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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 탈출구 … 원시인도 스토리 통해 공포 잊었다”

중앙일보 2011.11.29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격동의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자 두 명이 27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만나 문학의 길을 얘기했다. 페루의 바르가스 요사(왼쪽·2010년 수상자)와 독일의 헤르타 뮐러(2009년)다.


‘Dos Nobel, Una Conversacion-’. ‘두 개의 소설과 하나의 대화’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바르가스 요사 - 헤르타 뮐러, 문학을 말하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의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75)와 2009년 노벨상 수상자인 독일의 루마니아계 여성 작가 헤르타 뮐러(58)가 한자리에 모였다. 27일(현지시간) 오후,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에서 열리고 있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문학 얘기를 함께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세계 문학계의 거봉인 그들이 소설가가 된 계기, 문학의 의의 등에 대해 가슴을 열어 보였다.



 사실 두 사람은 성향이나 소설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르다. 노벨상을 받은 게 유일한 공통점으로 느껴질 정도다. 요사가 남미 특유의 수다스러운 글쓰기로 독재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 데 반해 뮐러는 과거 루마니아 전체주의 정권에서 고통 받은 기억을 시적인 문체 안에 꾹꾹 눌러 쓰는 스타일이다.



 또 요사가 1990년 페루 대선에 후보로 출마할 정도로 외향적인 데 반해 뮐러는 언론 인터뷰도 꺼릴 만큼 폐쇄적이다. 때문에 그들의 대화에서 미묘한 입장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단한 시대를 버텨내는 문학의 소임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과달라하라 도서전은 중남미 최대 규모 책축제다. 올해 주빈국으로 독일로 선정하면서 뮐러도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대담 사회는 현지 언론인인 후안 크루즈가 맡았다.



 ▶사회자=노벨상을 받은 후 인터뷰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요사=비슷한 인터뷰를 여러 달 하다 보면 자유가 그리워진다.



 ▶뭘러=맞다. 이런 소동(boom)이 있을 줄 몰랐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나는 이런 노출을 싫어한다.



 ▶사회자=그래도 독자와 만나는 이런 자리의 의미가 있을 법한데.



 ▶뮐러=나는 작가이지만 독자가 될 때도 있다. 독자 입장이 되면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작가인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요사=이런 행사에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게 중요하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의사소통의 도구다. 비평적 심성을 길러준다. 민주사회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 많은 경우 문학은 오락이거나, 여러 대학 커리큘럼에서 사라지면서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더욱 오늘 같은 자리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 같다.



 ▶사회자=문학을 시작한 계기는.



 ▶뮐러=열다섯 살 무렵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생에 대해, 당시의 루마니아 독재정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는 비밀 경찰 일에 관여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내겐 경고가 됐다. 너 역시 아버지처럼 독재 정권에 가담하려는 거냐,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콜롬비아 작가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안에 그려진 부패한 세상이 실제 현실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소설은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버텨내는 출구였다.



 ▶요사=다섯 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내게 독서는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었고, 일종의 시·공간 여행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때문에 독서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아마도 인류에게 문학이 처음부터 그런 도피처가 아니었나 싶다. 원시인들의 동굴 생활 시절, 다른 삶에 빠지게 하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위험이나 공포를 벗어나는 방편이었을 게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는 무기였다. 인류가 진보하는 데 가장 위대한 도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회자=고통의 체험과 문학은 어떤 관계인가.



 ▶뮐러=문학은 불행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 반드시 불행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문학은 그러면서도 위로를 준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말이고, 우리 삶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독자들은 불행을 읽는 과정에서 불행을 즐기게 된다.



 ▶요사=문학에서는 못생긴 사람, 끔찍한 일마저 아름답게 그려진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읽으면 나는 항상 눈물을 흘린다. 보바리 부인에게 삶은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보바리의 고통을 읽으며 나는 쾌감을 느낀다. 이런 게 바로 문학의 작동방식이다.



 ▶뮐러=나는 상황이 끔찍하고 출구가 없을 때, 또 친구들이 감옥에 가 있을 때 과연 소설 쓰기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하곤 했다.



 ▶요사=아프리카 출신의 작가가 하나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한 그 작가의 나라에서 문학은 하나의 참여 방법이다. 뮐러의 얘기처럼 어떤 나라에서 문학은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것은 인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신적 지평을 넓히고 사람들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



 ▶뮐러=비밀경찰로부터 여러 차례 심문을 받았다. 당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고통스러운 심문의 기억은 세월이 변해도 사라지지 않고 내 것으로 남는다. 반복해서 나를 다시 찾아온다. 그러면 나는 고통스런 당시로 되돌아간다. 문학을 통한 기억은 우리에게 뭔가를 준다고 생각한다. 문학이 없었더라면 내게는 더 나쁜 일이 생겼을 것이다.



 ▶요사=뮐러가 경험한 전체주의 국가와 남미의 독재 국가는 조금 다르다. 독재 정권은 살인·고문·납치 등을 자행했지만 최소한의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있었다. 반면 전체주의 국가는 모든 행동의 모든 측면을 통제한다. 뮐러는 전체주의에 대한 위대한 목격자라고 생각한다. 독재국가든 전체국가든 신문이나 TV 등 미디어가 거짓 정보를 전할 때 문학은 진실에 접근해 현실을 증언하곤 했다.



 ▶사회자=세계 곳곳에서 노동 인구의 이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요사=서유럽 국가들은 동유럽 인구의 유입을 경제혼란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인구 이동이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외부인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문화·종족·지역간 차이가 실은 인류의 자산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뮐러=독일인들은 과거 나치 가담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세웠듯 현대의 이주 현상을 상징하는 어떤 이미지, 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달라하라(멕시코)=신준봉 기자



남미 특유의 수다스러운 글쓰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년 페루의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부패한 남미 정권에 대한 저항을 세련된 문체로 그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진작부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다 지난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95년 스페인 최고 권위의 세르반테스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중남미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새엄마 찬양』 『염소의 축제』 『세상종말전쟁』 등 많은 작품이 국내 번역돼 있다.



전체주의 고통을 시적인 문체로



◆헤르타 뮐러(Herta Muller)
=1953년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표현의 자유를 찾아 87년 독일로 이주했다. “시적인 집중력과 솔직한 산문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한다”는 평가와 함께 200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런 이력 때문에 지난해 한국을 찾아 “북한이 끔찍한 나라”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숨그네』 『저지대』 등의 작품이 국내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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