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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고달픈 삶 고발,수차례 투옥, 절필...참여문학 상징으로

중앙선데이 2011.11.26 23:54 246호 16면 지면보기
1991년 무렵의 소설가 김정한. [중앙포토]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문단에도 진보적 민족문학 운동을 표방한 새로운 문학단체가 태어났다. 그해 9월 17일 창립된 ‘민족문학작가회의’다. ‘새로운 문학단체’라고는 했지만 이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문인들이 70년대 중반 이후 반체제 문학 운동을 이끌어 왔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회
들이었고, 목표와 조직 또한 ‘자실’을 확대 개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특별하게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단체의 초대 회장으로 원로작가 김정한이 추대됐다는 점이었다(부회장은 고은백낙청). 작가적 성향으로 봐서 김정한이 이 단체의 성격에 부합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는 그해 팔순을 맞는 고령이었고, 더구나 오랜 세월 부산에만 거주해 잦은 서울 왕래가 간단한 일이 아닐 터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5공 말기까지 김정한의 ‘존재감’을 말해주는 한 사례였다.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 1980년대 <36> 민족문학의 기틀 다진 소설가, 김정한


소설가로서 김정한의 이채로운 이력이 한국 문단에서 그의 위치를 뒷받침한다. 일제 치하인 30년대 중반 등단해 4~5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펴다가 홀연 붓을 꺾은 그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66년 ‘모래톱 이야기’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문단 복귀를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했다. 일제 치하에서 절필한 것은 ‘침묵의 저항’이라는 의미가 있었고, 60년대 중반 복귀한 것은 ‘사회의 혼란상과 현실의 모순을 고발’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심지어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훗날 ‘90년대에 다시 읽는 요산(樂山)’이라는 글에서 그의 재등장을 ‘단절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전통의 복원이요, 6·25 이후 지하로 스민 해방 직후 좌파의 부활’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요산’은 김정한의 아호다.1908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난 김정한은 동래고보를 졸업한 뒤 29년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때 일제의 민족 차별에 울분을 느껴 ‘조선인 교육 연맹’을 조직하려다 사전에 발각돼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다.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은 이때부터 싹이 텄던 듯하다. 30년 일본으로 건너간 김정한은 와세다대학 부설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해 동서양의 문학 작품을 탐독한다. 그 무렵 조선 유학생들이 발행한 ‘학지광’ 편집에도 참여하면서 ‘조선시단’ 등 국내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간간이 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구제사업’이라는 소설은 발표됐다가 삭제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32년 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한 것이 그 이후 김정한의 삶을 뒤바뀌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동래 출신 유학생들과 함께 ‘양산 농민 봉기사건’의 피해를 조사하고 ‘농사 협동조합’의 재건을 계획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일본 유학을 포기한 김정한은 이때부터 농촌과 농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경찰에서 풀려나 남해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한 김정한은 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사하촌’이 당선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했다.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던 소작 농민들이 힘을 합쳐 쟁의에 돌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 문체로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첫 반응을 보인 것은 뜻밖에도 부
산 범어사의 스님들이었다. 농민들이 사찰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큰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쳤음에도 사찰 측이 소작료를 강요하고 늦춰달라는 요청도 묵살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스님들이 집단 반발하자 도 장학관은 교사인 김정한에게 ‘농민을 선동했다’고 경고조치를 내렸다. 그런 수난에도 그는 40년 절필하기까지 주로 도탄에 빠진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그린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김정한은 교사직을 사퇴하고 조선·동아일보의 지국을 운영하다가 신문이 폐간되자 필에 들어갔다.

광복 후 그는 부산중 교사를 거쳐 부산대 교수로 부임하지만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해직되면서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의 투옥 경험은 일제시대를 포함해 모두 일곱 차례에 이른다. 그의 절필 기간이 길었던 것은 이런 현실적인 수난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 65년 부산대에 복직해 안정을 찾은 김정한은 이듬해부터 작품 활동을 재개한다. 낙동강 하류 어느 외진 모래톱 조마이 섬 사람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그린 ‘모래톱 이야기’를 비롯해 소외계층의 뼈저린 생존투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라도’ ‘산거족’ ‘인간단지’ 등 그의 소설들은 발표될 때마다 주목을 끌었다.김정한이 소설 집필을 재개한 60년대 중반은 ‘창작과 비평’ 그룹의 출범과 함께 민족문학 혹은 참여문학의 뿌리가 다져지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이론이 서서히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했음에도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작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이 60에 이른 김정한의 재등장은 작품으로써 민족문학의 이론을 감쌌다는 점에서도 효용가치가 충분했다.5년 수상집 ‘사람답게 살아가라’를 펴내고 뒤이어
창작과비평사의 ‘12인 신작 소설집’에 마지막 작품인 ‘슬픈 해후’를 발표한 김정한은 96년 11월 28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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