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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다윈의 정원’] 개그맨·정치인 … 우리는 왜 유머에 매료되는가

중앙일보 2011.12.03 01:3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몇 년 전 태풍이 몰려오던 어느 초가을 저녁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자 출판사에서 내게 강연 요청을 해왔다. ‘과연 몇이나 올까, 날씨도 심란한데….’ 하지만 강연장에 도착한 나는 300명쯤 되는 청중에 깜짝 놀랐고 갑자기 부담이 밀려왔다. 시작을 잘해야 했다. 연단에 올라섰다. “제가 나와서 놀라셨나요? 오늘 도킨스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강의하는지 알고 많이들 오신 것 같은데요, 기다리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분 안 오십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회항을 했거든요. 하하하.”(일동 웃음!)



 이 농담 한마디로 긴장감이 감돌던 장내는 순식간에 명랑해졌다. 이렇게 유쾌하게 시작된 강연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강연이 끝나니 사인을 받겠다는 분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도킨스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만일 “궂은 날씨에도 강의를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이들 오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로 시작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밋밋한 강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오늘도 수많은 강연자가 재기 발랄한 오프닝 멘트를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이유다.



 요즘 TV 개그 프로그램 중에서 대세는 단연 개그콘서트다. 이번 주에는 어떤 애매한 것을 정해줄까? 국민은 궁금하다. 또한 무엇이 “어렵지 않은지”도 듣고 싶다. 애매한 것으로 가득한 일상과 부조리한 것에 둘러싸인 실상을 명쾌하게 꼬집는 개그맨들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요 며칠은 유머의 본질을 창의적으로 풍자한 어떤 정치인의 기발한 문제 제기 덕분에 또 한번 큰 웃음의 진원지가 되었다. 물론 앞으로는 ‘애정남’이 정해준 대로 더 이상 ‘농담’과 ‘디스(존경을 의미하는 ‘respect’의 반대말인 ‘disrespect’의 줄임말. 다른 사람을 폄하·공격하는 행위)’를 혼동할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농담은 웃음을 주지만 디스는 상처를 줄 수 있음. 둘 있을 때 얘기하면 농담, 사람이 많을 때 얘기하면 디스. 단, 전혀 찔리지 않으면 농담.” 하지만 이 해프닝은 우리 사회에 웃음에 관한 화두를 던져준다. 대체 우리는 왜 유머에 매료되는가? 농담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복잡한 일들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지는 않는다. 대신 뇌를 통해 복잡한 세상에 대한 내적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해보고 예측을 한다. 그러니 예측치와 어긋나는 현실을 만나면 뇌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즉 뇌는 매일 똑같이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하는 기계이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가 감지될 경우에는 특별히 주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머는 이런 위반을 감지할 때 생기는 일종의 뇌의 보상 메커니즘이다. 유머가 많다고 알려진 이들은 예측과 기대가 위반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듦으로써 다른 사람의 관심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몇 년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막 취임하고 나서 백악관 출입기자단과 만찬이 있었을 때의 일화다. “클린턴 장관과는 경선 당시에 라이벌이었지만 요즘은 아주 친해졌어요. 그녀가 (신종 플루가 유행이던) 멕시코에 다녀와서는 나를 껴안고 키스를 퍼붓더군요.” 이 한마디는 좌중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켰다. 만찬의 분위기가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다.



 여기서 작동한 유머 메커니즘을 분석해보자. 대통령이라면 장관이 신종 플루 지역에 다녀온 직후라도 거리낌이 없이 악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일반인의 기대다. 물론 오바마는 악수, 포옹, 키스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통상적인 공치사를 넘어서서 ‘대통령답지 않은’ 참신한 언행(‘나도 신종 플루가 무섭거든!’)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유머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다. 옛 경쟁자(힐러리)와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렇게 절묘한 방식으로 이완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적인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정치인의 유머 감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덧붙이자. 위트와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을 위한 자구책이 있긴 하다. 농담을 외워서 말하기. 하지만 대개 그들이 외운 농담은 생뚱맞게 튀어나와 썰렁함을 더한다. 국민 MC 유재석씨와 국민 ‘깔때기’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우리를 깔깔거리게 하는 것은 그들의 암기력이 아니라 지적 순발력 때문이다. 그들은 늘 청중에게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들어줌으로써 우리 뇌의 유머 메커니즘을 자극한다.



 정치인 중 자신의 유머 감각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착각하는 경우인데, 지위가 높은 사람의 언행에 더 과도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지도자’라는 신호를 보내줌으로써 자신의 생존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웃는다고 착각하지 마시길. 그들은 이미 웃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니까.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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