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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미국의 마르크스, 중국의 애덤 스미스

중앙일보 2011.12.03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이탈리아 출신으로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2009). 그가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글로벌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뺏으려는 중국의 미묘한 갈등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2011년이 저무는 시점에 미·중의 달라진 위상을 돌아보면서 던져본 질문이다. 올해 미국에선 저무는 제국의 황혼을 연상케 하는 징후들이 적잖게 드러났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못 가진 자 99%가 가진 자 1%를 공격하는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계급갈등을 중시한 카를 마르크스가 느닷없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인 뉴욕에 출현한 듯했다. 반면 중국은 9%대의 고속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항공모함과 우주정거장 실험 이벤트로 커진 국력을 과시했다. 미국 패권이 중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진단했던 아리기가 미·중의 상반된 양상을 목격했다면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호황과 위기의 반복 현상을 패권의 변화란 각도에서 분석한 학자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패권의 바통이 바뀌면서 진화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제유지 비용의 증가로 기존 패권은 위기를 맞았다. 이 와중에 좀 더 경쟁력 있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해 기존 패권국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리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in Beijing)』란 책에서 『국부론(國富論)』의 시각으로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설명하면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중심에 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사회주의를 표방해 온 중국은 스미스의 시장경제이론과는 얼핏 무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중국의 놀라운 발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스미스의 시장경제이론이란 논지를 폈다. 국가를 위해 시장을 이용하라는 스미스의 가르침을 덩샤오핑(鄧小平)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구현해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패권이 정점을 찍고, 중국이 잠재적 차기 패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로 볼 수 있을까. 중국이 글로벌 체제에 본격 편입된 2001년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해 9·11테러가 발생했고 발끈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보복 전쟁을 벌였지만 아리기가 말한 엄청난 패권유지 비용을 치렀다. 9·11테러 두 달 뒤인 그해 11월 10일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급성장했다. 미국의 9·11과 중국의 WTO 가입은 미·중의 장기적 패권 구도 변화라는 큰 흐름에서 의미심장한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견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중 사이에 낀 한반도에 2012년 자칫 패권 다툼의 불똥이 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라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처럼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감을 키워줄 전향적 카드를 어느 때보다 미리 찾아야 한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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