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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중앙선데이 2011.11.26 23:29 246호 27면 지면보기
어느 더운 여름 날, 길 가던 김삿갓(金笠)의 눈에 개를 잡아 안주로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젊은 선비들의 모습이 띄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슬며시 자리에 끼어 앉았다. 그러나 선비들의 눈에 행색이 초라한 김삿갓이 들어올 리 없었다. 술 한 잔 권하지 않고 시(詩)를 짓는 데만 열중하자 김삿갓은 부아가 치밀었다. “구상유취로군.” 한마디 던지고 나서는데 발끈한 선비들이 “뭐?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라 했는가” 하며 몰매를 안길 형세다. 김삿갓이 답한다. “오해입니다. 내가 말한 건 ‘개 초상에 선비가 모였다’는 뜻의 ‘구상유취(狗喪儒聚)’입니다”라고. 재치 있는 말 한마디로 위기를 멋지게 넘긴 것이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말은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는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禍自口出 病自口入)’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몸에 생기는 병은 입으로 먹은 음식 때문이고, 화를 입는 건 입으로 내뱉은 말 때문인 사례가 많다. ‘모든 중생은 화가 입을 좇아 생긴다(一切衆生禍從口生)’는 말도 있다. ‘칼에는 두 개의 날이 있지만, 사람의 입에는 백 개의 날이 있다’는 베트남 속담은 말 많이 하다 설화(舌禍)를 입는 경우를 일깨운다.

당(唐) 말기부터 5대10국 시대까지 다섯 왕조를 거치며 11명의 임금을 섬긴 처세의 달인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입과 혀를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숙이 간직하면(閉口深藏舌)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安身處處牢)’. 20년이나 재상으로 일한 비법이 말조심에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입 속에 들어있는 한,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입 밖에 나오게 되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는 유대인 속담은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처럼 말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준다.

세상이 말로 가득하다. 인터넷 발달로 모든 이들이 세상을 향해 말을 퍼뜨릴 수단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어느 때보다 더 커졌는데, 그 말에 따른 책임의식은 어느 때보다 더 희박하다는 점이다. 풍도의 가르침이 그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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