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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3)

중앙일보 2011.12.03 01:3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이용규]


출가한 비구니와 조각칼 날리던 사내 사이에서 생긴 지양이었다. 겨울비 그친 밤, 휘황한 달빛 정기가 그녀를 빚었다. 신비한 출생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는 갓난애를 버리고 숨었고 아비는 불에 타 죽었다. 그 업(業)이 지양에게 고스란히 덧씌워졌다. 외골수가 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
그 죄업 누가 만들었는가, 나라가 돌보지 못해 놓고 백성들에게 업장을 뒤집어씌웠다
한계상황 극복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면 나라고 종교고 왜 필요한가
이건 아니다, 이건 사람 사는 세월이 아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행여나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끝내 원망은 그치지 않으니 참으라는 말씀일랑 마세요. 그 『법구경』 구절은 사적인 원한이 있는 경우고요. 이건 달라요. 제가 참아도 저들의 악행은 계속되고 고려 사람들은 고통에 짓눌리죠.”



 지양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내 앞에서 응어리진 속이나 한바탕 풀어놓고 절집으로 돌아가겠다더니?”



 “그랬지요. 그래야 살 것 같았으니까요.”



 “그랬는데?”



 “절집으로 피한다고 제가 타고난 운명을 벗어날 것 같지가 않네요.”



 “기필코 일을 내겠다는 게로구나. 내가 너를 최이 집정께 일러바칠 수도 있다. 난 집정 나리 사람이야.”



 흑련이 냉정한 얼굴빛을 되찾았다.



 “차라리 그래 주셔요.”



 “뭔 소리냐?”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구더기에게 몸을 내줄지언정 짐승만도 못한 천하의 불한당 최항에게 몸을 내맡기고 싶겠냐고요.”



 “남녀관계란 모르는 일인 거여. 니가 아직 숫처녀라서 뭘 몰라도 한참 모르지. 서로 물고 빨고 죽고 못 살다가도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원수지간이 만나 끔찍이 아끼는 관계가 되기도 하거든.”



 흑련이 내심 바라는 이변이었다. 신의 딸인 그녀 자신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불곰 같은 최이를 자신이 모시는 신과 동급으로 모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번 몸을 섞으니 그 무뢰배 같던 사람이 헌헌장부로 보였다. 감히 신의 영역을 차고 들어와 나란히 앉는 준걸은 당대에 그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불경스러움이 숭경으로 뒤바뀌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그만큼 사람 몸은 간사하다.



 “어쩐다죠? 감정이 없는 무쇠 소라서요. 저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제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걸요.”



 종잇장같이 창백해진 지양의 얼굴 가득 깊은 슬픔이 어렸다. 그 깊은 슬픔은 처절한 상처가 남긴 것이었다. 흑련은 지양을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최이 집정은 집안에 사람을 들일 때면 반드시 무당 흑련에게 그 길흉을 물었다. 고려 황제가 눈치를 보는 이 땅 최고의 권력자도 두려워하는 게 있었다. 바로 무당 흑련이 모시는 신이었다. 그 신은 하늘의 이치나 사람의 도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그가 밤낮 공들이는 부처와도 거리가 멀었다. 오직 자신들의 앞날을 말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신이었다. 최이가 신의 딸을 범하고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건 그 신과 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가까이서 신의 보살핌을 독차지하고자 함이었다. 신라 때 제왕이 곧 부처라고 여기던 사상과 흡사했다.



 이제 내가 결단 내릴 차례다. 하늘이 이런 여인을 낳게 하고 내게 보낸 까닭이 분명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감싸지 말자. 철저한 방관자가 되자. 여태껏 최씨 일가의 안녕을 빌어 왔거늘 이렇게 그들을 해코지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운명이다.



 “나는 너를 돕지도 방해하지도 않으련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양은 그렇게 흑련이라는 장애를 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최항의 첩으로 들어가더라도 이내 쫓겨 나올 공산이 컸다.



 지양은 초파일 연등회 사건을 만들어 최항의 애첩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약속대로 흑련은 몽니를 부리지 않았다. 이후로 지양은 흑련을 어머니로 부르며 자주 문안을 드렸다. 둘은 최씨 부자가 거느린 수십 명의 첩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굳이 따진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되기도 했으니까.



