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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고

중앙선데이 2011.11.26 23:36 246호 29면 지면보기
‘한국은 기업 천국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자가 들으면 흥분할 말이다. 민간 정유사의 휘발유 값을 시시콜콜 따지는 정부, 세금을 줄인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 갈팡질팡·오락가락 정책을 펴는 정부. 여기에 반(反) 기업 정서와 강성 노조까지. 그러니 중국보다 못한 기업 환경이란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 환경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일본 기업인이다. 일본에 없는 특별한 게 있기 때문이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자주 거론되는 ‘6중고(六重苦)’. 이른바 일본 기업이 겪는 여섯 가지 어려움 속에 한국의 특별함이 엿보인다. 6중고는 ▶엔고(엔화 강세) ▶전력난과 비싼 전기료 ▶높은 임금과 노동시장 유연성 부족 ▶온실가스 규제 ▶높은 법인세율 ▶자유무역협정(FTA) 지연이다. 일본인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로 그렇다’로 시작하더니 이젠 대놓고 ‘한국에 대비해 그렇다’고 속을 드러낸다.

어느 것 하나 풀어내기가 녹록하지 않은 게 6중고다. 사상 최고를 넘나드는 엔화가치. 일본 상품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얄밉게도 경쟁자인 한국의 원화가치는 엔화가치와 반대로 움직인다. 엔화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 정부가 엔고를 막겠다며 수십조 엔을 투입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전력난은 대지진으로 부서진 원전을 복구하거나 몇 년간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해결될 문제다. 그나마 생산원가가 저렴한 원전 건설은 원전 폭발의 후유증, 반핵 여론의 벽에 부닥친다. 한국의 3배나 되는 전기료를 낮추는 건 그래서 지난한 과제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시장 개혁은 종신고용의 전통에 발목이 잡히고, 온실가스 규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금인하라면 어찌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 또한 어렵다. 법인실효세율은 한국이 24.2%, 일본이 40.69%다. 단숨에 좁히기엔 격차가 크다. 게다가 빚으로 꾸리는 재정을 정상화하자면 세금을 깎기는커녕 더 올려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우는 소리 하는 기업 앞에서 일본 정부나 정치권이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래서 들고나온 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집단적 FTA다. 미국·유럽 양대 시장과 FTA를 맺은 한국과의 격차를 단숨에 좁히려는 카드다. 일본 내 반(反)TPP 기류는 아직 강하다. 하지만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몇몇 일본 언론은 TPP를 ‘6중고 극복의 시금석’이라 부른다. TPP 체결에 성공하면 얽히고 설킨 나머지 5중고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란 의미다.

6중고의 일본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한국이 만약 6중고에 빠졌다면 과연 살아남을 한국 기업은 얼마나 될까. 전기 값이 3배로 오르고, 40%대 법인세가 부과되며, 원화가치가 달러당 800원대에 진입하는 상황 말이다. 6중고를 버텨온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경이롭지 않은가. 한국은, 한국 기업은 그걸 따라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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