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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토즈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 오른 스테파노 신치니

중앙일보 2011.12.03 01:31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글로벌 브랜드 CEO들이 종종 한국을 찾는다. 아시아가 중요 시장이라서, 신제품을 출시해서, 매장을 새로 열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지난달 8일 서울에 온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토즈(TOD’S)의 스테파노 신치니(55) 회장도 다르진 않았다. 서울 시내 모 백화점에 새로 오픈한 남성복 매장을 둘러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뷰에선 비즈니스 관련 질문들이 뒷전으로 밀렸다. 그의 특별한 이력 때문이었다. 신치니 회장은 토즈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19년 만에 그룹 CEO가 된 인물. 재무·해외경영을 총괄하며 오너인 디아고 델라 발레 회장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다. 회사도 그와 함께 성장했다. 입사 당시 소규모 신발 업체였던 토즈는 현재 연매출 10억 유로(약 1조5300억원) 규모의 명품 패션 그룹으로 올라섰다. 한마디로 고속 승진, 평생 직장, 회사 발전을 한꺼번에 이룬 셈이다. 당연히 모든 월급쟁이의 로망을 실현한 비결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였다.


“이탈리아인은 상상 못할 헌신 … 옷 싸서 다니며 주 6일 일했다 ”

글=이도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1984년 6월 한 청년이 무작정 사장 앞으로 이력서를 보냈다. 경력란은 빈칸. 들이밀 것은 달랑 대학 졸업장밖에 없었다. 사장도 응수했다. 일단 그를 사무실로 불렀고 면접이 아닌 토론을 벌였다. 주제는 ‘이 중소업체를 어떻게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것인가’. 당시 토즈는 루이뷔통·펜디 등 명품 브랜드에 신발을 대주는 제조업에서 자체 브랜드로 유통·판매까지 하는 소매업으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두 시간이 흘렀고 청년은 당찬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다. 하지만 기회를 주면 당신의 ‘큰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 진심이 통한 걸까.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오.”



●당시 토즈는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본 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진로를 정해야 한다. 내가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대기업에 가는 게 맞다. 깊이와 규모를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내 사업을 하겠다거나 CEO를 꿈꾼다면 마케팅부터 영업까지 모든 걸 경험해보는 중소기업으로 가는 게 맞다. 한 사업을 360도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대기업이 아니라 꺼려지지 않았나.



 “‘간판’을 생각하는 지금 세대와는 달랐다. 나는 회사에서 배울 게 많았다. 대학(시에나대 경제학) 수업은 실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론에 불과했다. 그래서 바닥부터, 단순 업무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도 회사가 돈을 주면서 가르쳐 줬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처음 1년은 부자재 부서에 있었다. 토즈 제품의 핵심인 가죽부터 시작한 것이다. 회사가 너무 작으니 3~5년 차엔 다른 일이 주어졌다. 모든 부서를 다 돌아가며 일했다. 마케팅·광고·구매·인사·재무 등등 이것들을 2년 안에 경험했다. 이후엔 토즈 회장과 직접 일했다. 주로 전략기획.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는 그룹 내에서 뛰어난 영어 실력과 경제·경영에 대한 해박한 지식,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92년 미국 전문가로 현지에 파견됐다. 이후 미국에서 브랜드의 마케팅·영업을 담당했고, 2000년 토즈를 밀라노 증시에 상장시킨 공로도 세웠다. 이어 한국과 중국 시장을 급성장시키며 CEO 자리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고속 승진의 비결이 뭔가.



 “헌신이다. 나는 당시 반(半) 아시아인이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근면한 아시아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6일을 일했다. 한국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종종 입을 옷을 슈트케이스에 싸가지고 사무실을 가기도 했다. 지금도 오전 1시에 자고 6시면 일어난다.”



●성공한 사람의 전형이다.



 “맞다. 하지만 부지런하기만 한 건 아니다. 창의적인 면을 보여주려고 했다. 나는 이탈리아인 아닌가.(웃음) 둘 다 갖추지 않으면 업계를 한눈에 관망할 수 없다. 그러려면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출장 가서도 틈틈이 돌아다니는 습관을 만드는 식이다. 특히 수퍼마켓은 꼭 들른다. 거기서 사람들이 뭘 사고, 입고, 즐기는지를 유심히 본다. 어제 한국에 오기 전 들른 도쿄에서도 나는 시부야를 찾았다. 어쩌면 럭셔리 브랜드인 우리 토즈와는 상관없는 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미래 고객이기에 그들이 뭘 말하고 어떻게 얘기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와는 다른 그들을 이해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자신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잖다.