흑련의 집을 나선 지양의 가마는 강화도성 서문으로 들어서서 저잣거리로 향한다. 두 호위무사가 앞뒤로 붙은 가마는 쌍둥이 형제 가게 앞에서 멈춘다. 잡화점이다. 쌍둥이 형제는 보이지 않는다. 수염이 덥수룩한 퉁방울눈이 분칠한 아낙네들과 농을 치고 있다가 민망해하면서 지양을 맞이한다. 건장한 대식국 사람인데 고려 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둘은 가게 안쪽 방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밀담을 나누다 나온다. 대식국 사람이 큼지막한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와서 가마에 싣는다. 지양이 가마에 오르자 가마가 다시 움직인다. 가마는 궁궐 앞으로 해서 진양부 쪽으로 접어든다.



 사거리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있다.



 “찌는 땡볕 아래서 또 무슨 일이냐?”



 “글쎄요. 몇 놈 처형되는가 본데요.”



 앞쪽 호위무사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대낮에 사거리에서 무슨 처형? 자세히 알아봐라.”



 지양은 속으로 짚이는 게 있어서 그렇게 명한다. 무사가 곧 돌아와 고한다.



 “마님, 별일 아닙니다. 험한 꼴 보시지 마십시오. 잠시 가마 창문을 닫겠습니다.”



 무사는 다짜고짜 문을 닫으려고 한다.



 “문 그대로 두고 무슨 일인지 바로 말하라!”



 얼음처럼 차가운 외침이었다. 몸을 움찔한 무사가 입을 연다.



 “실은 지주사 나리께서….”



 “지주사가 또 사람을 때려죽인다는 게냐?”



 “저 쳐 죽일 놈들이 나리를 욕보였으니까요.”



 “무슨 욕을 보여?”



 “낮술 처먹다 혀를 함부로 놀렸답니다요. 무조건 어여쁜 기생 첩을 봐야 그 자식새끼가 출세할 수 있다고요. 마침 잠입해 있던 우리 패가 그 말을 듣고는 붙잡아다가 나리께 고한 모양입니다요.”



 “그 무사는 상을 받았겠구나.”



 지양은 눈을 감았다. 기생 첩 이야기만 나오면 최항은 눈이 뒤집혔다. 자신이 기생 첩 소생이라는 열등감이 컸는데 지위가 높아지자 분풀이로 발전한 것이었다. 저이들이 최항 지주사를 조롱했다면 끝장이었다. 들통 나면 철퇴를 맞았다. 행인들이 많은 거리에서 본보기로 때려죽여 버렸다. 국법을 무시한 사사로운 법 집행이었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가마를 저 가까이 대라.”



 지양은 꽁꽁 묶인 채로 무릎 꿇은 세 사내 앞에서 철퇴를 흔들며 춤추는 망나니를 가리켰다. 임시 처형장에는 십여 명의 무사들이 창을 세우고 도열해 있었다. 가마가 그들 쪽으로 다가가자 군중들이 웅성거렸다. 지양이라는 비구니가 최항 지주사를 녹여버린 이야기는 강도 백성들 가운데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가마에서 내린 지양은 쪽물 들인 모시옷을 나풀거리며 죄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보는 민머리와 모시옷이 꼭 나비잠자리처럼 우아하게 보였다. 뭇시선들이 집중되었다.



 “미련한 것들!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수는 법이다. 정 입이 근질거리면 바다 한가운데 나가서 목이 쉬도록 해 퍼붓고 오면 될 것을!”



 지양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맞는 사내들은 물론 그 많은 군중 가운데 누구 하나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서 꺼져버려라! 다시 눈에 띄면 그땐 내가 직접 철퇴를 내려칠 테다.”



 지양의 앙칼진 소리에 죄인들이 망나니와 무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일으켰다.



 “어서 꺼지지 못해!”



 지양이 다시 고함을 치자 꽁꽁 묶인 그들이 오리걸음으로 뒤뚱뒤뚱 달아나기 시작했다. 군중들이 삽시에 흩어지면서 그들과 무사들 사이에 사람의 장막을 쳐버렸다. 그 사품에 죄인들이 파묻혀 버렸다.



 “마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주사 나리가 아시면….”



 기겁한 무사들이 날뛰었다.



 “내가 알아서 하련다. 너희들은 그만 별초군 본대로 복귀하라.”



 가마에 오른 지양은 조용히 흩어지는 군중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구경꾼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라고 해서 생각마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보았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눈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숙여 보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도 지금 이 나라는 죽음의 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라 밖에서 쳐들어온 몽골군들, 나라 안에서 눈 부릅뜬 무신들이 연출한 제전이었다.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이 개나 소처럼 끌려나와 무참히 죽어나갔다. 몽골 놈들에게 끌려가 전장에서 대리전을 치르다 죽는 이들도 있었고 몽골군 노리개로 전락하는 여인들도 많았다. 그들은 대개 돌아오지 못하고 객귀가 되었다. 나라는 아무런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했다. 방패는커녕 더 쥐어짜고 철퇴나 내려치는 게 고작 하는 짓이었다. 이래저래 넌더리가 난 백성들은 유랑걸식하며 산으로 바다로 숨어들었다. 불교계는 그들을 골라가며 받아들여서 사찰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 사찰 노비들은 중들의 가마나 당나귀, 말을 끌기도 했고 빨래를 해주기도 하면서 목숨을 연명했다. 그것이 죄업 많은 중생들의 인생살이였다.



