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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돈을 위한 노동, 나를 찾는 노동 … 당신의 선택은

중앙일보 2011.12.03 00:39 종합 24면 지면보기
2011년의 마지막 달입니다. 남겨진 달력 한 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때입니다.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웃었던 일도, 울었던 일도,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상투어로는 우리들의 1년을 엮어낼 수 없을 겁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2월의 주제는 ‘2011, 거울 앞의 나’입니다. 올 한 해 우리들의 일상을 다잡는 책을 골랐습니다. 일과 웃음, 그리고 외로움의 뜻을 돌아봅니다.


12월의 주제 - 2011, 거울 앞의 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로 유명한 슈마허는 ‘좋은 노동’을 이야기 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삶과 노동을 꿈꿨다.


굿 워크

E. F. 슈마허 지음

박혜영 옮김, 느린걸음

265쪽, 1만5000원




크고, 세고, 많은 것이 칭송 받던 시절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책을 쓴 사람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1911~77)다. 무한성장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젖은 인간들이 날뛰고 있을 때 “잔치는 끝났고, 이제 우리는 잔치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 갈파했다. 30여 년 전에 이미 오늘을 내다본 이 선지자가 던진 화두는 핵심을 찌르고 있다. “결정하시죠. 경제적으로 살다가 죽고 싶은지, 아니면 경제적이지 못해도 살고 싶은지!” 그가 이런 절박한 심정을 전하는 순회강연 도중 타계했을 때, 동료들은 ‘슈마허야말로 인류의 생각을 바꾸도록 만든 매우 독창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기렸다.



 굿 워크(Good Work)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좋은 노동’이다. 옮긴이는 슈마허가 말하는 ‘워크’에는 신성한 육체노동과 함께 종교적 영성 작업이란 의미도 담겨있기에 선뜻 단어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며 ‘노동’ ‘일’ ‘작업’ 등으로 풀어냈다. ‘청년실업뿐 아니라 중·장·노년 실업이 다 고통이 된 한국 현실에서 좋고 나쁘고를 가릴 처지인가? 한가한 소리군’ 하는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워크는 돈을 위해 사고파는 노예적 관계의 노동이 아니다.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며,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이들과 협력하려 애쓰는 일자리다.



 슈마허는 산업사회의 악행과 폐해를 4대 죄악이라 꼽을 만큼 인간의 인격을 저해하는 노동 현장을 비판했다. “이 체제가 육체노동이건, 정신노동이건 간에 대부분의 노동을 완전히 재미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일갈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이 불교경제학이다. 자연 속에서 진정한 ‘한계’를 인식하는 인도의 풍토에서 배운 것이다.



 그가 일찌감치 서구문명의 종언를 예고하며 지목한 또 하나의 사회현상이 양극화다. “양극화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더욱 벌어져 상당한 크기의 회색지대가 매우 검은 쪽과 매우 흰 쪽으로 나눠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 대안의 하나가 ‘중간기술’ 내지는 ‘적정기술’이다. 기술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을 기술에 종속시키지 않으면서 중앙 집중화나 관료주의적 운영방식을 낳지 않는 작은 단위의 기술을 이름이다.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생존조건에 잘 맞는 적정 수준의 삶의 방식을 찾는 일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구해야 할 ‘굿 워크’라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바라보는 슈마허의 지혜로운 눈은 현대 과학기술의 파괴성 대목에 이르러 특히 빛난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핵에너지의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듯, 그는 “왜냐하면 핵에너지의 위험성이란 아직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파괴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슈마허를 다시 읽어야하는 까닭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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