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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중국 뒤집어보기 - 중국인의 집 <5·끝> 전통주택 결정판, 3000년 역사 사합원

중앙일보 2011.11.29 01:56 종합 8면 지면보기
대표적인 북방 사합원 주택인 산시(山西) 교가대원(喬家大院)의 모습이다. 높은 담을 통해 나타나는 폐쇄성과 건물이 안으로 향하는 데서 나오는 내향성이 특징이다. 이어지는 문의 구조는 그런 두 속성을 더욱 높인다. [이매진차이나 제공]


중국 남부 광둥성의 토치카식 주택, 객가(客家)의 집단 주택 투러우(土樓), 하늘을 향해 ‘숨구멍’ 천정(天井)만을 낸 후이저우(徽州)의 민가, 북방의 성채와 같은 대저택…. 이제까지 둘러본 중국의 전통 주택들이다. 이런 중국 전통 주택의 대표주자는 사합원(四合院)이다. 동서남북 사방(四方) 건물이 하나의 뜰(院)을 향해 함께 맞물려(合) 있어 이름이 붙은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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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높고 문 겹겹 … 도광양회 정신 원조





그 연원(淵源)은 약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북부 산시(陝西)성 서주(西周·BC 1046~771년) 시대 유적지에서 일찌감치 그 흔적이 발견된, 유래가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앞에서 둘러본 중국 전통 주택의 특징은 공격과 방어를 전제로 한 높은 담, 타인의 출입을 함부로 허용치 않을 듯한 견고하면서도 작은 문, 건물의 구조가 모두 안쪽을 향하는 내향성(內向性) 등이다. 사합원은 이런 중국 전통 주택의 모든 특징이 가장 완벽하게 일상적으로 자리 잡은 집이다.



 우선 담이 견고하다. 벽돌로 아주 두꺼운 담을 쌓아 내부와 외부를 분명하게 갈랐다. 이 집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대문이다. 남북으로 난 종향(縱向) 구조의 정면에 문을 낸 경우도 있지만, 대개 동남쪽 한구석에 조그맣게 문을 냈다. 그 문을 들어서도 내부는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합원의 외관이다. 견고한 담과 대문이 눈길을 끈다. 낯선 이의 접근을 막는 배타성이 엿보인다. [이매진차이나 제공]


 이중(二重)의 문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화려한 장식이 붙은 수화문(垂花門)이 그 대문 뒤에 만들어져 있거나, 그런 웅장한 문을 만들 형편이 아닌 집안에서는 달 모양의 문인 월동문(月洞門)을 동그랗게 냈다.



 외부는 견고하고 두꺼운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문이 문으로 이어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에게조차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구조다. 중국 북방 주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옥(韓屋)도 이처럼 사방의 건물이 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러서 있는 ‘ㅁ’자형을 발전시켰지만, 담의 높이와 견고함, 거듭 이어지는 문의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한옥은 그런 닫힌 구조를 변형시켜 ‘ㄷ’자형, 또는 ‘ㄱ’자형의 형태로 발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닫혀진 구조를 외부로 조금 더 열린 형태로 구조를 바꾼 모습이다. 담의 높이에서도 한옥은 중국의 사합원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이 중첩적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있어서도 그에 견줄 바가 아니다.



사합원의 중심을 이루는 뜰을 중심으로 건물들은 한결같이 내부를 향하고 있다.
 사합원은 가장 일반적인 도시 거주 중국인의 집 형태다. 그래서 수도 베이징(北京)에 가장 많이 들어서 있다. 일반인의 경우 보통 서너 채의 건물이 정원을 둘러싼 형태의 집을 짓지만, 부자나 벼슬이 높은 고관(高官)들은 남북을 향해 이런 형태의 사합원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의 저택을 지었다.



