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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빌어먹을’ 전통 가족관

중앙일보 2011.11.29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최근 보건복지부에선 미국 입양 관련 통계를 놓고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국에서 발표된 2011 회계연도 국제입양보고서를 토대로 일부 언론이 대미(對美) 입양 수출국 1위가 한국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으로 최종 입양된’ 아동은 한국이 734명으로 1위였다. ‘미국을 거쳐 제3국에 최종 입양된’ 아동은 중국이 25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왜 굳이 미국을 거쳐 제3국으로?’라는 의문을 갖게 한 이 기사는 ‘Adoption Finalized ~’라는 항목의 오역에서 비롯됐다. 이는 입양을 위한 법적 절차를 어디에서 끝냈는가를 표기한 것으로 ‘~ abroad’는 아동의 나라에서, ‘~ in the U.S’는 미국에서 절차를 밟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이 전자를 다른 나라로 최종 입양된 아동으로, 후자를 미국에 남은 입양아로 번역하면서 착오가 생겼다. 제대로 번역하면 한국은 4위였다.



 복지부 측은 이 보도를 해명했다. 그러나 설명 끄트머리에 “그렇다고 우리가 꼭 잘했다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수가 필리핀·인도·우간다 같은 저개발국보다 월등히 많고, 경제규모 세계 13위 선진국으로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선 입양기관의 생각은 달랐다. 장상천 대한사회복지회장은 “연간 요보호 아동이 9000~1만 명씩 나오는데 시설수용보다는 외국에서라도 가족을 찾아주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국내 양부모는 찾기 어렵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국내 입양은 연간 1200~1400명으로 정체돼 있다. 입양을 하려는 사람들도 대부분 친부모 학력과 혈액형을 따지고, 생김새도 자신과 비슷한 한 돌 전의 아기를 찾기 때문에 연결하기 어렵단다. 국내 입양은 여전히 아이 없는 가정의 결여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의미의 입양은 아니다. 국내 입양기관인 성가정입양원 윤레지나 원장은 “뿌리 깊은 전통 가족관 때문에 우리나라 불임가정들도 꼭 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입양보다는 불임치료에 매달린다”고 말한다.



 바로 내 핏줄을 끔찍이 따지는 ‘전통적 가족관’이 우리 아이들의 해외 입양을 부추기고, 국내 입양을 어렵게 한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건 미혼모라도 친엄마가 키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데 한국여성복지연합회의 최근 조사결과 미혼모 10명 중 7명이 출산 후 입양을 선택했다. 미혼모의 모성애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부 지원이 있다면 기르겠느냐는 질문에 80%가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게 단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혼외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자기 가족과의 관계 단절, 이런 것들이 아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 거라는 정서적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통 가족관은 우리 사회 ‘초저출산’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비혼(非婚)·만혼(晩婚)의 선진국 생활양식이 정착되면서 저출산 늪에 빠졌다. 그런데 동거와 혼외출산에 편견이 없는 서구 선진국 출산율은 줄지 않았다. 서구와 북구 국가들은 혼외출산 비율이 40~60%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전통적 가치관에 따른 사회적 편견 때문에 혼외출산 대신 낙태를 택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세종 이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빌어먹을’ 전통 가족관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출생을 막고, 선진국 대한민국이 저개발국을 압도하며 아이 수출국 상위권을 지키도록 한다는 거다. 세상이 변하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결혼과 가족 개념은 달라졌다. KDI 보고서는 전통 가치관을 고쳐야 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 이제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 한글 반포를 결사적으로 말렸던 수구파 최만리의 길을 갈 것인지, 새 세상을 여는 세종의 길을 갈 것인지. 한글 없는 한국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세태와 거꾸로 가는 가치관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불행한 한국도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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