 “다시 말하지만 헌신의 문제다. 요즘 젊은이 중엔 겉으로만 대충 일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만큼 회사를 위해 열심인 것 같지 않다. 회사에 들어갈 땐 기뻐하지만 계속 가고자 하는 뚝심이 부족해 보인다. 일에 대해, 내가 속한 회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영어 실력, 경영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키웠나.



 “일하며 독서는 물론 대학 교수와 일대일로 토론하며 실무에 이론을 접목했다.”



●회사에 충성하려면 보수도 중요하지 않나.



 “비교 대상이 없긴 한데…. 음, 그래도 나는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덕목이 따로 있을까.



 “물론이다. 수습부터 대리급(주니어 매니저)까지는 하루의 실무를 완벽히 익히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사람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 누군가를 믿는다면 그사람도 나를 믿게 해야한다. 과장급(중간 관리 매니저)부터는 후배를 어떻게 가르치느냐, 업무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신경 써야 한다. 그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주고 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가끔 자리가 올라가도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그런 팀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의 비올리스트 단원으로 시작한 지휘자가 계속 비올라를 켜는 꼴이다. 나의 성공은 팀워크가 기본이다. 이건 한국·이탈리아·미국 어디서나 똑같은 원칙이라고 본다.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도 일단 팀과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성격인지부터 본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상사인가.



 “직위 그 자체보다 지식과 평판으로 신망을 얻는 리더가 되려 한다. 이탈리아 말로 ‘아우토레볼레자(Autorevolezza)’인데 영어로 번역되는 권위(authority)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모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것, 그래서 언제든 후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상사가 되려고 한다. 정(情)이 통하는 한국 문화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권위가 필요할 텐데.



 “모르는 소리다. 예전이랑 달라진 게 요즘 젊은 세대들은 타이틀로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신입사원들은 윗사람이라도 그의 내공을 판단한 뒤 일을 배우고 싶어한다. 멘토를 원하는 거다. 다들 워낙 개성이 강해 그런 것 같다. 한국 젊은이들은 그러지 않나?”



●당신에게도 멘토가 있나.



 “여러 명이 있었지만 특히 지난 10년간을 돌아보면 루이뷔통 이브카셀 회장을 꼽을 만하다.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환상적인 인물이다. 디아고 델라 발레 회장과 아르노와 절친이다 보니 우리 전문 경영자끼리도 두 달마다 만난다. 바쁠 땐 커피 한잔이라도 꼭 한다.”



●무슨 얘기를 나누나.



 “루이뷔통은 소매업이 굉장히 강한 브랜드라 이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듣는다. 루이뷔통처럼 럭셔리 브랜드를 유지하려면 ‘직영매장을 통해서만 해라. 프랜차이즈는 자제하라’라는 식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도 장기적으로 보고, 편법으로 매출을 늘리지 말라고도 한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경쟁업체의 러브콜은 없었나.



 “공개할 순 없지만 실제로 많은 브랜드에서 접촉해왔다.(웃음) 하지만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었고 내가 관여를 해서 중도에 빠질 수가 없었다. 브랜드 내 모든 성장에 내 손길이 닿아 있다. 입사 이래 회사가 워낙 발전했고 이런저런 일을 벌여 회사를 바꾸지 않아도 직장을 바꾼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시장, 아시아 시장 등에 진출할 때마다 진짜 이직(移職)하는 느낌이었다.”



 신치니 회장은 ‘이직’을 말하면서 설명을 더했다. 실제나 다름없이 일종의 ‘이직 스트레스’를 겪었단다. 자신도 정신이 없었지만 리더로서 함께 일하는 동료·후배들에게도 변화를 이해시켜야 했다. 특히 회사 초기 멤버들이 난관이었다. 이들은 ‘속도’를 따라오는 데 힘겨워했다. 신치니 회장은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가장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90%가 그대로 회사에 남아 있다.