 뜰이 하나인 형태의 사합원을 1진(進), 그 뒤로 다시 사합원 하나가 이어지면 2진, 세 개가 이어지면 3진이라는 식이다. 1진의 사합원 안으로 들어서기에도 낯선 이의 발걸음은 괜히 무거워지게 마련이다. 3~4진의 사합원이라면 그런 낯섦과 소외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당(唐)나라 시인 최교(崔郊)의 경우가 그렇다. 벼슬에 오르기 전 가난했던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왕후대작(王侯大爵)의 고관들에게 빼앗겨 슬픔에 젖었다가, 어느 한식(寒食) 날 우연히 여인을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고관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시를 써주면서 최교는 “고관대작의 큰 집은 바다처럼 막막하다(侯門如海)”라고 표현했다.



 그 커다란 저택, 문을 겹겹으로 둘러치고, 담을 견고하게 쌓은 고관대작의 집을 바다에 비유했다. 깊고 깊어서 그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바다, 넓고 막막해서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모르는 게 바다다. 거듭 이어지는 사합원은 그렇게 담 밖의 사람에게는 함부로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운 바다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높은 담과 이어지는 문의 폐쇄적 속성에 덧붙여 사합원은 남북으로 이어지는 축선(軸線)의 구조가 명확하다. 이 선을 따라 가족 구성원들은 서열(序列)에 맞춰 중간과 동쪽, 서쪽 순서로 자신이 거주할 공간을 배정받았다. 그런 사합원의 축선 및 서열 구조는 다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우선 사합원의 특성은 중국인이 보기에도 뚜렷하다. 중국 저명 문화비평가 예팅팡(葉廷芳·75)은 “(폐쇄적 구조의 중국 건축은) 횡적 연결과 정보의 교류를 이루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사합원을 비롯한 중국 전통 건축이 높은 담과 중첩의 문, 건물의 내향적 구조로 인해 폐쇄적 속성과 배타적(排他的) 지향을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에 있어서는 전문가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폐쇄적 속성은 은밀(隱密)함의 추구로 나타날 수 있다. 배타적 속성은 ‘나’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은밀함은 더 나아가 내 실력을 감추고 남의 동태를 조용히 지켜보는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워라)’ 식의 깊은 사고력으로, 나 중심의 세계관은 중국의 전통적 중화주의(中華主義)로 이어질 수 있다.



 건축구조에서 드러나는 중국인의 문화적 심리를 비판한 문화평론가 예팅팡의 지적은 후자(後者)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높은 담과 중첩의 문을 사이에 두고 낯선 이를 계속 경계하고 조심하는 심리적 구조는 생존과 번영을 위한 깊은 사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점이 있다.



 3000년 역사의 사합원과 앞 회에서 소개한 공격과 방어를 전제로 지어졌던 중국 전통 주택들을 통해 우리는 현대 중국인의 사색을 지켜볼 수 있다. 중국이 미국과 세계의 패권을 다툰다는 이른바 ‘G2의 시대’에서 우리는 중국 전통 건축에서 드러나는 깊은 사고와 자기중심이 유독 강한 중국인의 세계관을 모두 목격하고 있다.



 30여 년의 개혁과 개방 역사에서 세계의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이다. 그들은 긴 안목과 국력의 지혜로운 집중으로 어느덧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좁은 테두리의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 두 가지 속성에서 중국인이 더 키워나갈 사고는 무엇일까. 우리가 조용하면서도 면밀하게 지켜봐야 할 주제다.



유광종 선임기자



서한 시대 유물서 ‘사합원 미니어처’ 나와



◆사합원(四合院) 이모저모=사방의 건물이 하나의 뜰을 향해 맞물려 지어진 가장 오랜 형태의 중국 전통 주택이다. 최고의 것은 춘추시대 이전으로 소급하지만, 그 유구(遺構)만이 남아 있다. 더욱 확실한 모습의 사합원 형태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세워졌던 서한(西漢) 시기의 도기나 자기 등에서 나타난다. 이 시기 왕릉 등에서 출토된 주택 모습의 도기와 자기 등이 사합원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어를 위한 담이 모두 둘러쳐진 모습이다. 수도 베이징의 자금성 주변에는 청나라 때 지은 사합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베이징 외에도 지방 대도시 등에는 과거 왕조 시절 행정관이나 군이 주둔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사합원이 지어져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 베이징에서는 사합원 철거 문제를 둘러싼 개발·보존 논쟁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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