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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문제는 진보·보수가 아니다 말이 너무 가볍고 얄팍하다 기본이 문제다

중앙일보 2011.12.03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닉슨 미 대통령을 사임(1974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 사건은 워싱턴포스트(WP)지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덕분에 세상에 폭로됐다. 이들에게 사건의 내막을 알린 딥 스로트(deep throat·은밀한 제보자)는 마크 펠트 당시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다. 우드워드·번스타인은 “죽을 때까지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고 펠트에게 약속했다. 2005년에 펠트 측에서 먼저 “내가 제보자”라고 밝히자 두 기자와 WP도 이를 시인했다. 펠트는 2008년 9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5공 독재 붕괴의 결정타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해 1월 15일 중앙일보 사회면에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역사적인 특종기사가 실렸다. 보도의 발단은 검찰 간부의 제보였다. 당시 신성호 사회부 기자(전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는 검사실을 순회하는 일상적인 취재 도중 한 간부로부터 “경찰들 큰일났어”라는 말을 듣는다. 큰 사건이 터졌다는 직감에 추가 취재에 들어가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이 전날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취조받다 숨진 사실을 알아낸다.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확인에 확인을 거쳐 기사화에 성공한다.



 한 달여 뒤면 박종철씨 25주기인데, 신성호씨도 아직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 비밀로 하기로 약속해서다. 박종철 사건의 딥 스로트는 이미 검찰에서 퇴직했다. 얼마 전 신씨는 오랜만에 그를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그때 왜 내게 사건을 귀띔해 주었나”고 묻자 그는 “‘이건 도저히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25년간 지켜온 비밀. 새삼 입을 열고 닫음의 무게를 느낀다.



 적어도 검사나 판사라면 말의 무게와 파장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아침만 해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경구로 당부하는 동안 인천지법·창원지법의 두 부장판사는 각각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미 FTA 비판에 열을 올렸다. FTA 찬·반 소신이나 진보·보수 여부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좌·우가 아니라 ‘기본’이다. 너무 가볍고 얇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은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다. 기혈이 통하면 몸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 의사소통의 중요성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 툭툭 말을 내뱉는 판사, 가볍게 사표를 내던지는 검사들을 보면 경박한 소통은 오히려 아픔을 가중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나마 갖고 있던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일반 국민의 통증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통즉통(通則痛)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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