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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당 물갈이가 우선이다

중앙선데이 2011.11.26 23:31 246호 30면 지면보기
바꿔도 확 바꾸라는 게 국회를 향한 유권자의 마음이다. 18대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3% 정도다. 공공기관 중 꼴찌 성적인데 세계적으로도 드문 수치다. 놀림감을 넘어 조롱의 대상일 때가 많다. 의원 개인별로 봐도 성적이 신통치 않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지역구 현역 의원의 교체를 원한다. 총선 때마다 절반 가까운 의원을 물갈이한 게 대한민국 국회다. 18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인적 쇄신 욕구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최상연 칼럼

바뀐 의원들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 게 큰 원인일 게다. 선거철만 되면 각 당이 새 피 수혈에 골몰하지만 교체 멤버의 DNA는 전임자의 DNA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예컨대 현재 의원 중 법조인은 50명, 교수는 30명을 웃돈다. 서울대 졸업자가 90명 가깝고, 1인당 평균 재산이 26억원이다.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갖췄다기보다 ‘구름 위의 잘난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말처럼 “잘난 사람 좀 줄이는 게 당 개혁의 출발”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좀 더 따져 볼 대목이 있다.

선거판엔 교체 지수란 게 있다. 현역 의원을 바꿔야 한다는 응답자를, 재출마를 바라는 응답자로 나눈 비율이다. 2000년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윤여준 총선기획단장이 만들어 이기택·김윤환 등 중진 의원 물갈이에 들이댔다. 1.75가 임계치라고 한다. 이 수치를 넘은 후보가 출마하면 대략 낙선한다는 것인데 18대 의원 교체지수는 2.07이다. 그런데 같은 개념을 공천자인 여·야당에 적용하면 결과가 끔찍하다. 80%를 넘는 국민이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불만이다.

게다가 ‘마땅치 않은 정당’이 공천한 ‘잘난 후보’를 되풀이 선택한 것은 우리 자신이었다. 혈연·학연·지연이란 연분 따라 투표했기 때문인데 내년 선거에서 갑자기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인물 됨됨이가 아니라 연분이 당락의 기준이면 굳이 못난 후보 골라 공천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대표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면 아예 추첨으로 대표기관을 꾸리자는 주장도 있다. 형사 재판엔 이미 그런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20세 이상 국민 중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이 유무죄 평결을 내린다. 영화 ‘의뢰인’ 재판이 28일 그런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다. 그렇다고 ‘나랏일’을 추첨에 의존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전기톱에 최루탄까지 등장하고 공중부양이 다반사여서 ‘막장 국회’란 비판은 일상화됐다. “국회를 점령해 달라”는 한심한 수준의 막말도 나왔다. 이런 막가파 정치를 바꾸려면 물론 저질 구성원을 바꿔야 한다. 바꾸되 공천 단계에서부터 직업별·계층별 대표성을 높인다면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 행태가 바뀌도록 환경을 함께 다듬어야 한다. 당 지도부가 본회의장의 ‘군사 작전’을 지휘하는 게 우리 국회 현실이다. 자격 미달 의원이 아니더라도 공천권을 쥔 지도부에 어느 누가 대들 수 있을까. 지도부의 지침보다 유권자를 의식해 뛰고 경쟁하는 정치판이 탄생해야 정치가 바뀐다.

정당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정확하겐 지역당 구조가 깨져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전국엔 ‘공천증=당선증’인 지역이 너무나 많다. 공중부양을 했거나 전기톱을 들이댄 게 당선에 큰 문제가 안 되는 무풍(無風) 지대다. 이곳에선 공천전이 본선이고 나머지 선거전은 요식 행위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유권자가 아니라 당 지도부가 의원 임명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역당 정치를 재생산하는 게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다.

거꾸로 말해 지역 독식의 의원 충원 방식을 바꾸면 지역당이 깨질 수 있다. 선거구를 키우면 현역 의원들은 지역에서 유권자를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유권자의 검증이 살아나고 당선은 까다로워진다. 호남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나오고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출되는 길도 열린다. 이론적으론 소선거구제에서 사표 처리된 국민의 뜻이 좀 더 적절하게 의석 수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나랏일이라면 내가 최고란 경쟁이 여기서 시작된다. 확 바꾸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의원 일탈과 막장 국회가 계속된 악순환의 고리도 여기서 끊어낼 수 있다.

한나라당이 29일 공천 개혁과 물갈이를 논의할 쇄신 연찬회를 예고했다. 통합 논의로 분주한 야권도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여·야당이 쇄신하고 통합할 때 명심했으면 하는 대목이 있다. 지역주의에 기댄 기득권을 털어내겠다는 다짐이다. 이게 바로 안철수 바람에 맞설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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