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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북한 붕괴 …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

중앙일보 2011.12.03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장덕준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유라시아연구소 소장
최근 러시아의 대표적인 국책 연구기관인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보고서를 공개했다. ‘2030년까지의 전략적 글로벌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향후 20년간 국제정세의 변화 전망을 담고 있다. 총 300여 쪽 가운데 한반도와 관련된 부분은 5쪽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보고서는 북한의 변화와 통일 전망과 관련해 북한체제의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지적함으로써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IMEMO의 보고서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를 꺼려 왔던 러시아의 학술원 산하 대표적인 국책 연구기관이 2020년대 후반부터 북한체제의 붕괴와 흡수통일의 과정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18일 한국슬라브학회가 주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는 국내 전문가들과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IMEMO 보고서가 언급한 북한체제의 붕괴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서 러시아 측 참석자들 사이에 대조적인 견해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 참석자는 북한의 3대 세습이 정권의 불안정을 증대시키는 한편, 김정일 사후의 새 지도부가 정통성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렇게 될 경우 대외 개방파와 군부 강경파 사이의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체제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참석자는 북한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국제사회의 중재하에 결국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 다른 러시아 참석자들은 다소 다른 주장을 개진했다. 옛 동독 등 동구권 국가들과는 달리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는 북한의 상황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체제 유지에 유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현상 유지 정책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북한체제가 오히려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론에 비판적인 토론자들조차도 북한체제가 개혁과 변화를 거부한다면 결국에는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표면상으로는 북한체제의 안정과 현상 유지를 강조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IMEMO 보고서의 내용으로 보건대 러시아 정부는 내부적으로 북한체제 붕괴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한반도의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 들어간 듯하다.



 우리도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 한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붕괴 시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러한 국면에서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국경지대 주변의 안전을 안보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강대국 가운데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므로 러시아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데도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북한 붕괴에 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회피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만약 북한체제가 급작스럽게 무너지는 경우 북한 내부에 극심한 혼란이 오거나 친중 정권이 수립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의 중국 의존을 더욱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의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는,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유라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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