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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국의 ‘아시아 중심축’ 전략

중앙일보 2011.12.03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하와이, 호주, 인도네시아 방문을 통해 미국이 아시아를 중시하고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과시했다. 이번 순방의 핵심은 지난 10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기고한 글에 잘 제시돼 있다. 바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면서 아시아의 중심축이 될 것임을 강조한 내용이다. ‘아시아의 중심축’이라는 주제에 대해 워싱턴에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선 선거용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미국의 대외전략 관점에서 중심축이라는 개념이 갖는 장단점을 분석하기도 한다.



 중심축 주장은 미국 대외정책의 앞날에 아시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외교 역사 전 과정에서 아시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뒷자리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팽창하는 것을 방치했다. 독일이 유럽에서 승리함으로써 대서양과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막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일본보다 독일의 히틀러를 쳐부수는 것이 우선이라는 ‘유럽 우선’ 전략에 합의했다. 한국전쟁 직전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아시아에 대한 안보 관여를 한반도로 한정했다. 서독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모든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대다수는 아시아보다 유럽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독일마셜기금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과반수 이상이 아시아가 미국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성장의 기반을 주로 아시아에서 찾고 있다. 국방비가 삭감되는 와중에도 군사력 감축은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미 정부는 태평양사령부에 분명히 하고 있다. 중심축 개념은 미국의 대외 및 안보 전략에서 우선순위가 바뀌는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에 나서기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진전시켰으며, 호주에 2500명의 해병대를 파견키로 합의하는 한편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 모든 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가 지지하는 굳건한 아시아 전략의 초석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전임 부시 정부가 시작했던 일이다.



 한편 미 정부의 중심축 전략은 미국 내에선 물론 아시아에서도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컨대 서남아시아의 상황은 미국이 다른 지역에 시선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란이 갈수록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선 말이다. 더욱이 미 정부는 태평양사령부의 군사력을 감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태평양사령관이 휘하의 군사력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미 정부가 공언하듯 향후 10년간 4500억 달러의 군사비를 감축하면 전 세계에 주둔한 미 군사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미 의회 수퍼위원회가 예산 삭감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군사비 감축은 최대 1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그 결과 미국의 항공모함과 함대가 배치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럽과 서남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태평양사령부의 군사력이 파견될 수밖에 없다. 중심축 전략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유지해야 하는 안보 수요를 대치할 순 없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역사상 군사비 지출이 가장 적은 오늘날 오바마 정부는 국방비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정치적·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다.



 중심축 전략의 둘째 문제는, 프린스턴대 톰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초강대국이라면 너무 ‘저능아’처럼 보여선 안 된다는 점이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대아시아 메시지에서 ‘핵심 이익’의 상호존중이나 ‘전략적 보장’을 바탕으로 ‘전략경제대화’를 통해 중국과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의 도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중국은 물론 아시아의 미 동맹국들에도 먹히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필연적으로 관여와 견제라는 힘과 균형의 조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전략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조용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더 효과적이다.



 백악관은 미국 언론들로부터 점수를 따기 위해 “부드럽게 말하되 큰 몽둥이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격언을 외면했는지 모른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다음 정부는 큰 몽둥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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