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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구름당(黨)이 온다

중앙일보 2011.11.29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국회에 최루탄이 터졌다. 독재에서 민주로 넘어올 때 수없이 작렬했던 그 최루탄은 이제 방향을 가리지 않고 폭발한다. 운동권 습성이 몸에 밴 그 의원은 민주투사를 자임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야만적 방식으론 민주정치를 구제할 수 없다는 것쯤은 1980년대 저항전선에서 이미 터득했어야 했다. 최루탄 투척을 불러온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도 야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으니, 21세기 한국정치는 80년대로 후퇴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 시민들은 국회의장석을 휩쓴 최루가스에서 정당정치의 한국적 몰락을 목격했다.



 대선을 앞둔 2006년 말, 열린우리당의 해체 여부가 한창 논의될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꽉 찬 양당 구도에 제3당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정당이 새 영토로 안내해줄 것 같았다. 겨우 5년 후, 여의도정치는 국가 중대사안을 처리할 능력을 상실했고, 시민들의 엇갈린 주장을 걸러낼 여과기능을 잃었다. 정부는 당당하고 늠름하게 물대포로 응사했고, 시위대는 경찰서장을 폭행했다. 한·미FTA보다 한국정치의 엔진이 고장 나 최신형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임을 아프게 깨닫는 장면들이었다. 김선동 의원이 던진 그 최루탄은 자신의 눈물을 뽑아내게도 했고 정치권 전체를 폐차장으로 처박는 공멸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새로운 세력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뇌경색에 걸린 한국정치에 응급처치를 해야 할 절박함, 일격을 가하고 싶은 시민적 각성이 세간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중이다. 혁신과 통합, 중도신당, 진보연합이 창당을 선언했고, 세(勢) 결집에 나서라고 강력한 주문을 받는 명사들이 대기 중이다. 바야흐로 ‘신당의 시대’가 개막됐다. 신당 중에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래도 ‘안철수 신당’이다. 소문만 무성한 안철수 신당이 여론조사 1위로 치솟는데도 정작 본인은 딴전만 부리는 풍경은 그래서 조금 난감하기까지 하다. 아마, 홀연히 나올 것이다. 적어도 성탄절 즈음이면 경쾌한 캐럴과 함께 나타나 창당을 선언할 것이다. 총선용 신당이다. 시민과 정치인 모두 긴장할 안철수 신당의 미래 행보를 조금은 추측해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안철수 신당 ‘사용설명서’다.



 지금껏 그랬듯이 그의 신당에 자신은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 모른다. 대신 박경철, 윤여준, 법륜 스님 같은 대리인이 위탁관리하는 정당이 되기 쉽다. 당원은 낙오된 청춘들의 실의(失意)를 읽는 데에 뛰어난 무명의 인물들로 채워지고, 사이버대리점을 통한 정보네트워크로 작동하는 인터넷 정당의 모습,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SNS로 지지자들과 소통하고, 번개팅으로 의견수렴과 대변 기능을 수행하는 정당이라면, 기존 정치에 일대 충격을 가할 수 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안철수는 이런 것을 기획하고 있을까. 총선용 안철수 신당에 안철수는 ‘없다’.



 안철수의 마력은 보일락 말락 한 정치의지, 지극히 비정치적인 발언과 예측불허의 행동에서 나온다. 평범한 언어도 그의 입을 거치면 비범한 함의를 획득한다. 아니, 지지자들이 부여한다. 주류에서 밀려난 젊은 층들은 그것이 생뚱맞은 발상이라도 기득권층 응징과 상식 파괴에 위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는 지지자들의 환호와 분노를 저장한 집적회로에 간단한 멘트를 날리는 것만으로도 정당을 유지할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일종의 구름당(黨)이다. 구름이 날씨와 기온에 따라 변화무쌍하듯, 청장년층이 송신하는 애절한 신호에 시시각각 응답할 수 있다. 공적 쟁점을 비켜가고 공공장소에 나서기를 꺼리는 이 내성적 인물이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만약 게릴라식 구름당이 총선에서 막강한 교섭단체로 등극하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대권을 넘보라는 성화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때 딱 한마디면 족하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라고. 대선용 신당엔 안철수가 ‘있다’. 온라인에 떠 있다. 이때 가장 당혹할 사람은 기존 정당의 대선주자들이다. 이들은 구름 위에 떠 있는 안철수와 대적하느라고 오프라인을 실없이 헤매고 다닐 것이다. 요즘 박근혜 전 대표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안철수의 기댓값은 오염된 정치판에 ‘V3백신 살포’를 최소치로, ‘대마(大馬)견제’를 최대치로 할 터인데, 과연 ‘대권도전’까지 밀려갈까. ‘구름당 사용설명서’가 없는 한 누구도 모를 일이다.



 아날로그 환경과 20세기 정치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정당이 가능할까를 반문하겠지만, 디지털시대 정치는 이렇게 진화한다. 기존 정치판을 교란해서 새로운 정치 열기를 증폭하는 것이 사이버정치의 최고 묘미라면, 노쇠한 거대정당이 양보한 중앙무대를 안철수 구름당이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구름당 당수는 정작 구름 위를 산책하고 있다. 단식농성, 난투극, 삭발, 시위, 공중부양, 해머질에 질렸던 유권자들은 구름당(黨)이 강림해서 기성 정치판을 뒤흔들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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