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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종교의 동시 통역사 되고 싶다” … 정현경 뉴욕 유니언 신학대 교수

중앙일보 2011.12.03 01:30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뉴요커는 경마장의 말이다. 끝없는 성공을 위해 죽으라고 뛴다. 그런데 트랙을 돌다가 갑자기 말 몇 마리가 죽어버렸다. 그러자 나머지 말들도 모두 섰다. 왜 그럴까.”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을 악마로 만들지 마라, 제발

 30일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미국 유니언 신학대의 정현경(55) 교수를 만났다.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꼽힌다. 1996년 아시아 여성으로선 최초로 그는 이 대학의 종신교수가 됐다. 그에게 물었다. “최근 뉴욕에 우후죽순처럼 명상센터가 생겨나는 이유가 뭔가?”



 다짜고짜 그는 말(馬) 얘기부터 꺼냈다. “뉴욕은 무한경쟁의 장이다. 경마들의 경주 트랙이다. 돈을 위해,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 말들은 달린다. 그중에서도 세계무역센터는 가장 치열한 경마들의 각축장이었다. 그게 무너졌다. 그래서 3000명의 뉴요커가 죽었다. 바로 그날 그들의 아침이 어땠을 것 같나?” 정 교수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답을 이어갔다. “그들은 아침에 아이의 뺨에 뽀뽀를 했다. ‘이따 아빠가 데리러 올게’라고 말했다. 혹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주식 거래 끝내고 저녁에 한잔 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뉴욕에는 모두 5개의 구(區)가 있다. 맨해튼에서 3000명이 죽었으니, 사망자가 없는 동네가 없었다.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몇 다리만 건너면 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게 뉴욕의 시계를 멈추게 했다.” 정 교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또 침묵이 흘렀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무슨 뜻인가. 뉴욕의 시계를 멈추다니.



 “다들 뛴다. 살자고 뛰고, 돈 벌자고 뛰고, 출세하자고 뛴다. 세상에 뉴욕처럼 뛰는 도시가 어딨나.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게 뉴욕이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3000명이, 그것도 뛰는 놈 위에서 날아다니던 3000명이 한순간에 없어진 거다. 그때 뉴욕의 시계는 ‘딱!’ 하고 멈추었다. 그와 함께 앞만 보고 달려가던 뉴요커들이 모두 멈추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말인가.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건 거대한 종소리였다. 동네마다 추모의 장소가 마련됐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성당처럼, 교회처럼 됐다. 동네의 분수대 앞, 성당 앞, 공원 벤치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이 놓이고, 편지가 놓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울면서 이웃이 됐다. 나도 가서 많이 울었다. 서로 눈도 안 맞추고 달려가던 뉴요커였다. 그들이 달라졌다. 이젠 눈을 맞추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쓸쓸한 웃음의 이유는.



 “인간의 왜소함이다. 인간의 나약함이다.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고,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꼈던 거다. 미국에서 ‘911’은 구급차를 부르는 비상 전화번호다. 나는 그것을 신이 우리에게 걸었던 ‘응급전화’라고 생각한다.”



●왜 응급전화인가.



 “위기라는 거다. 정신 차리라는 거다. 그래서 깨어나라는 거다. 신은 지구문명을 향해 그렇게 전화를 걸었던 게 아닐까. 신학자로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후에 뉴요커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달라졌나.



 “하던 일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자기를 돌아봤다. 그리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뭘 물었나.



 “‘나는 누구인가?(What am I?)’ ‘나는 왜 여기 와 있는가?(Why am I here?)’ 그걸 묻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던 상관이 없었다. 그리스도교인도, 불교인도, 유대교인도, 힌두교인도 그걸 물었다. 무신론자들조차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게 뭔가. 바로 명상의 출발점이다.”



●그들은 왜 제도권 종교가 아닌 명상센터를 찾는 건가.



 “사람들은 제도 종교에 식상해한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을 내려오면서 돈과 결탁하고, 권력과 결탁하면서 예언자적 기능과 치유의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뉴욕은 특히 경쟁이 심한 곳이다. 직장에서 사람도 잘 자른다. 뉴욕이란 도시는 인간이 창조한 극단적 아름다움과 욕망이란 극단적 추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런 도시는 살기가 어렵다.”



●왜 살기가 어렵나.



 “극단과 극단이 만나면 기(氣)가 세진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굉장히 깊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적인 고향이 필요하다. 뉴욕에 사는 많은 이가 그걸 필요로 한다.”



 정 교수는 “예전에는 그걸 제도권 종교에서 많이 찾았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는 거다. “사람들은 이제 도그마(독단)가 된 교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성을 필요로 한다. 그 영성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련 형태가 ‘명상’이다.” 뉴욕에는 숱한 명상센터가 있다. 힌두교 명상센터, 이슬람 명상센터, 기독교 명상센터, 불교 명상센터 등 그야말로 ‘명상센터의 백화점’이다. 심지어 ‘인터-스피리추얼 명상(Inter-spiritual Meditation)’도 있다. 하루는 불교식 명상, 또 하루는 기독교식 명상, 다음 날은 힌두교식 명상을 한다. 서로 다른 명상법을 두루두루 체험하는 식이다. 정 교수는 “중립적인 장소에 힌두교인, 불교인, 기독교인, 무신론자들이 모여 각 종교의 명상 전통을 함께 배우는 센터도 뉴욕에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목마름이 큰 건가.



 “교리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안, 실질적인 치유에 대한 목마름이다. 뉴욕은 세계에서 문화·종교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도시다. 뉴욕을 보라.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존과 확연히 다른 종교적 패러다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거다.”



