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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외계인

중앙선데이 2011.11.27 00:01 246호 16면 지면보기
오늘은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이죠. 이곳은 대한민국 서울이고요. 제 이름은 김아저씨입니다. 나이는 49세죠. 아, 외계인 말씀입니까? 본 적 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씀 드린다면, 저는 외계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이름 같습니다만 제 아내는 외계인입니다. 웃으시는군요. 하긴 저도 믿기 힘들었으니까. 아내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나이가 들수록 더 젊어집니다. 아내의 살결은 탄력이 넘치고 윤기가 흐르고 주름도 하나 없습니다. 목이나 손은 나이를 못 속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내는 손이나 목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더 탱탱합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내는 얼굴 모양도 수시로 변합니다. 누구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화장을 고치면 얼굴이 좀 달라지겠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니까요. 분명 결혼할 때만 해도 쌍꺼풀이 없었는데, 아니 속쌍꺼풀이 있었는데 이제는 서양인보다 더욱 깊고 뚜렷한 쌍꺼풀을 가진 눈이 되었어요. 코도 높아지고, 얼굴도 작아지고, 얇은 입술이 도톰해지는가 하면, 납작했던 가슴이 풍선처럼 봉긋 솟아올랐어요. 인간이 그럴 수는 없죠.선생님, 아내는 외계어를 사용합니다. 가령 제가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한 날 화난 아내가 마구 쏟아내던 그 이상한 말들, 그건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어요. 또 저는 보고 들었어요. 아내가 자신의 행성과 교신하는 것을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만 그건 트릭일 뿐이죠.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종족과 교신하는 게 분명했어요. 30분은 보통이고 한 시간도 넘게 전화로 이야기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어요?

아내는 얼마 먹지도 않아요. 그러고도 힘과 활기가 넘칩니다. 아무리 다이어트라지만 어떻게 하루에 고작 한 끼 정도만, 그것도 야채나 과일이 전부인 그런 식사를 하고도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외계인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걸까요?선생님, 사실 외계인은 도처에 있어요. 특히 백화점에 많습니다. 아내는 그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접선해요. 쇼핑을 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세상에 그걸 믿을 바보가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자주 백화점에 가면서도 정작 사오는 옷은 거의 없거든요.

평소에도 아내는 활기가 넘치지만 가구를 옮길 때면 정말 굉장해요. 곧 제대하는 첫째의 방 정리를 위해 가구를 옮길 때 저는 봤어요. 남자인 저도 쩔쩔 맬 정도로 무거운 책장을 번쩍 들어올리는 것을. 그 순간 연약한 아내의 몸을 뚫고 튀어나오는 무시무시한 몸뚱이를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착각이 아닙니다. 책장과 책상을 단번에 옮겨놓고 아이들 방을 흐뭇하게 둘러보던 그 거대한 미확인 생물체가 외계인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요? 외계인은 원래 심술이 많은 걸까요? 제가 모처럼 책상에 앉아 책이라도 펼치면 아내는 저를 찾습니다. 자기가 운동하는 걸 도와 달라느니, 팔과 다리를 주물러 달라느니 하면서 귀찮게 합니다. 아내의 요구를 후다닥 들어준 다음 책상으로 돌아와 아까 읽다 만 구절을 읽고 있으면 심술궂은 외계인은 다시 저를 부릅니다. 갑자기 호박죽이 먹고 싶다며 말이죠.

멀더 선생님, 아내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저 같은 인간과 살고 있는 걸까요?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외계인이라니. 아내의 신고를 받으셨다고요?



김상득씨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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