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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우파 복지 시대

중앙일보 2011.11.29 02:19 종합 1면 지면보기
남윤호 정치부장
복지 이니셔티브.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한나라당의 카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로 수세에 몰리자 복지정책으로 뚫어보겠다는 뜻이다. 한나라당은 좌파의 홈그라운드인 복지 부문에 공세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내년 복지예산 3조원 증액, 비정규직 보호, 부자 증세 등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내용들이다. 28일 당정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9만7000명의 정규직 전환도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복지대책이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의 행보는 ‘복지를 통한 정치적 반격’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 서울시 산하기관 비정규직 28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표도 자극을 준 듯하다.


한나라 정책 대전환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서둘러 발표

 지난 8월 말 현재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600만 명에 달한다. 사내하도급 등 실질적인 비정규직을 합치면 830만 명쯤으로 추산된다. 전체 유권자 5명 중 한 명꼴이다. 선거를 앞둔 정당엔 엄청난 존재감을 지닌 계층이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7월부터 친서민 드라이브를 걸면서 민심 수습의 핵심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책위엔 ‘비정규직 특위’를 두고 한국노총 출신 김성태 의원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특위는 9월 9일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7대 시책’을 발표했는데, 28일의 비정규직 대책도 그 후속이다.



 당초 경제논리를 앞세운 정부와는 갈등 기류가 맴돌았다.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자”는 당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정부가 맞섰다. 그러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홍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를 더 적극적으로 챙기며 정부를 압박했다.



홍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해 복지 확대에 대한 결심을 얻어 냈다. 이 대통령도 내년 선거에 유리하다면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정부도 ‘성의 표시’를 해야 할 입장이 됐다. 이번에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을 위해 내년엔 2600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청와대·정부와 특별한 이견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비정규직 대책에 이어 29일엔 김성식 의원이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정규직 전환보다 비용이 더 드는 두터운 보호대책들을 담겠다고 한다. 정부는 소극적이지만,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복지 이니셔티브를 쥐려는 한나라당 앞에 성장과 효율 중심의 ‘MB 노믹스’는 발언권을 잃은 셈이다. 경제현실도 이런 정책에 근거를 제공한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내년 상반기 성장률을 좋으면 3%대 초반, 나쁘면 2%대 후반으로 전망한다. 유럽 재정위기의 먹구름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탓이다.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제대로 늘지 않는 판에 저성장은 실업대란을 부를 위험이 있다. 비정규직 대책은 이에 대한 예방 조치인 셈이다.



 이번 대책은 공공부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엔 가이드라인이 된다. 조재정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공공부문이 솔선해 민간을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그러는 동안 시장원리로 소화할 수 없는 정치논리가 장차 누구에게, 얼마나 부담을 줄지는 아무도 챙기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드는 돈은 세금이나 공기업 운영수익으로 메워야 한다.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마냥 확대할 수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도 배치된다. 청와대에서도 “공기업 선진화를 외치던 정부가 공기업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화한다는 게 어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디테일이 거친 것도 한계다. 대상자 산출방법에선 서두른 티가 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34만1000명 중 전환 가능한 최대치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직종에서 누가 정규직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직무분석 과정에서 대상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남윤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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