●대부분이 아직 일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무작정 변화를 통고하지 않았다. 일대일로 상대하며 왜 우리가 변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견학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작은 지방 공장에서만 일하던 그들을 밀라노는 물론 유럽 대도시 매장으로 보냈다. 우리 제품이 실제 어떻게 팔리고 있는지, 패션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접 경험할 기회를 줬다. 지금 돌아보면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한다.”



●왜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나.



 “그들은 토즈의 브랜드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고, 품질을 최고로 하는 장인의 정신 말이다.”



●장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장인을 내세우지 않는 럭셔리 브랜드가 거의 없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장인의 기술과 품질은 기본이고 새로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 내놓은 ‘시그니처 컬렉션’ 가방이 딱 그런 예다. 브랜드 대표 아이템인 드라이빙 슈즈 밑바닥의 특징을 가방으로 옮겼다. 올록볼록한 조약돌 모양을 전체 가죽에 입체적으로 새긴 것인데, 기술과 디자인이 잘 결합한 경우다.”



●앞으로 또 다른 ‘이직’이 남았나.



 “소규모로 진행하는 기성복 라인을 내년부터 확대할 계획이다. 향수도 출시할 생각이다. 길게 보자면 그룹 내 다른 브랜드(호간·페이·로저비비에)들까지 토즈만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다 어떻게 실행할지가 문제다. 전략 자체야 문서작업 아닌가.”





와이너리 운영하는 신치니 회장



패션도 와인도 작은 차이가 명품 만들죠




‘일벌레’ 같은 신치니 회장은 투잡의 소유자다. 토즈 CEO 외 토스카나 지방에 있는 와이너리 ‘피아니로시’를 운영한다. 그곳에선 피아니로시 솔루스와 블랙 라벨 2종류를 한 해 2만 병 생산하는데, 국내에는 각각 2000병, 3000병이 들어온다. 와인에는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 동부의 마체라타 지역에서 재배되는 포도품종 몬테풀치아노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패션과 와인의 공통점은.



 패션과 와인은 둘 다 취할 수 있다(웃음). 정말 중요한 건 모두 헌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명품은 아주 작은 부분에 따라 품질이 크게 달라진다. 제품이 어떤 대접을 받느냐, 얼마나 특별해지느냐가 작은 차이에서 온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포도를 쓰고, 어떻게 온도를 맞추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가 난다. 열정 없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는 비즈니스다.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인가.



 “은퇴는 내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델라 회장에겐 말할 수 없지만 난 사실 와인 쪽에 내 인생을 더 기여하고 싶다. 어제 도쿄에서도 조엘 부숑이라는 유명 셰프를 만나 새벽 1시까지 저녁 먹으면서 음식과 와인에 대해 얘기했다. 언젠가 와인 말고도 레스토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 수도 있다. 지금부터 하면 너무 살찔까 봐 자제하고 있다. 하하.”



●한식과 궁합이 맞는 와인을 추천한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와이너리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삐칠까 봐 말 못하겠다. 내 와인으로만 말하겠다. 블랙 라벨과는 갈비가, 화이트 레이블은 비빔밥이 최고다.”





j 칵테일 >> “한국의 백화점 푸드코트, 너무 좋아요”



신치니 회장은 지한파다. 회장 취임 이후 1년에 서너 번씩 한국을 찾는다. 그때마다 백화점부터 명동 길거리까지 패션 시장을 조사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한국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에 대해 몇 번이나 감탄했다. 그는 “섞어 입고 겹쳐 입는 ‘믹스앤드매치’를 일본에서도 많이 봤는데 한국 젊은이들이 훨씬 더 세련된 것 같다”며 “그들처럼 젊어 보일까 싶어 명동에서 옷도 몇 벌 샀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탐나는 것은 따로 있다. 백화점 푸드코트다. 미식가로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보는 방식이 맘에 든단다. 일식·베트남식·중식 세계의 식도락 여행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가장 창의적인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평판이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선 사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나 일관적인 행동과 태도를 취해야 한다. 내 평판이 어떨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굉장히 단순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책임이 큰 자리임에도, 4000개 직매장을 관리하면서도 부하들에게 강조한 건 늘 똑같았다. 열정·웃음·헌신, 이 세 가지만큼은 나 자신도 열심히 실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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