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좀 알아듣게 말합시다

중앙선데이 2011.11.26 23:17 246호 31면 지면보기
과학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심지어는 잠을 자는 그 순간에도 우리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는 것들이 과학의 산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편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과학에 대해 의외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선지 대학 진학 때 과학은 기피 대상의 하나가 됐다. 미국에서도 이공계 분야의 대학원 과정에는 이미 외국인 숫자가 자국민을 넘어섰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과학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무지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신세대들의 나태함을 이유로 꼽곤 한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자 스스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칼 세이건’이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그가 쓴 코스모스를 통해 천문학을 동경하곤 했다. 많은 사람이 고리타분하고 밥 벌어먹기 힘든 분야라고 기피하던 천문학을 칼 세이건은 어린 학생들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칼 세이건의 이런 노력이 많은 일반인을 과학과 친해지도록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그는 천문학계에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과학자가 너무 많은 시간을 방송매체에서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칼 세이건이 연구활동을 소홀히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처음으로 금성의 표면 온도를 계산해 냈고, 토성과 목성의 위성들에 액체 형태의 바다가 있음을 발견했으며, 지구온난화 현상을 예측하는 등 과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냈다.

그럼에도 미 국립과학원은 칼 세이건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걸 끝내 거부했다. 업적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회원 자격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왕성한 대중매체 활동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기에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과학자는 어려운 단어를 써서 전문적이게 들리고, 남이 알아듣기 어려워야 본인의 지식을 남이 인정해줄 거라는 현학적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제위기로 많은 연구비가 삭감되고, 대중의 오해로 인해 많은 연구가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되면서 과학자들도 비로소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최근 발행된 ‘네이처 신경과학’지는 사설을 통해 “이제는 대중과 대화할 때”임을 강조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이 연구의 진전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과학자는 앞다퉈 학생들에게 대중과의 소통방식을 훈련시켜야 하며, 과학자들의 대중매체 활동을 학계 연구활동과 동일하게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필자의 지도교수이자 멘토였던 위스콘신대의 폴 알퀴스트 교수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미 국립과학원의 회원으로 뽑힐 만큼 바이러스학의 대가다. 그럼에도 그는 필자가 연구 관련 발표를 할 때면 항상 쉬운 단어를 사용하도록 요구했다. 필자는 항상 전문용어를 어떻게 하면 일반용어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고, 약자(略字)는 언제든지 풀어 써야만 했다. 처음에는 귀찮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의사소통은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나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의사소통은 많은 오해와 분쟁을 막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비단 과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꼭 필요한 지혜임이 분명하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