행에 관한 투서가 경쟁사에 날아들었다. 그가 직원의 사회보장기금 등 회사 공금을 유용한 것도 밝혀졌다.

맥스웰의 무리한 기업 확장과 비신사적 경영도 오래가진 못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기 시작한 80년대 말에 들어오자 맥스웰 그룹은 경영난에 봉착했다. 그는 소유 기업의 매각과 개인재산 출연 등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무시했다. 오히려 자신의 인적 관계를 과신하고 몇몇 거래은행에 추가대출을 해달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파산 위기에 직면한 맥스웰의 재정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영국과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그의 요청에 모두 냉담했다.

당시 총리 “이스라엘에 큰 공헌” 추도사
91년 11월 5일 68세의 맥스웰은 자신의 호화 요트로 캐나리 군도를 순항하던 중 요트 난간에서 실족해 익사했다. 시신은 이스라엘로 옮겨져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매장됐다. 그의 죽음은 일단 사고사로 결론 났다. 그러나 그의 딸을 비롯한 가족들은 맥스웰의 사인에 대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몇 가지 음모설이 나돌았다. 먼저 영국 첩보기관 MI 6가 거론됐다. 또한 전직 모사드 요원으로 모사드 내부사정을 폭로한 적이 있는 캐나다 유대인 빅터 오스트로프스키는 모사드 음모론을 제기했다. 오스트로프스키는 95년 또 다른 측면의 기만이란 자신의 책에서 “맥스웰은 오랜 기간 모사드의 거물 블랙요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 사례와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다만 91년 11월 10일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맥스웰의 영결식에서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이작 샤미르는 추도사를 통해 “맥스웰은 이스라엘을 위해 평생 커다란 공헌을 한 바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 미뤄볼 때 맥스웰은 영국 유대인이지만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끈끈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었음이 간접 확인됐다. 그는 007 제임스 본드 영화의 가상 인물로도 등장했다. 97년 개봉된 ‘투모로 네버 다이스’에 미디어그룹 총수로 나온 악당 엘리엇 카버(영국배우 조너선 프라이스 연기)는 맥스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가공 인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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