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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펑유란, 문혁 때 모진 고초 겪고도 왜 마오를 떨치지 못했나

중앙일보 2011.12.03 00:49 종합 22면 지면보기
펑유란 자서전-현대사의 격랑에 맞선 한 철인의 삶

펑유란 지음, 김시천·송종서

·이원석·황종원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624쪽, 3만원




‘삼사에서 고금의 철학을 해석하고, 육서로 신이학의 체계를 세웠다.(三史釋今古 六書紀貞元)’



 펑유란(馮友蘭·풍우란, 1895~1990,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따르면 펑요우란)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업적이다. 그는 중국철학을 자학(子學)시대와 경학(經學)시대로 나눠 서술한 『중국철학사』의 저자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현대 중국의 철인(哲人)이다.



 철학자이기에 앞서 그는 청(淸)말부터 민국시대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신산(辛酸)한 세월을 뚫고 살아온 한 자연인이었다. 베이징대학을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동과 서를 겸비한 재자(才子)였다.



1963년 11월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확대회의에서 펑유란(왼쪽)과 악수하는 마오쩌둥.
펑유란이 살았던 중국의 100년은 혁명과 전쟁, 고난의 시대임과 동시에 인재의 시대였다. 그는 베이징, 옌징(燕京), 칭화(淸華), 시난(西南)연합대학을 거치며 천인커(陳寅恪)·주쯔칭(朱自淸)·푸스녠(傅斯年) 등 희대의 학자들과 교류했다.



 자서전에 남긴 그의 굴곡진 삶은 중국의 진정한 힘이 혁명을 이끌고 원자탄을 만든 마오쩌둥(毛澤東)이나, 13억의 먹거리를 해결한 덩샤오핑(鄧小平)보다 묵묵히 시대의 등불이 됐던 철인들에게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청나라 말기 현(縣) 장관이었던 부친의 삶에서 엿보이는 당시 지방관리의 업무방식과 수입구조, 과거제도의 허와 실, 모친에 대한 애틋한 효성을 담은 장문의 제문(204~211쪽)을 읽노라면 당시 중국인들의 삶을 읽는 감칠맛이 난다.



 특히 문화대혁명이란 대격변기에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도 마오쩌둥에게 품었던 그의 ‘애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3장 ‘대학’ 말미에 나오는 시난연합대학에서 그의 삶은 이 책의 백미(白眉)다. 당대 기라성 같은 지성들의 한마당이었던 쿤밍(昆明)의 교정을 떠나며 그가 지은 기념비문은 당시 중국 지식인의 심성을 파악하기 충분하다.



 그의 삶에는 세 명의 여자 은인이 있었다. 그의 모친인 우칭즈 여사와 부인 런짜이쿤 여사, 그리고 그의 막내 딸인 소설가 펑종푸였다. 말년에 그의 곁을 지키며 부친의 구술을 책으로 엮었던 펑종푸의 『나의 아버지 펑유란』(글항아리)이 올 초 출판됐다. 곁들여 함께 읽으면 유익하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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