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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지키는 사람들

중앙일보 2011.11.29 03:30 6면
책 속의 이야기들


손님 원하는 책 구했을 때 가장 행복
책 값어치 알아주는 손님 고마워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에 오랜 세월을 품은 책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사진은 천안 두정동 ‘천안헌책방’ 전경. [사진=조영회 기자]
대형서점의 출현으로 동네 서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 두정동에는 이정원(50)·이영미(50) 동갑내기 부부가 운영하는 ‘천안헌책방’이 있다. 지하 1층 231㎡ 규모의 널찍한 공간에 헌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 헌책방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손님으로부터 ‘1년을 못 넘기고 망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부부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약이 되는 충고였다. 부부는 손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책을 정리해 나갔다. 손님들이 책을 찾기 쉽고 가격을 잘 알 수 있도록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컴퓨터에 등록 해 놓은 책만 2만7000여 권에 달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많이 팔린다. 양적으로는 학생들 문제집이 가장 많이 나간다. 요즘에는 교과과정이 계속 바뀌고 있어서 중고 교과서를 쓰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제집 같은 경우 정가의 3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헌책방에서 사서 읽은 후 다시 가져오면 산 가격의 반 가격으로 다시 사 준다.”



-가장 인상 깊은 손님들은.



“‘작은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진 50대 손님이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오는데 친구분들께 선물한다며 책을 사간다. 친구들의 성향이나 사정에 어울릴만한 책을 고심하며 고른다. 책을 선물하는 마음이 즐거워서 사 간다고 한다. 새로 이사한 집의 집들이를 해야 하는데 ‘책이 없으면 무식해 보일 것 같다’며 책을 사 간 손님도 기억에 남는다. 경제 관련 책 90여 권을 제목도 내용도 따지지 않은 채 사 갔다. 어느 단골손님은 책을 고르다 말고 책 정리만 도와주다 가는 경우도 있다.”



-대량으로 책을 파는 사람도 있나.



“사정이 안 좋아져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 책을 내 놓는 경우다. 아이들을 위해 비싸게 구입한 책을 가져가지 못하는 엄마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책을 가져 올 때 아이가 지켜보고 있으면 그 아이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책만 남겨두고 이사 가면서 전화를 주기도 한다. 빈 집에 책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또 의미 있는 편지들이 끼워져 있기도 한다. 사진도 많이 나온다. 옛날 우표, 좋은 구절을 써 놓은 메모가 끼워져 있기도 한다. 편지와 사진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둔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적힌 책들도 있다. 그런 메모를 볼 때면 ‘사람 사는 모습이 모두 비슷하구나’ 싶어 힘을 얻는다.”



책 밖의 이야기들



성황동 복자여고 근처의 ‘뿌리서점’은 홍성무(43)씨가 운영하고 있다. 뿌리서점은 천안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다. 홍씨는 2005년부터 친인척에게 책방을 물려 받았다. 뿌리서점의 특징은 서가 한 켠에 새책을 함께 판매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류는 10% 할인해 판매한다. 아주 비싼 책들은 정가의 50%, 나머지는 30% 미만이 많다. 일반 소설책들과 잡지류는 대부분 2000원에 판매한다.



-학생 고객이 많은가.



 “복자여고 학생 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다. 주로 문제집을 많이 사가지고 간다.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책은 영화의 원작 소설인 공지영의 『도가니』와 김려령의 『완득이』다. 신간도 인기 있지만, 헌책도 나오기 무섭게 나간다. 한참 많이 거래가 되던 책들인데 영화가 상영되고 인기를 얻은 후 도통 책이 나오지 않는다. 학습만화도 잘 나가는 편이다.”



-헌책방 운영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손님들이 자주 찾는 책을 구하기 어렵다. 이사철이나 시험이 끝났을 때,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정리차원에서 가져 온다. 소설책은 권당 500~1000원 정도 문제집도 상태에 따라 1000원, 2000원에 매입한다. 파는 가격과 차이가 있다 보니 손님들에게 그 차이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헌책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며 그냥 가는 손님들을 볼 때 기운이 빠진다. 5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의 남자 단골들은 싸다 비싸다 말하지 않는다. 책의 값어치를 아는 분들이다. 한두 권을 사도 비싸다는 사람이 있지만 가격에 대해 일언반구 말없이 가져가시는 손님도 있다. 그런 분들은 알아서 할인을 해 드린다.”



-헌책방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귀한 책을 부탁 받아 구해 드렸을 때다. 노력에 비해 이윤은 적지만 구하고자 했던 책을 얻어 고마워하는 손님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또 중·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도 그럭저럭, 책에 별 흥미를 못 느끼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책에 재미를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학생들은 적은 용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 어쩔 때는 돈이 모자라서 책을 고른 후 맡겨놨다가 용돈이 생길 때마다 한 권씩 찾아 간다. 뒤늦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 학생들을 볼 때 기분이 좋다.”



▶문의=천안헌책방 041-562-3327, 뿌리서점 041-563-9129



글=홍정선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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