 정 교수는 기독교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불교 법사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2000년 만의 대변화”라고 설명했다. “약 2000년 전에 종교의 현인들이 인류사에 대거 등장했다. 예수를 비롯해 공자와 노자(老子), 붓다,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등.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기축(基軸·액시스) 시대라고 부른다. 나는 2000년 만에 다시 그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현자가 21세기에 나타날 거라고 본다. 우리의 일상을 통해, 일상 속의 명상을 통해 생활 속의 현자들이 수두룩하게 나올 거다. 뉴욕에서 나는 그걸 느낄 수 있다.” 인터뷰 도중 정 교수는 기자에게 “이 대목은 꼭 좀 강조해서 써달라”며 “이젠 제발 종교의 이름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악마화하고, 이단화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떤 종교적 배경을 갖든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꾹꾹 눌러 말했다. 덧붙여 “뉴욕의 교회들은 유럽처럼 점점 비어가는데, 명상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우리가 ‘종교’의 이름으로 그동안 너무나 많은 싸움을 치렀고, 너무나 많은 전쟁을 치렀다. 사람들은 이제 거기에 지쳤다”고 지적했다.



●종교적 배경이 달라도 친구가 되는 것, 왜 중요한가.



 이 질문을 받자 정 교수는 ‘20년 전의 사건’을 꺼냈다. 도발적인 일화였다. 1991년, 당시 그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였다. 호주 캔버라에서 제7차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열렸다. 정 교수는 주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세계의 교회 지도자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단상에 오른 그는 파격적인, 어쩌면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종이를 불태우며 초혼제를 지낸 것이다. 홀로코스트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 식민지 쟁탈전에서 죽은 사람들, 마녀 사냥에서 죽은 여성들, 정신대에서 죽어간 한국 여성 등 인류사에서 억울하게 숨을 거둔 이들의 이름이 종이 위에서 탔다. 그는 타고 남은 재를 강연장의 천장으로 훨훨 띄웠다. 이어서 호주의 벌거벗은 원주민과 한국의 농악단이 함께 판을 벌였다. 정 교수의 메시지는 ‘동양의 토착문화와 기독교의 조화’였다.



 반응은 극적으로 갈렸다. 열정적인 박수와 얼음 같은 침묵이 동시에 나왔다. 비판적 신학자들은 극찬했고, 동방 정교회와 유럽의 보수적 신학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다음 날 WCC는 두 편으로 나뉘었다. 한쪽에선 정 교수를 열렬히 지지했고, 다른 쪽에선 “마녀다. 이단이다”고 공격했다. 이와 함께 ‘서양이 서양식 기독교를 만들었듯이 동양이 동양적 기독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가 신학적 토론의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당시 뉴욕 타임스, 르몽드, 타임은 이 일화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진보적인 유니언 신학대에서 그에게 종신교수 제의를 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종교가 달라도 친구 되기, 왜 중요한가.



 “나와 가장 다른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능력, 그게 평화를 만드는 능력이다. 모든 종교가 평화를 말한다. 실제 평화는 그럴 때 온다. 요즘은 동서양 통합의학이라고 하지 않나. 종교도 어찌 보면 치유를 위한 약이다. 어떤 이에겐 양약과 수술이 잘 듣고, 어떤 이에겐 한약과 침뜸이 듣는다. 뉴요커들은 이제 양약방이냐, 한약방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내 몸에 맞고, 내 몸에 듣는 약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명상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거다.”



●어떤가. 당신은 양약이 맞나, 아니면 한약이 맞나.



 “어떤 사람은 내게 ‘종교의 이중국적자’라고 말한다. 나의 꿈은 종교의 이중국적자가 아니다. 나는 ‘종교의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다. 종교는 언어다. 요즘 아이들은 2개 국어, 3개 국어도 썩 잘한다. 21세기에는 여러 언어를 하듯 여러 종교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핵심은 언어가 아니다. 언어 이전의 침묵이다. 침묵이야말로 우리가 만나야 할 첫 번째 언어다. 그게 명상이다.”





“이슬람권 돌며 얻은 딱 하나의 지혜 꼽으라면 ‘사랑’입니다”



10년 전 9·11 사태가 터졌을 때 정현경 교수는 뉴욕에 있었다. 그는 신학생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일주일 후에는 틱 낫한 스님의 수행 그룹과 함께 그라운드제로를 돌며 삶과 죽음, 종교와 전쟁에 대한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물음표가 올라왔다. “이슬람 젊은이들은 왜 그랬을까. 대체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어떤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정 교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다. 한국에서 컸기에 이슬람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유니언 신학대는 명문 컬럼비아대와 담장 하나 사이다. 학점 교류도 가능하다. 정 교수는 당장 컬럼비아대에 가서 수강신청을 했다.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다. 과목명은 ‘이슬람 개론’, 무슬림 학자가 직접 가르치는 강좌였다. 이후 정 교수는 2005년 9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이슬람 17개국을 다니며, 평화를 만드는 200여 명의 무슬림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걸 책으로 썼다. 11월 말 출간된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웅진지식하우스)이다. ‘신학자 현경이 이슬람 순례에서 얻은 99가지 지혜’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①모로코 이슬람 사원에서 한 소녀가 코란을 읽고 있다. ②이스라엘 어린이들이 레바논에 투하할 폭탄에 사인하고 있다. ③이란 에스파한에 있는 모스크를 찾은 정현경 교수.


●이슬람을 순례하며 얻은 99가지 지혜 중 딱 하나만 꼽으면.



 “이슬람에서 신비주의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수피다. 수피즘에서 가장 유명한 스승이 13세기 터키에 살았던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1207~73)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삶과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그 모든 문제를 푸는 해법은 딱 한 가지다. 다름 아닌 사랑이다.’ 이슬람 17개국을 돌며 내가 얻은 딱 하나의 지혜를 꼽으라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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