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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그림자 지워라” … 몸살 앓는 ‘아랍의 봄’

중앙일보 2011.11.29 01:40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집트의 군인이 28일(현지시간) 총선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 앞에 길게 줄지어선 카이로 시민들을 호위하고 있다. 이집트 국민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민주화 혁명을 통해 잇따른 정권 교체를 일궈낸 ‘아랍의 봄’이 제2막을 향해 가고 있다. 서막이 독재자 축출이었다면, 2막은 선거에 따른 권력의 제도화와 법치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빈부 격차, 뿌리 깊은 부족 및 종파 간 갈등으로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선거판이 폭력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

독재자 축출 ‘서막’ 끝나고 제2막 민주화 진통



 뉴욕 타임스(NYT)는 28일자 1면에서 현 국면에 대해 “새로운 혁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제 시작의 끝(end of the beginning)이라고 하는 게 적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혁명 이후 새로운 전투가 시작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다. 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아랍의 봄이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혁명이었다면, 지금은 독재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혁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자유와 민주주의 성취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도자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식자 계층은 빈곤층을 두려워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집트에서는 28일(현지시간)부터 역사적인 의회 선거가 시작됐지만, 반군부 시위와 유혈사태에 묻혀버렸다. BBC방송은 이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10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20일부터 이집트 군부가 시위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사망자가 40명을 넘어섰다. 시민들은 무바라크 정권에서 ‘갑’이었던 군부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멘은 지난 23일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3년 동안 지켰던 권좌에서 물러나겠다고 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권력을 이양받은 압둘 라부 만수리 하디 부통령은 27일 야당 지도자 무함마드 바신드와를 새로운 과도정부의 총리로 지명했다. 살레 대통령은 이날 예멘으로 돌아와 반정부 시위로 투옥된 수감자에 대해 사면령을 내렸다고 국영TV가 보도했다. 하지만 국민은 살레 대통령이 권력이양을 대가로 면책권을 받은 것에 반발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사태가 종파 분쟁 등 내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정부가 8개월째 계속되는 민주화 시위에 탱크와 함정까지 동원해 강경진압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은 2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담을 열고 시리아에 경제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19개국이 승인한 제재안은 ▶시리아 정부 자산 동결 ▶시리아 중앙은행과 거래 금지 ▶필수품을 제외한 무역 단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시리아에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가장 먼저 독재자를 축출하고 제헌 의회를 구성한 튀니지는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근 튀니지에서도 빈곤층 거주지를 중심으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최루탄이 등장하고, 한때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워싱턴 포스트(WP)는 “튀니지는 이웃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괜찮았지만, 민주화 시위로 여행객과 투자자들이 줄어들면서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모로코에서는 지난 2월 민주화 시위가 시작됐고, 7월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개헌이 이뤄졌다.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지난 25일 총선에서는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PJD)이 승리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대는 “개헌은 국왕의 최고 귄위를 강화할 뿐”이라며 투표 거부 시위를 벌였다.



 NYT는 아랍의 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해 “민중 봉기만큼이나 중요한 사건들”이라고 평가했다. 아랍의 봄으로 정치와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새 정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혼란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로 인한 불만과 전환기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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