 그 죄업 누가 만들었는가. 나라가 돌보지 못해 놓고 백성들에게 업장을 뒤집어씌웠다. 한계상황 극복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면 나라고 종교고 왜 필요한가. 이건 아니다. 이건 사람 사는 세월이 아니다. 야만족의 침략을 받은 이때 나라도 종교도 본래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무신들은 백성을 사냥하고 중들은 중생을 부려먹고 착취한다. 빨리 끝내야 한다. 이 피의 제전, 미친 굿판을 집어치워야 한다.



 지양은 입술을 깨문다.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황궁 안 편전에서는 고종 황제가 중서문하성 문하시중, 중추원 원사 등의 원로 대신들과 국사를 논의하고 있었다. 몽골군에게 유린된 본토의 민생 대책, 잘 걷히지 않는 세수 확보 문제가 다뤄졌다. 대신들 가운데 최이 집정은 보이지 않았다. 중서령과 판원사도 없었다. 그런 고위급 실세들은 죄다 최이 집정의 사람들이었다. 집정과 그가 심어놓은 실세들이 없는 자리에서 논의된 일은 별 효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대책들이 나왔다.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집정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원로 대신들이 입을 모아 재가를 받아내도록 하라. 짐도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황제의 용안에는 사람을 제압하는 기운이 넘쳤고 명령은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공허하다 못해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집정에게 재가를 받아내도록 하라니. 재가는 황제가 직접 안건에 어새(御璽)를 찍고 결재하여 허가하는 일이었다. 그 재가를 집정이 한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집정에게만큼은 명령할 수 없었다. 그저 주장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히. 그냥 주장해서는 씨알도 안 먹혔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은 몰라도 국가 중대사는 대신들과 황제가 강력히 주장하여 집정의 내락이 떨어진 경우에만 황제가 비로소 어새를 찍을 수 있었다. 집정 최이는 어새만 쥐지 않았지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다. 오늘 황제가 주재한 원로회의는 모의회의이자 예행연습과 다름없었다.



 예행연습이 끝나자 원로들은 각 부서로 돌아갔다. 편전 문밖에서 죄다 듣고 있던 액정국 정9품 승지 김준은 원로들보다 먼저 방으로 돌아와 오늘 논의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관이 기록하는 사초(史草)보다 더 꼼꼼했다. 그 기록들은 관리들이 퇴청하는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최이 집정의 사저로 보내졌다.



 한편 왕식 태자는 동궁에서 중서문하성 좌상시, 중추원 부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들의 논의는 황제와 원로 대신들의 모의회의보다 훨씬 큰 사안이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육지로 속히 나오라는 몽골 사신의 말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십니다. 최이 집정과 무신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는 하루속히 강도에서 개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본토에 버려진 백성들을 이젠 보듬어 안아줘야 하오. 백성들은 몽골군보다 조정을 더 혐오하오.”



 대륙과 고려국이 그려진 지도가 펼쳐진 탁자 앞에서 왕식 태자가 말한다. 태자의 검지는 지도 속 강화도와 개경 사이를 뻔질나게 오가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는 건 이처럼 쉬운 일인데 올해로 십육 년째 섬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조정이 강도에서 나가는 순간, 최씨 무인정권 세력은 몽골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됩니다. 무슨 수로 집정과 무인들을 설득하겠습니까?”



 태자의 외척인 유(柳) 좌상시가 한숨을 쉰다.



 “우리가 몽골 사신과 접촉하는 것도 막는 저들입니다.”



 젊은 부사 또한 절망적이다.



 “그래도 다음 번에 몽골 사신이 오면 어떻게 해서든 비밀리에 접촉해야 합니다. 부왕마마와 나, 여러 문신들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을 돌볼 여지가 생기오.”



 태자는 문득 남녘 땅으로 감찰 나간 지밀 승정의 말을 기억해냈다.



 ‘태자 전하, 꼭 바다를 건너세요.’



 몽골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적들과 내통해서라도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게 왕식 태자의 소신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엉터리 같은 나라 꼴이 제대로 잡힐 리 없다. 태자는 부왕의 스승 유승단 재상처럼 조백 있는 문인이 못내 그리웠다.



글=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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