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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밭 흙의 기운 머금은 ''秀魚'맛이 달고 어떤 약재와도 조화 이뤄

중앙선데이 2011.11.26 23:46 246호 16면 지면보기
어만두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삶아 익혀 곱게 다진 뒤 다진 마늘·파 등을 합쳐 소를 만든다. 숭어를 얇고 넓게 저며서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린 뒤 녹말을 앞뒤로 묻힌다. 소를 가운데 넣고 접어 싼 뒤 찜통에서 쪄낸다. 진간장과 식초, 생강즙으로 만든 강초장에 찍어 먹는다.
숭어는 서해안 어종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해역 어디서든 서식하는, 뻘을 매우 좋아하는 물고기다. 점차 깊은 바다로 들어가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얕은 바다로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는데, 요즘이 제철이다. 봄에는 알밴 숭어를 잡을 수 있다. 조선 왕조에서는 숭어를 물고기의 왕으로 삼았다.어떤 약재와도 조화가 되고 어떤 체질의 사람이 먹어도 탈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빼어날 수(秀)를 붙여 ‘秀魚’라 했다. 강화와 한강 하류에 국가 소유의 어량(魚梁·물이 한 군데로만 흐르도록 물살을 막고 그곳에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장치)이 있었지만 여기서 잡은 숭어로는 충당이 되지 않아 필요한 수량을 진공(進貢)이란 형태로 백성들에게 부과했다.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1> 숭어

조선 땅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에 의하면 숭어는 충청도의 남포·당진·덕산·비인과 전라도의 해남·무안에서, 건(乾)숭어는 충청도의 임천·은진·천안·직산·서천·태안·면천·결성과 전라도의 영암·영광·함평·광양·흥양·흥덕·부안·옥구·용안·함열·나주·무장·장흥·진도·강진·해남·순천·낙안·보성·고부·임피·만경에서 진공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그러니까 생물인 숭어는 한양과 가까운 충청도에서 주로 진공하고, 한양과 먼 전라도에서는 건숭어가 진공품이 되었다. 이는 냉장과 냉동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충남 내포(內浦) 지역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뱃길로 한양과 빠르게 통했기 때문이다. 『여지도서』보다 276년 앞서 1481년(성종 12) 나온 『동국여지승람』에서도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기술돼 있다. 조선 왕조의 숭어 사랑은 거의 500년 동안 이어진 셈이다.

조선 숭어는 중국 명나라 황제도 좋아했다. 1429년(세종 11) 4월 7일 명나라 조정에서 건어물 등을 구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이들은 7월 16일까지 한양에 머물렀는데, 이들의 귀국길에 다른 건어물도 포함해 건숭어 440마리를 보냈다. 왜 명나라와 조선 왕실에서는 숭어를 고급 어종으로 대우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숭어가 가진 성질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명나라 학자 이시진은 1590년 쓴 『본초강목』에서 ‘맛이 좋아 소금에 절여 건어물로 만든다. 고기의 성질이 진흙을 먹고 자라 평(平)하고 맛이 감(甘)하기 때문에 어떤 약과 함께 먹어도 화합한다’고 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허준의 『동의보감』(1613)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위를 열고 오장에 유익하여 대변과 소변이 잘 통한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명나라든 조선이든 약선(藥膳)으로서 숭어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하늘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 미생물을 잔뜩 머금은 토기(土氣)로 충만한 서해안 뻘밭에서 자란 숭어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공된 숭어는 다양한 찬품(饌品·메뉴)으로 만들어졌다. 각종 탕(湯) · 증(蒸·찜) · 구이(灸伊) · 적(炙) ·전(煎) · 숙편(熟片) · 만두(饅頭) · 채(菜) · 회(膾)의 모양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 이 중 만두와 구이로 단한 예를 들어 보자.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華城·수원)으로 이장했다. 1795년(정조 19) 윤 2월은 마침 이장해 모신 아버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년이었으므로 수원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 묘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그곳에서 환갑연을 차려 올릴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때의 행사 기록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議軌)』다. 이 책에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다져 소금 · 후춧가루 · 참기름으로 양념해 소로 만들고 이를 얇고 넓게 저민 숭어살 만두피로 싸서 녹두녹말가루를 골고루 묻힌 뒤 찜통에서 쪄낸 어만두(魚饅頭)와 숭
어구이가 기술돼 있다.

건숭어로 한 구이는 처음부터 소금을 뿌려 말렸으므로 다른 양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통째로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길게 꽂이에 꿰어 화로에 돌려세워 익히고 꽂이를 빼내 밥상에 올리는 것이다. 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통째로 길게 꿰어 화로에 돌려놓아 한 번만 뒤집어 주면 구워지는데, 건숭어든 생물이든 화로에 익히면 훈연이 되기 때문에 그 맛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생물은 뜨거울 때 양념 간장을 발라 먹거나 소금에 찍어 먹었다. 그 야들야들한 맛은 겨울철 진미 중의 진미였을 것이다. ‘겨울에 숭어가 앉았다 나간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다디달다’란 말은 바로 이 맛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뻘밭 1㎝ 두께가 형성되려면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개발과 산업화 추세 속에 서해안 뻘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는 조선시대의 이 숭어 맛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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